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외관상 사업자등록을 하고 개인사업자 형태로 일한 지입차주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서 산재보험급여 대상이 된다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13일 새벽배송을 하다 숨진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위탁 물류업체 소속 택배노동자와 유사해 판결 내용이 주목된다. 쿠팡 기사도 하루 10시간을 일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됐다. 택배노조는 과로사로 추정하고 있다.

회사 지시 맞춰 배송, 계약서에는 “관리자 지시”

1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정상규 부장판사)는 화물차 지입기사 A(사망 당시 63세)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공단이 항소를 포기해 지난 11일 1심이 그대로 확정됐다.

A씨는 2019년 7월께부터 혈액 검체 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운송회사와 차량지입계약을 체결하고 임상팀 소속으로 야간배송업무를 담당했다. 그런데 1년8개월 만에 사고가 터졌다. A씨는 2021년 3월 용인시 기흥구의 한 건물에서 화물승강기를 이용해 검체 박스를 옮기던 중 쓰러졌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즉시 이송됐으나 약 7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평소 회사는 A씨에게 구체적인 운송업무 내용을 지정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대화방에 인수확인증을 올리도록 요구했다. 인수확인증에는 △검체 아이스박스 픽업 △집하 △상차 수량 등이 기재됐다. 차량지입계약서에는 “기사는 회사의 요청 업무를 필히 실시해야 하고, 관리자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A씨는 회사가 지정한 운송 장소와 시간·순서에 맞춰 평일은 약 9시간40분(오후 3시부터 다음날 오전 12시40분), 토요일은 약 10시간40분(오후 12시부터 오후 10시40분)간 13곳의 거래처와 집하장을 이동하며 배송해야 했다. 이동거리만 약 167킬로미터에 달했다. 거래처마다 검체 아이스박스 픽업시간이 있어 픽업이 늦어지면 회사가 거래처에 연락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으로도 배송출발과 화물집화를 보고하도록 했다.

A씨가 회사에 종속됐다는 지표는 많았다. 매달 고정급과 추가수당을 포함해 약 380만~400만원을 받았다. 화물차에는 ‘검체 운송’이 적혀 있었고, 제3자 업무대행 금지 규정은 없었지만 검체 운송 특성상 정해진 시간에 움직여야 했다.

“지입계약은 회사가 임의로 결정, 근로자성 인정”

A씨 아내는 남편이 회사 근로자로서 업무상 재해로 사망했다며 공단에 요양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인정되나 고인은 독자적인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주로서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불승인했다. 재심도 기각되자 A씨 아내는 지난해 3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씨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회사가 망인의 구체적인 업무를 지정하고 인수확인증 제출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업무내용을 결정하고 상당한 지휘·감독을 했다”며 “망인이 사업장에 출퇴근한 것은 아니지만, 회사가 지정한 근무시간과 장소에 구속됐다”고 판시했다.

보수도 임금 성격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고정급이) 운송료, 지입료라는 이름으로 지급됐더라도 근로의 대가로서 임금이라는 성격이 부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업자등록·세금계산서 발행·차량지입계약 같은 외관은 회사가 우월한 지위에서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사항이라는 것이다. 사무직과 다른 근무시간과 휴가일수를 적용했다는 회사 주장에 관해서도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요소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A씨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회사가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사항보다 실제 노무 상태가 중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며 “회사 지휘·감독을 받는 상황에서 개인사업자의 형식만 존재하는 경우 근로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확고한 법리를 이어 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