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자료사진 공동취재사진>

기획재정부가 회계공시를 하지 않는 노조 조합원의 세액공제를 하지 않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관계부처의 의견을 조회하는 과정에서 관련 규정에 따른 절차를 지키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법제처 심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심사를 완료했다고 유관부처에 통보했다.

법제처는 “심사 완료 전”이라는데
기재부는 “마침”, 법제업무 운영규정 위반 논란

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재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재부는 법제업무 운영규정에 따라 관계부처 의견조회를 위해 지난 8월31일 각 부처에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려보냈다. 그런데 기재부 문서에는 ‘법제처 심사를 마침’이라는 문구가 삽입돼 있다. 기재부는 9월11일까지 각 기관에 의견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법제처의 말은 다르다. 법제처는 기재부의 의견조회 마감 다음날인 9월12일 이수진 의원실에 “개정안에 대한 심사 절차가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답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같은달 15일 이 의원측에 같은 답변을 냈다. 기재부가 법제처를 ‘패싱’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재부가 관련 규정에 명시된 절차를 위반했다는 점이다. 법제업무 운영규정에 따르면 법령개정시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뒤 법제처 심사를 할 수 있다. 법제처 심사가 입법예고 이전에 이뤄지는 관계부처 의견조회보다 앞설 수가 없다. 이번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은 9월5일부터 같은달 11일까지인데, 기재부는 그보다 앞선 8월31일에 관계부처에 의견조회를 요청했고, 입법예고가 끝나는 9월11일까지 의견을 달라면서 “법제처 심사를 마침”이라고 명시했다.

법제처의 법령심사제도는 국민의 자유·권리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국가운영 기틀이 되는 법률이나 하위법령 공포·시행 전 헌법과 상위규범에 위반되거나 부적정한 내용의 규범이 되지 않도록 사전 심사·조정 역할을 한다.

안 그래도 소득세법 시행령과 함께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은 법률을 우회한다는 ‘시행령 통치’ 논란을 불렀다. 현행 노조법에는 노조의 회계공시 의무가 없는데도 정부가 시행령만 바꿔 노조의 회계 공시 의무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시행령 개정 졸속 추진했나
이수진 의원 “해명 요청에도 묵묵부답”

기재부의 법제처 패싱은 이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빠르게 법령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기재부는 각 부처 예산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기재부가 시행령 개정에 강한 의지를 비출 경우 관계부처가 이견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기재부는 의견조회 요청 공문에 “법제처 심사를 마침”이라는 문구와 함께 “고용노동부 등과 합의되었음”이라는 문구도 넣어 사실상 다른 부처의 의견표명을 막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고용노동부는 9월15일 이수진 의원실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별도 의견 없음”이라고 밝혔다. 관계부처로부터 의견조회를 할 때 별도 회신이 없다면 이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수진 의원은 “(기재부 의도가) 노골적이고 고의적이다”며 “기재부가 의원실 자료요청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고 밝혔다. <매일노동뉴스>는 해명을 듣기 위해 기재부 소득세제과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과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달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노조 회계공시시스템을 통해 회계결산 결과를 공표한 노조 조합비에 대해서만 세액공제를 적용한다. 노조는 10월1일부터 11월30일까지 노동부가 만드는 공시 시스템에 2022년도 결산 결과를 공시해야 한다. 이를 거부하는 노조 소속 조합원은 올해 10~12월 조합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다. 노동계는 헌법에서 정한 위임입법 한계를 벗어난 시행령이기에 위헌이라고 보고 헌법소원을 청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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