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

정부가 “불합리한 노사관행을 개선하겠다”며 연일 ‘노조 부정 감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보고했던 고용노동부는 후속조치로 12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불합리한 노동관행 개선 전문가 자문 회의’를 열었다. 이정식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노동조합의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은 노사 대등성에 기반한 합리적인 노사관계의 기본 전제”라며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통해 노조의 민주성과 국민적 신뢰를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 회계에 어떤 부정이나 불법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면서 노조 회계가 불투명해 정부가 감시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들만 쏟아내는 상황이다.

노동계는 노조 회계를 시작으로 정부가 노조의 가입과 탈퇴, 회의와 처분, 단체교섭 등 노조활동 전반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달 20일부터 노동부가 운영하는 노사 부조리 온라인 신고센터와 시정조치가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노조를 부패집단으로 여론몰이하고 이를 통해 정부가 노조활동 전반에 개입하면서 행정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노림수 끝에는 노조의 단결권 훼손이 있다.

노조 회계 자율점검은 ‘찻잔 속 태풍’

노동부는 이달 말까지 1천명 이상 노조(총연맹과 산별연맹 포함) 344곳을 대상으로 노조 회계 장부 보존·비치 의무 자율점검을 실시한다. 노동부가 노조에 발송한 ‘자율점검 및 보고 안내문’에 따르면 산별노조는 본조와 1천명 이상 지역지부, 기업지부(지회)까지 포함해 운영상황을 보고하도록 해 그 대상은 더 늘 수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비치 및 보존해야 할 서류는 조합원 명부와 규약, 임원의 성명·주소록, 회의록,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다. 회의와 재정 서류는 3년간 보존해야 한다. 양대 노총은 이와 관련한 대응지침을 내리고 해당 노조에 서류 비치와 보존에 대한 자율점검을 실시하도록 했다.

문제는 점검 기간이 끝난 뒤다. 노동부는 자율점검 결과를 보고받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법 27조를 근거로 대며 노동부는“10일 전 자료제출 요구서를 보내 서류 비치와 보존 여부, 증빙자료에 대한 보고를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조법 27조는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노조가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도록 한 규정이다.

전례 없는 점검에 노동부 내부조차 우왕좌왕하고 있다. 노조로부터 점검 결과 보고를 받겠다면서도 보고에 필요한 점검결과서 양식은 추후에 송부하겠다고 미뤄 놓은 상태다.

양대 노총은 노동부의 추후 조치 사항을 보고 대응방침을 정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노조법에 따른 규약과 재정 관련 서류 비치나 보존은 노동부의 개입이 아니더라도 노조 재정의 민주적 운영에 필수적인 사항”이라며 “신규노조이거나 노조 사무실이 없는 곳 등 회계업무가 아직 안정되지 않은 노조에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노동부가 노조 자료 비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회계장부나 노조 운영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 제출을 요구할 경우, 노정 간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동부가 자율점검 체크리스트나 서류 비치와 보존을 증빙하는 사진 정도가 아니라 정당한 사유 없이 노조에 각종 회계자료, 장부 등을 요구한다면 전면 거부하고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3분기까지 구축하겠다고 밝힌 노조 회계 공시시스템은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노동계는 전망한다. 현행법에서 노조가 조합원이 아닌 일반인에게 회계를 공개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노조 회계 공시 여부를 반영해 공공기관부터 회계공시를 의무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법률 위반 아닌 노조 운영 전반까지 개입하나

노동계는 ‘노사 부조리 온라인 신고센터’가 자칫 노조의 운영상황에 행정 개입하는 근거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노조활동 전반에 민원, 진정사건을 만드는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노조의 운영이나 결정에 행정관청이 개입할 수 있는 제도로 ‘노조 결의처분 시정명령’이 있다. 노조의 결의처분이 노동관계법령에 위반될 경우 행정관청이 직권으로 노동위원회에 시정명령 의결을 요청할 수 있지만, 노조 규약에 위반되는 경우 이해관계인의 신청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노동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신고센터가 이런 역할을 대신 할 수도 있다. 노조 가입과 탈퇴·징계·의결 등 노조 규약에 따른 운영 전반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확대하는 식이다.

정부와 사용자의 지배·개입 확대는 노조의 단결권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정부여당에서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탈퇴와 관련해 금속노조가 탈퇴를 주도한 지회장을 제명한 것을 문제 삼았고 결국 노동부 포항지청이 노동위원회에 노조 처분 시정명령 의결을 요구했다. 한국은행노조, 금융감독원노조의 민주노총 탈퇴와 관련 처분을 다시 논란거리로 만드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민주노총 탈퇴 방해금지법’이라고 명명했다. 개정안은 노조 탈퇴를 이유로 하위노조에 대한 상위노조의 고소·고발, 제명, 업무방해 등을 ‘탈퇴 방해’로 규정하고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탈퇴 의사를 밝힌 개인에 대한 노조의 금품·이익 요구, 폭행·협박 행위 등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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