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임원선거를 맞아 <매일노동뉴스>가 정파 활동가들에게 한국 사회의 현재를 물었다. 그들의 대답을 6차례에 걸쳐 듣는다. <편집자>

[논쟁: 길을 묻다]

① 최저임금은 유효한가
② 비정규직 철폐 또는 차별 시정
③ 기후위기와 노동운동의 탈성장
④ 여성주의는 노동운동과 만났을까
⑤ 사회적 대화, 어떻게 할 것인가
⑥ 전국결집·전국회의·평등의길 인터뷰

 

 

지난 6월 세계경제포럼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젠더격차지수는 0.680으로 146개국 가운데 105위를 기록했다. 경제 참여·기회 부문에서 114위를, 교육 성취 부문에서 104위에 머물렀다. 정치권력 분배는 88위를 차지했다. 세계경제포럼은 보고서에서 한국은 피지·미얀마와 함께 ‘권력 분배 부문에서 가장 퇴보한 국가’로 지목됐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하는 성불평등지수(GII)는 역설적이게도 선전하고 있다. 2019년 기준 한국은 189개국 가운데 11위를 기록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조적 불평등은 없다”는 발언의 근거가 된 지표다. 그러나 이 지표는 여성의 삶의 질을 구성하는 요소를 살피는 지표라 남녀의 격차로 해석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유엔개발계획은 지표에 모성사망률과 청소년 출산율을 반영하는데 우리나라는 두 지표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

유엔개발계획은 또 성개발지수를 함께 보고하는데, 이 지수는 유엔이 측정하는 남녀 각각의 인간개발지수(HDI)를 활용해 여성의 HDI를 남성의 HDI로 나눈 값으로, 1에 근접할수록 평등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2019년 기준 0.936이었는데 62개국 중 57위였다.

그러나 최근 제기되는 성차별 문제는 경제적 지위에 국한하지 않는다. 통계청의 범죄 피해자 성별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강력범죄 피해자 2만4천954명 중 절대 다수인 2만1천580명이 여성이다. 남성은 2천915명, 성별불상 459명이다. 특히 강제추행은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다. 강제추행 여성 피해자는 1만4천196명, 남성 피해자는 1천478명이다. 강간도 여성 피해자 5천403명, 남성 41명이다. 미투운동과 강남역·대학로 시위로 이어지는 페미니즘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존재로서 ‘여성’을 부각했다. 그렇다면 차별을 반대하는 노동운동은 페미니스트의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을까. 아니면 반응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피해와 고발, 해결 경험이 생존과 만날 수 있다면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차별받는 존재로서의 여성이 한국사회에서 주목받고 동시에 격렬한 백래시의 대상이 됐다. 일부 산업군에서는 페미니즘 ‘사상검증’같은 방식으로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게 당연시 되는 상황이다. 노동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민주노총 내에서도 성희롱 피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이영주 전국결집 공동대표는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은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빚진 역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운동 내 여성 성범죄 피해자는 조직의 재발방지를 위해 문제를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노조는 해당 사건을 계기로 조직의 변화가 시작하길 기대하며 문제 해결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전국결집은 노동계급 해방을 위해 오늘 발생한 권력과 위계로 발생한 문제를 방치하지 않는다는 규약을 갖고 있다. 이 공동대표는 “우리는 무색무취의 살균 소독된 클린룸에 사는 것이 아니고, 조직이 무오류의 완벽한 조직이 되는 것을 목표 삼지 않고 오류와 한계를 반복적으로 경험해 인지하고 그럴 때마다 두려움 없이 돌아보고 살피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이것이 노동자 계급의 페미니즘이고 성찰하는 실천”이라고 설명했다.

이 공동대표는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연맹에 반성폭력 규정을 만드는 과정이 지난했다”며 “어떤 행위가 성폭력인지, 무엇이 2차 가해인지, 문제제기 뒤 어떤 과정과 절차를 통해 진상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만들지 적시하는 과정은 많은 시행착오와 오류를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개념을 확대하고 가해자 처벌에 한정할 뿐 아니라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구조적인 성차별 문제의 해법 중 하나로 일터에서 고착화한 성역할의 해체를 강조했다. ‘핑크칼라’로 불리는 식당·청소·돌봄·가정방문점검 같은 여성 일자리다. 이 공동대표는 “완성차공장 같은 제조 중공업과 건설은 남성만의 영역으로 분류돼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며 “여성을 구조적으로 차별하는 채용의 벽을 없애고 임신과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구조 등을 줄이는 투쟁이 노동현장에서의 페미니즘”이라고 강조했다.

120만 조합원의 페미니즘 이해, 사회 보편 인식과 차이 없어

김성란 전국회의 집행위원장은 계급운동을 기반으로 한 성차별 해소를 강조했다. 그는 “민주노총 조합원 120만명의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는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노총은 노동운동 전개 과정에서 고용과 노동환경 등에서 발생하는 남녀 차별을 해소하는 운동을 계급운동의 의제로 삼았고, 이런 의제는 한국 사회에서 최근 크게 부각된 강남역 살인사건·미투운동 등에서 확인된 차별받는 존재로서의 여성이라는 의제로 대체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계급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을 강화하는것이 노동시장 여성 차별의 해결이 유효한 해법이라는 이야기다.

민주노총의 제도적 노력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총연맹 차원의 여성위원회와 여성위원 구성, 각 산별의 여성위원회 구성, 그리고 임원선거와 각종 간부 규정 등에서 여성의 참여를 정률적으로 보장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제도가 곧 성평등 의식 발전이라고 보긴 어렵다. 도리어 사회적 인식 변화가 더 빠르게 일어나는 상황이다. 김 집행위원장은 “(남녀)양성평등이라는 표현에서 (다양한 성정체성을 포괄하는) 성평등이라는 말로 변화하는 데만 10년이 걸렸다”며 “2010년대 이후 미투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계기를 통해 가속화하고 있는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이른바 젠더감수성 같은 것을 생활화하고 보편적 가치로 민주노총의 120만 조합원이 인식해 물 흐르듯이 스며드는 질적 전환은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성이 이끈 초기 민주노조운동, “현재는 운동 안 차별해소 더뎌”

진기영 평등의길 집행위원장은 여성차별 문제가 가장 중요한 노동운동 영역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노동운동은 전태일 열사로부터 촉발했지만 확산은 여성노동자의 공이 컸다”며 “YH사건과 청계피복노조 투쟁처럼 여성 노동자가 초기의 민주노조운동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현재 운동진영 안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 해소가 더디다”고 지적했다.

노동운동 내의 차이뿐 아니라 사회적 차별에도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특히 성차별은 노동운동만으로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인식이다.

진 집행위원장은 최근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로아디아 골딘 교수의 연구를 예로 들었다. 골딘 교수는 여성의 교육 수준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취업자가 증가하는데도 남녀 소득격차가 지속하는 현실을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성별 임금격차는 ‘탐욕스런 일자리’ 탓이다. 높은 노동강도와 불규칙한 근무시간이 특성인 일자리로 보수가 높다. 유연한 일자리는 이보다 경쟁이 덜하지만 임금이 낮다. 여성은 대개 탐욕스런 일자리에 도달했더라도 결혼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 탓에 이를 이탈해 유연한 일자리로 이행한다. 진 집행위원장은 “골딘 교수의 분석처럼 육아와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현상이 어느 나라보다 심한 한국에서 노동운동이 사회제도적으로 경력단절의 폭을 줄이고 차이를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일터에서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직적으로는 노동운동 내 여성의 지위를 더 확대하고, 동시에 임금차별을 해소하는 제도개선 투쟁을 병행하는 것이 과제다. 여성의 노조활동이 활발해야 성별 임금격차 개선 같은 제도 개선 투쟁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 집행위원장은 “성별 임금격차나 고용상 성차별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개인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여성은 노동운동 진입도 어렵다”며 “노동운동 내 여성 지위와 리더십 보장을 강화하고 성차별 극복을 위한 성별격차를 부수는 사회적 변화를 확산하는 것을 병행하는 게 노조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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