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수입자동차 판매대리점과 판매용역계약을 체결해 특수고용직으로 일하는 판매영업사원(카마스터)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민·형사 판결이 나왔다. 근로자 범위를 더 넓게 해석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성은 이미 2019년 6월 대법원에서 인정됐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되기는 처음이다. 유사한 형태의 자동차 판매대리점 업계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현대자동차 카마스터의 경우 지난해 5월 대법원이 현대차와 카마스터 간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정하는 판결을 한 바 있다.

대경모터스, 4대 보험 제외 거부시 퇴직 권고

1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자동차판매 회사 대경모터스 소속 자동차판매영업사원(카마스터)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지난 12일 원고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이 제기된 지 약 3년2개월 만의 최종 결론이다. 회사는 퇴직금 540만원과 지연이자를 합쳐 약 1천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사건은 대경모터스가 A씨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대경모터스는 대구·창원 등에서 미국 자동차 지프(Jeep)를 수입해 판매하는 딜러사다. A씨는 2017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일했지만, 퇴직금 540만원을 받지 못하자 2020년 8월 소송을 냈다. 대경모터스 대표 B씨는 다른 영업사원에게도 퇴직금을 주지 않아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벌금 70만원이 확정됐다. 형사재판에 이어 민사재판에서도 대경모터스 영업사원의 근로자성이 대법원에서 인정된 것이다.

A씨는 매일 오전 8시20분에 출근해 매장청소를 한 뒤 오전 9시부터 회의에 참석했고, 오후 6시에 퇴근했다. 토요일에는 ‘당직’도 들어가 오후 9시에 퇴근했다. 조기퇴근을 하면 지점장이나 팀장에게 보고해야 했다. B씨는 대표로 취임해 경영방침을 일방적으로 변경해 영업사원의 ‘4대 보험’ 가입을 제외했다. 영업사원이 이를 거부하면 퇴직을 권고했다.

대법원 “대리점, 상당한 지휘·감독”
당직에 외근 활동 보고, 재판부 “근무 강제”

1·2심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회사에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회사의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폭넓게 인정했다. 근무장소와 시간·방법을 구속했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보다 근로제공 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게 판례의 일관된 태도다.

재판부는 “출근시간이 명시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었고, 오전 회의에 불참할 경우 불이익을 받는다는 규정은 없었다”면서도 “정상 출근을 못 하면 팀장이나 지점장이 이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근무태도가 불량할 경우 소득이 많은 당직근무 배정에서 제외되는 등의 불이익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정시 출퇴근 및 오전 회의 참석이 강제됐다는 취지다.

‘외근’도 보고 사항이었다. A씨는 활동내역을 촬영해 지점장이나 대표에게 보고했다. 대표 B씨는 형사재판에서 “영업사원들이 외근을 가지 않고 놀러 가는 일이 있어 결과 보고를 지시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회사와 영업사원의 관계가 단순히 도급이나 위임관계였다면 근무시간 개념이 있을 수 없다”며 “설령 영업사원들이 놀러 갔더라도 이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미국 자동차 ‘지프(Jeep)’ 판매대리점 모습. <잡코리아>
▲ 미국 자동차 ‘지프(Jeep)’ 판매대리점 모습. <잡코리아>

판매실적 촉구·기본급 삭감에 CCTV 감시

특히 근태관리는 근로자성 인정의 핵심 지표가 됐다. B씨는 영업사원들에게 판매 목표 달성을 독려하고, 고객상담 내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릴 것을 요구했다. CCTV를 설치해 근태와 복장, 청소상태도 지적했다. 사측은 프리랜서라고 주장하면서도 A씨에게 명함·명찰을 지급했다. 나아가 회사는 A씨에게 회사 연락처만 기재된 판촉 현수막을 걸라고 했다.

‘당직제도 시행’ 역시 근로자 인정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피고 회사 사업장은 내방한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가 주로 이뤄져 당직근무는 영업사원 소득과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중요한 사항”이라며 “회사는 당직표를 최종 수정하는 권한을 행사했고, 원고는 당직 제외로 인한 소득 감소로 퇴사를 결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영업사원 보수가 실적에 좌우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사측 주장도 배척했다. 회사는 영업사원들에게 판매실적 수당과 별개로 직급에 따라 기본급 110만~150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한 달 판매실적(차량 3대)을 달성하지 못하면 기본급 50%를 삭감했다. 재판부는 “판매실적에 따라 수당이 달라지는 사정만으로 근로 자체의 성격이 부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제3자를 고용해 영업할 수 있다”는 회사 항변도 “영업사원이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하도록 한 사례는 없다”고 재판부는 선을 그었다. 이어 “회사가 급여에서 사업소득세를 원천 징수하고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이는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사실상 임의로 정한 사정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회사는 상고하면서 “노동청에서 다른 영업사원의 퇴직금 체불이 인정되지 않아 A씨도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수긍했다.

현대차 카마스터 파장 주목 “근무형태 같아”

이번 판결이 카마스터 근로자지위에 파장을 미칠지 관심사다. 노동계는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섣부른 예단은 경계했다. 김선영 금속노조 판매연대지회장은 “수입차나 국내차나 거의 같은 근무형태로 일하고 있는데, 현대차만 근로자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며 “대법원이 근로자성을 인정하면 대리점 체계에 혼란이 온다는 현대차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줬는데, 앞으로 지속해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26일 김 지회장과 조합원 등 4명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카마스터는 독립된 개별사업자라고 판단했다. 채용 권한은 현대차가 아닌 대리점에 있고 근태를 감독하지도 않았다고 봤다.

법조계는 대경모터스 사건에서 재판부가 회사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행사했다고 판시한 대목에 의미를 부여했다. A씨를 대리한 오동현 변호사(대한법률구조공단)는 본지와의 전화에서 “애초 회사가 근로기준법상 수당 규정을 잠탈하기 위해 편법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던 것인데 대법원이 근로자성 여부를 철저하게 실질에 따라 판단했다”며 “특히나 프리랜서인데 당직을 섰다는 것은 근로자로 봐야 할 명백한 근거”라고 말했다. 정준영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이번 사건의 회사가 근태관리를 조금 더 엄격하게 하고 기본급이 존재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현대차와 근무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며 “기본급이 정해지지 않았더라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추세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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