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 기자

<매일노동뉴스>는 민주노총의 직선 4기 선거를 앞두고 사회적 의제와 노동운동의 방향성을 고민하기 위해 정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정파 간 차이를 드러내기에 뭉뚝했거나, 준비가 부족했다는 세간의 비평도 들린다. 그러나 예각화하기에 적절한 정치관·대북관 같은 상층부의 논의보다 당장 오늘과 내일의 임금·비정규직·성차별 같은 일상의 문제이자 사회적 담론에 대한 답변을 정리하는 게 몰가치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마지막 순서로 바쁜 와중에도 취재에 응해 준 각 정파의 관계자들 발언을 싣는다. 앞선 5편이 씨줄이었다면 이번 인터뷰는 날줄이 되길 기대한다. 김성란 전국회의 집행위원장과는 지난 16일 오후에 만났다.<편집자>

[논쟁: 길을 묻다]

① 최저임금은 유효한가

② 비정규직 철폐 또는 차별 시정

③ 기후위기와 노동운동의 탈성장

④ 여성주의는 노동운동과 만났을까

⑤ 사회적 대화, 어떻게 할 것인가

⑥ 전국결집·전국회의·평등의길 인터뷰

 

- 최저임금 운동에 대한 평가는.
“2015년께 시작한 최저임금 1만원 쟁취 구호는 지표 중심의 인상률을 적용하던 이전과 결을 달리하는 전환점이었다. 최저임금 투쟁을 적용 당사자들을 넘어 모든 노동자의 투쟁, 나아가 사회적 투쟁으로 전선을 확장했다. 최저임금을 노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생활임금적 의미로 사회적 인식을 진전시켰다. 한국 사회가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사회적 의식과 연대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1만원 쟁취 구호의 시의성은 거의 끝났다. 장기화할 현 경제위기를 포함한 복합위기는 기존과 다른 차원의 노동자 고통분담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점에서 최저임금 투쟁의 정치적 함의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디지털 산업전환 가속에 따라 비임금 노동자가 800만을 넘어서는 등 제도적으로 배제되는 노동군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의 생활임금화라는 방향에서 볼 때 2024년 생활임금이 이미 1만2천원 이상이라는 점 등 변화된 조건에 부합하는 최저임금 설계가 필요한 때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방향에서 상당히 급진성을 띨 필요가 있고, 이를 노동운동 내 일치를 넘어 사회의제화해 새 운동동력과 사회여론을 재조직하는 게 필요하다.”

- 최저임금 외 소득보장 수단에 대한 고민은.
“10년여 넘게 진행된 기본소득 논쟁, 지난 정부의 소득(임금)주도 선순환 경제 등의 사례들이 있었지만, 극단적 불평등을 구조화한 신자유주의를 돌파하지 못했다. 세계적인 자본축적의 위기와 함께 실질임금 등 노동자의 소득이 동반하락하는 상황이다. 노동계급의 모든 투쟁은 더욱 근본구조에 천착하고 체제변화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임금투쟁 전선도 정치전선화될 것으로 본다. 최저임금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 계급 내 계층 분화도 뚜렷한데.
“대기업이나 하청노동자 모두 같은 계급이다. 계급은 생산수단의 소유냐 아니냐로 나뉜다. 대기업 노동자라고 해서 생산수단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계급이다. 물론 계급 내에서 차별이 형성되고 불평등이 커진 상태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계급이 자처한 게 아니다. 그렇지 않나. 외부에서 강제돼 분화되고 관리되는 측면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이걸 외치기 위해 우리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외치면서 차별을 없애자고 하고 있다. 그 세월이 30년이다. 그런데도 자본의 힘은 여전히 강고하다. 노동자는 단 한 번도 정권을 잡아 본 적이 없다. 보수와 반동의 정치세력이 들어앉아 있다. 결국 노동운동이 고민하는 것은 같은 노동자 계급으로 같은 일을 하면 속한 기업에 관계없이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단결하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소업체와 대기업 등 다양한 층위와 다양한 방식의 연대활동을 통해 이를 실현하지 않으면 계급이 탈색된다.”

- 비정규직 철폐 기조에 대한 평가는.
“비정규직 철폐는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구조를 깨는 투쟁이다. 즉 신자유주의 타파라는 현 노동운동의 전략적 목표를 실현하는 핵심 투쟁의제다. 다만 비정규직이 없었던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비정규직이 당연시되는 사회에 태어나 성장하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일상적 삶의 조건으로 작동했다. 이는 사회의 의식이지 생래적 개념은 아니다. 2003년 말부터 비정규직 당사자를 조합원으로 조직하는 전략 조직화 사업을 했다. 비정규직 철폐에 이르는 힘을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고, 그 결과 여전히 비정규직이 늘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가 아닌 차별 해소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에 대한 반성이다. 전술적으로 차별 해소도 전개하고 강조할 수 있지만 전략적 목표는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될 비정규직 철폐다. 비정규직을 상식으로 받아들인 일부 시민들도 있겠으나 그게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당장에 달성할 수 있는 과제는 아니므로 사회적 문제해결에 노조가 힘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테면 청년의 취업·주거·결혼 같은 사회문제에도 개입하면서 동시에 비정규직은 없앨 수 있다는 사회적 선택지를 각인시켜야 한다. 비정규직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거나 철폐에 소극적인 시민들의 상황에 맞게 관련한 사회투쟁을 진행하고, 그들이 철폐에 동조하고 나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토론하는 방법밖에 없다.”

- 기후위기 대응은 어떤 고민이 있나. 가장 급진적인 탈성장론도 포괄할 수 있나.
“성장의 의미에 따라 견해가 달라질 수 있다. 소수가 주장하는, 극단적으로 ‘인간과 자연을 동일한 자연적 존재로 보고 모든 성장을 멈추고 무위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면 동의되지 않고 현실적 대안도 아니라고 본다. 소수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전체 민중이 삶을 영위하고 성장해 가기 위한 생산은 필수적다. 단, 기후정의를 함께 실현할 수 있는 방도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쟁취하는 것 역시 필수다. 성장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성장이 곧 탄소배출이고 반기후정의라는 공식은 성장을 곧 자본이윤축적을 위한 과잉생산 과잉소비의 과정으로 볼 때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중심·이윤중심이 아닌 노동중심·사람중심 기후정의가 실현되는 성장이라는 것을 경제체제의 새로운 카테고리로 상정하고 새롭게 개념 짓고 구체화해야 할 때라고 본다. 대전환기 아닌가.

무엇보다 기후위기에 관련한 당면 실천의 핵심고리는 자본의 이윤에 복무하는 과잉생산체제를 멈추는 것이다. 그 자체가 노동착취체제이고, 기후위기체제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원료를 기본으로 한 교통, 에너지 영역은 탈탄소체제로 더욱 빠르게 변해야 한다. 공공요금 인상은 탈성장이고 공공요금 인하는 지속성장이라는 이분법적 이해보다, 사회공공성을 확대해 시민의 기본적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을 기본으로 설정하고 이 부분의 탈탄소를 가속화하는 것이 실천적 대안이다. 새로운 탈탄소 대중교통과 에너지 체계를 만드는 운동을 고민해야 한다.”

-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은.
“계급운동이 기반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민주노총 120만 조합원의 이해는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운동 전개 과정에서 남녀 차별해소 같은 성평등을 계급운동의 의제로 삼아 왔고, 그 실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현재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최근 미투운동, 강남역 살인사건, 혜화역 시위처럼 사회적으로 새롭게 제기된 일종의 ‘생존운동’ 같은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지는 못하다.

노동운동이 무게를 두고 분명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성차별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성차별이 형성되는 구조적 억압을 혁파하고, 계급적 차별을 타파해 나가듯이 성평등 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민주노총 창립과 함께 성평등 운동의 정치적 무게에 부합되게 여성위원회를 상설위원회로 설치하고 약 30년동안 산별과 지역, 단위사업장까지 여성위원들을 배출하고 성평등 강사들을 배출하고 있다. 각종 선거나 대의체계에 여성 할당비율을 높이고 이에 대한 조직적 강제력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제도가 곧 질적인 성평등 의식 발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사회적 인식 변화가 더 빠르게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본다. 양성평등이라는 표현에서 성평등이라는 말로 변화하는 데만 10년 이상이 걸렸다. 이른바 젠더 감수성이 생활화·체질화되고 120만 조합원 속에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고 물 흐르듯이 스며드는 질적 전환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 사회적 대화의 가능성과 필요성은.
“사회적 대화는 전술이다. 사회적 대화를 전략으로 설정하는 것은 20세기 초 유럽식 사민주의체제 지향으로의 선회다. 노동운동의 근본 목표와 노선의 문제이고.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전술적 차원의 사회적 대화도 노동의 주도성 정도를 타산한 조건에서 판단해야 한다. 노동의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계급적 요구와 이해에서 출발해 모든 노동자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정부와 재계와 만나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상대적 안정성을 가진 조직노동이 가진 역량에 따라, 불평등의 끝자리에 놓인 미조직·비정규 노동자의 생존과 권리향상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나눌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 지금 불평등체제가 나라의 실핏줄까지 퍼져 있는 한국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내셔널센터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위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는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보수자유주의 정권도 아닌, 실질적으로 반동적인 파시즘 정치권력이 국가를 장악하고 있는 지금, 더 고려할 사안이 아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 노동자의 선택이 사회적 대화냐고 물으면 아니올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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