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쿠팡의 물류배송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소속 택배노동자(퀵플렉서) 박아무개(60)씨가 지난 13일 새벽배송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가운데 CLS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1차 부검 결과 박씨의 사인은 ‘심장비대’로 추정했다. 노동계는 ‘과로사’라고 주장하지만, CLS는 택배노조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며 법적조치를 예고했다. 하지만 ‘급성심장사’를 산재로 보는 판결은 다수 나와 있다. 향후 사망과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여부에 따라 산재와 이에 따른 원청의 책임 소재까지 불거질 전망이다.

쿠팡 “개인사업자” 주장에 “배송물량 구속”

1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중대재해 전문가들은 박씨 사고는 ‘업무상 과로’로 인한 사망으로, 중대재해에 해당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대재해처벌법 4조에 따르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에서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박씨의 산재가 인정될 경우 원청인 CLS에 책임도 물을 수 있다.

쟁점은 △쿠팡 퀵플렉서의 근로자성 △업무상 과로 여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먼저 쿠팡 퀵플렉서는 CLS와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 물류업체 소속으로 물류업체와 다시 위수탁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 지위에 있다. 사업소득세 3.3%를 내고 주 52시간의 법정 근로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다. 박씨도 배송업체에서 1년여간 근무해 왔다.

쿠팡측은 퀵플렉서가 자신들 소속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쿠팡은 지난 13일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을 중단해 주기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고인은 쿠팡 근로자가 아닌 군포시 소재 전문 배송업체 A물산과 계약한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했다. 박씨가 마치 쿠팡 소속으로 과로한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는 항변이다.

그러나 노조는 쿠팡 퀵플렉서가 CLS가 정해주는 배송 물량에 구속돼 노무를 제공해 실질적으로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반박한다. 퀵플렉서 역시 쿠팡과 근로계약을 맺은 ‘쿠팡친구’와 비슷한 배송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퀵플렉서는 자유롭게 영업을 하며 스스로 사업을 운영하는 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CLS가 정해주는 배송 물량에 구속돼 노동을 제공한다”며 “쿠팡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배송업체를 끼고 근로자를 개인사업자로 둔갑시켜 근로기준법 적용을 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수급인 노동자의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가 CLS에 있다는 의미다.

‘노동자성 인정’ 판결 추세 “산재급여 대상”

실제 ‘배송(화물)기사의 노동자성’은 법원에서 폭넓게 인정되는 추세다. 대법원은 2013년 3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철선업체 대표 사건에서 지입차주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최초로 인정했다. 2021년 4월에도 회사 트랙터(트레일러 포함)를 임차해 콘크리트를 운송하다 상해를 입은 삼표 화물기사를 노동자로 봤다. 회사에 묶인 ‘전속성’이 작용했다.

하급심의 경향성도 뚜렷하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6월 자신의 화물차로 식자재 납품업체와 운송계약을 체결한 화물기사의 급성 심근경색 사망사고 사건에서 1심을 뒤집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이 정한 근로자로 판단했다. 같은해 6월 계양전기의 지입차주도 2심에서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혈액 검체 운송업체의 지입차주가 심근경색으로 숨진 사고도 지난 11일 1심에서 노동자성이 인정돼 판결이 확정됐다.<본지 2023년 10월16일 “‘쿠팡과 판박이’ 야간배송기사 심근경색, 법원 ‘산재’” 기사 참조>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쿠팡 퀵플렉서가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CLS의 산업안전보건조치 의무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한다. 권 변호사는 “쿠팡 퀵플렉서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서 정한 택배원으로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며 “실질적으로 노무를 제공받는 자는 중간관리업체에 불과한 배송업체가 아니라 CLS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CLS는 쿠팡 퀵플렉서의 산재 예방을 위해 필요한 보건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장비대’ 산재, 법원 인정 “스트레스 원인”

‘과로’ 여부도 향후 수사 과정에서 밝혀져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퀵플렉서는 하루 근무시간이 주간조가 12~15시간, 야간조가 10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주일에 6일 일하고 하루 쉬는 구조다. 고인이 야간에 주 평균 52시간을 근무했다고 주장하는데 고용노동부 고시인 ‘뇌심혈관 질병의 업무 관련성 인정기준’을 적용하면 고인의 경우 67.6시간(52시간×심야할증 1.3배) 일한 것으로 나온다. 과로로 인정하는 12주간 1주 평균 60시간 근무와 1주 평균 4주간 64시간 근무를 훨씬 넘어선다.

하지만 CLS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택배노조는 마치 당사 소속 배송기사가 과로사한 것처럼 허위주장하고 있다”며 “내사 종결 예정이라는 보도에도 택배노조는 고인의 죽음마저 쿠팡에 대한 악의적 비난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씨의 심장은 사망 당시 일반적인 무게(300그램)보다 두 배 이상인 800그램 가량으로 커져 있던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심근경색을 앓고 있어 혈관이 전반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박씨가 질환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심장비대’도 산재에 해당한다고 법원은 판단하고 있다. 서울고법은 2021년 11월 아파트 관리소장이 심장비대로 인한 급성 심장사로 사망해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업무상 스트레스와 사망 전 24시간 이내 돌발적인 사건 발생이 원인이 됐다고 명확히 했다.

법원 감정의도 심한 과로와 스트레스가 급성 심장사 유발요인으로 인정했다. 장시간 운전하는 쿠팡 퀵플렉서도 스트레스 정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중론이다. 법원은 “운전업무가 고도의 긴장과 집중력이 요구되고 사고위험에 대한 걱정으로 직무 관련 스트레스가 대단히 높다”고 판결한 바 있다.

“퀵플렉서 야간노동, 심근경색 인과관계 조사”

산재가 인정되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까지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권 변호사는 “심근경색은 대표적인 뇌심혈관계 질환”이라며 “쿠팡 퀵플렉서의 장시간 야간노동과 심근경색 사이의 인과관계를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시간 야간노동과 심근경색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CLS은 노무를 제공받는 자로서 쿠팡 퀵플렉서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보건조치의무(산업안전보건법)와 도급인으로서 종사자의 유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보건 확보의무(중대재해처벌법)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 택배노조가 16일 오전 국회 앞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책임 회피 쿠팡 규탄 및 국정감사 증인 채택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택배노조가 16일 오전 국회 앞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책임 회피 쿠팡 규탄 및 국정감사 증인 채택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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