민주노총 임원선거를 맞아 <매일노동뉴스>가 정파 활동가들에게 한국 사회의 현재를 물었다. 그들의 대답을 6차례에 걸쳐 듣는다. <편집자>

[논쟁: 길을 묻다]

① 최저임금은 유효한가
② 비정규직 철폐 또는 차별 시정
③ 기후위기와 노동운동의 탈성장
④ 여성주의는 노동운동과 만났을까
⑤ 사회적 대화, 어떻게 할 것인가
⑥ 전국결집·전국회의·평등의길 인터뷰

 

지난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국내 비정규직은 815만6천명이다. 임금근로자 2천172만4천명의 37.5%를 차지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통계청 자료를 재분석해 900만명으로 추산했는데, 이는 비정규직 개념 차 때문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답은 ‘철폐’다. 없어져야 할 고용형태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되레 확대일로다. 친노동을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비정규직은 늘었다.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노동계의 고민은 깊다. 비정규직 철폐는 당위적인 구호다. 비정규직 확대라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래서 일각에선 비정규직의 존재를 인정하고, 차별 해소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비정규직과 관련한 노동계의 공통된 인식은 우선 철폐가 갈수록 어렵다는 것이다. 김성란 전국회의 집행위원장은 “비정규직이 없었던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비정규직이 당연시되는 시점에 태어나 성장하고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일상화한 현실에서 살고 있다”며 “그러나 그런 인식은 사회의 인식이지 그 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개념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끊임없이 범위가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영주 전국결집 공동대표는 “비정규직은 하나의 그룹이 아니므로 불안정노동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며 “대공장 간접고용 노동자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5명 미만 사업장 정규직,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같은 노동자를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로 통칭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혹은 불안정노동은 자본의 요구에 따라 발생했다는 인식이다. 구조적 외압이 있었다는 것이다. 진기영 평등의길 집행위원장은 “비정규직 같은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은 노동자가 원해서 만든 게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이 고용불안을 겪는 불안정노동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전개한 것”이라며 “자본의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종합하면 비정규직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민이 늘고, 비정규직의 범위도 끝없이 확장한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철폐 기조는 유효할까.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표전술 불법파견 소송
손쉽지만 시간 걸려, 노사 개입 여지 적어

정파들은 비정규직 당사자의 철폐를 위한 대표적인 전술인 불법파견(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드러냈다. 당사자의 철폐 투쟁 당위성에는 모두 공감했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철폐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은 제조업 대공장 간접고용 노동자의 대표적인 비정규직 철폐 해법이다. 정규직과 노동의 실질에 차이가 없는데도 고용형태를 빌미로 한 차별을 해소하고 정규직 지위를 갖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면서, 동시에 가장 느린 방법이다.

이 방식은 노사의 개입 여지도 축소한다. 비정규직 철폐는 더 이상 교섭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법률 다툼의 쟁점으로만 국한했다. 이사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간접고용하는 시도를 늘리고 있다. 이 원류는 역설적이게도 정부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의 결과 대규모 공공기관 자회사가 설립됐다.

“고용형태 변화와 차별 해소 논의
공무직위 같은 제도적 기구 주목”

진 집행위원장은 비정규직 철폐와 차별 해소는 병행해야 하는 것이지만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를테면 문재인 정부의 공무직위원회가 예다. 공무직위는 3월31일 설치조항 일몰로 사라진 노정 위원회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후속 논의를 위해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양대 노총과 관련 산별노조가 참여했다.

진 집행위원장은 “제대로 작동했느냐는 대목은 평가가 다양하지만 공무직위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고용형태 변화와 이에 따른 격차해소·처우개선을 함께 논의한 기구”라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고 차별을 줄이는 과정으로 투쟁과 교섭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몰된 화물노동자의 안전운임제는 이런 투쟁과 교섭의 결과로서 만들어진 사회임금이자 제도로서 모범 사례다.

진 집행위원장은 “민주노총 집회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지만 사업장 규모와 특성에 따라 철폐의 상이 다양하다”며 “완성차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철폐는 정규직화로 귀결돼 왔지만 획일적 방식으로는 하청노동자의 비정규직 철폐의 상이나 중소영세사업장과 특수고용직의 상은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려워 다양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운동이 사업장을 넘어선 제도적 교섭을 만들고 산업 특성에 맞는 안전운임제 같은 사회적 임금이자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업장 불파소송 폐기해야,
불안정노동 철폐 투쟁 필요해”

이 공동대표는 소송 방식의 정규직화에 비판적이다. 그는 “사업장 규모에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대법원까지 전개해 정규직 지위를 획득하는 전술은 폐기돼야 한다”며 “불안정노동을 철폐하는 근본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비정규직 철폐 기조에 대한 가장 큰 비난은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하다는, 달성 가능한 요구가 아니라는 지적이다”며 “이에 따라 차별 해소로 나아갔는데 그렇다면 임금과 고용조건 같은 차별 해소는 가능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임금과 고용조건 같은 차별을 해소하면 그 자체로 비정규직 철폐와 같은 의미이므로 둘 사이의 차이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신 현장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철폐 혹은 차별 해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비정규직이 계속 확대하는 이유는 결국 기조가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공동대표는 “철폐냐 차별 해소냐를 놓고 말할 게 아니라 비정규직 관련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장을 장악한 노조가 없다는 게 문제”라며 “노조가 의도적으로 비정규직 투쟁 관련 사업장에서 기획하고 투쟁을 전개해 비정규직을 넘어 불안정노동 철폐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비정규직 철폐는 핵심 전략
사회문제 해결까지 범위 확장해야”

김 집행위원장은 “비정규직 철폐는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구조를 깨는 투쟁으로, 즉 신자유주의 타파라는 현 노동운동의 전략적 목표를 실현하는 핵심 투쟁의제”라고 강조했다. 김 집행위원장은 전략 조직화 사업을 강조했다. 전략 조직화 사업은 비정규직 당사자를 조합원으로 조직하기 위한 사업으로 2003년 말부터 시작했다. 민주노총 내 예산을 늘리고 미조직·비정규직실도 만들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철폐에 이르는 힘을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가 현재까지의 비정규직 규모 증가이고, 이 영향으로 차별 해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김 집행위원장은 “전술적으로 차별 해소도 전개하고 강조할 수 있지만 전략적 목표는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될 비정규직 철폐”라며 “비정규직을 상식으로 받아들인 일부 시민들도 있겠으나 그게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당장에 달성할 수 있는 과제는 아니므로 사회적 문제해결에 노조가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청년의 취업·주거·결혼 같은 사회문제에도 개입하면서 동시에 비정규직은 없앨 수 있다는 사회적 선택지를 각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 집행위원장은 “비정규직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거나 철폐에 소극적인 시민들의 상황에 맞게 관련한 사회투쟁을 진행하고 그들이 철폐에 동조하고 나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토론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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