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는 202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사망사고 만인율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담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처벌과 규제만으로는 더 이상 산업재해를 줄일 수 없다는 평가와 함께 추가적인 산업안전보건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개편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은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중심으로 삼은 위험성평가다. 아주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2013년 도입했으니 이미 10년째 시행 중이다. 그동안 위험성평가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그런데 위험성평가를 중대재해 감축의 핵심 의제로 꺼내든 정부는 노사가 함께 사업장 위험요인을 파악하고 개선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제도가 정착하면 재해감소로 이어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환영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매일노동뉴스>가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위험성평가 제도 개선방안을 살펴봤다. 안전보건공단과 함께하는 ‘중대재해 감축, 노사가 함께’ 캠페인으로 공동기획했다. <편집자>

5년차 대리운전 기사 박우영(가명·47)씨는 고정된 사업장이랄 게 없다. 잡은 콜이 가리키는 목적지로 향하는 길, 되돌아 나오는 길이 모두 그의 일터다. 운이 좋았다. 일하며 아직 큰 사고는 없었지만 크고 작은 부상을 종종 있다. 배차 간격이 긴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고객에게 늦지 않게 가기 위해서 이유는 다양했다. 고객을 안전하게 모신 뒤, 콜이 모이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모두 대리운전 기사의 몫이다. 하지만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업주는 없다. 물론 위험성평가를 할 사업장도 없다.

동료의 부고, 일과 죽음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박씨는 지난 7월 갑작스레 동료의 부고를 들었다. 동료는 콜을 잡고 고객에게 가기 위해 공유 퀵보드를 타고 가던 중 음주운전 트럭에 치여 숨졌다. 박씨는 고인의 숨지기 전 이동했던 경로를 보고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있기는 한데 배차 간격이 길어 공유 퀵보드를 택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박씨는 동료가 대리운전 노동자의 첫 업무상 재해라고 짐작했다. 고인의 사망일은 “주로 하나의 대리운전업자로부터 업무를 의뢰받아 대리운전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는 전속성 요건이 삭제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시행된 지 12일째 되던 날이다.

이창배 대리운전노조 교육국장은 “대리운전 노동자는 퀵보드를 타고 넘어지거나 차량에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며 “휴대전화로 내비게이션을 보든가, 콜(을 잡으려) 뜨는 것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길이 어둡다 보니 퀵보드를 타고 넘어지거나 차량과 충돌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대리운전 노동자가 이동 중 사망한 재해로 노조에 신고된 사고만 3건이다.

업무상 재해 위험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리운전 노동자와 도급계약을 체결하는 플랫폼 업체들의 안전보건의무는 사실상 전무하다.

애초 특수고용직을 사용하는 사용자에게 부과되는 안전보건조치 의무가 많지 않은데다, 산재보험법에는 삭제된 전속성 요건이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살아있는 탓이다. 산업안전보건법 77조(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등)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니지만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해 업무상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특수고용직의 안전·보건 조치를 규정하는데, 이때 특수고용직은 전속성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적용을 가로막았던 전속성 요건이 특수고용직 산재예방에도 걸림돌인 셈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전속성 요건,
노동자 안전 방해하는 문턱 되다

대리운전 노동자만의 일은 아니다. 3년차 배달 노동자이자 배달서비스노조 기획정책실장인 김종민씨는 지난 8월 2차선 도로에서 불법유턴을 하던 택시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부상이 크진 않았고, 현재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1년에 두 차례 정도는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한다고 했다. 빗길이나 눈길에서 미끄럼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배달노동자의 높은 사고 위험성은 산재 사고사망자수로도 입증된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자수를 보면 퀵서비스 직종 종사자가 38명으로 2021년(21명)보다 117% 늘었다. 음식배달 노동자도 퀵서비스 직종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이들 역시 안전보건 조치는 전속성 요건을 갖춘 이들에 한정돼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하나의 업체에서만 업무를 의뢰받아 이륜차를 이용한 배달을 하는 노동자에게 사업주는 안전모를 충분히 지급, 착용하도록 지시하고, 제동장치 등 이륜차의 기능이 정상 작동하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전속성이 곧 사업주 의무, 책임이 기준이 된 셈이다.

홈플러스·쓱닷컴처럼 유통사(화주)가 운송사와 계약을 맺고, 운송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해 일하는 유통배송기사의 경우도 상황이 비슷하다. 중량물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근골격계 질환이나 골절, 교통사고 등 사고위험이 높지만 이와 관련해 사업장의 조처를 노동자가 체감하기는 어렵다.

허영호 마트노조 조직국장은 중량물 제한에 대해 “홈플러스나 일부 사업장에서 개선이 있었지만, 여전히 20킬로그램 이상인 배송물품들이 많다”며 “중량물 제한이 필요하지만 교섭을 비롯한 논의테이블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다”고 설명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사업주 선의로 이뤄지는 안전보건 조치

이런 상황에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안전보건 조치는 사용자의 선의에 기대거나, 노조 요구로 일부 수용되는 식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대리운전기사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로 △온라인 안전교육 △‘슬기로운 대리생활’ 오프라인 교육 지원 △눈 마사지기·쿨토시·얼음물·편의점 상품권 등 건강물품 지원 △건강진단 등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법적 의무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모든 조치는 모두 대리기사와의 상생 차원에서 진행 중인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배달의민족 배달 기사를 관리하는 우아한청년들쪽은 “배민커넥트 앱 가입(입직) 과정에서 다양한 조치들을 통해 의무를 준수하고 있다”며 “2시간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가입을 완료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배달 수행도 불가하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95조는 전속성을 갖춘 특수고용직의 안전·보건교육 시간은 최초 노무제공시 2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속성 요건 충족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가입자들에게 안전보건교육을 진행한다는 설명이다. 우아한청년들 관계자는 “가입 과정에서 도로교통법상 규격에 맞는 승차용 안전모 사진을 촬영, 전송한 뒤 적합성 여부를 회신한다. 부적합 판단시 가입이 불가하다”며 “이외에도 배달플랫폼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해 4년째 안전 관련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법 적용대상 확대해야”

회사의 노력에도 현장의 아쉬움은 크다. 이창배 교육국장은 “산업안전보건교육이 의무가 아니라 (오프라인) 안전교육을 들은 대리운전기사는 10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꼬집했다. 이 국장은 “(기사가) 고객과 문제가 발생할 때 운행을 중지할 수 있어야 하고, 회사가 사후조치를 해야 하는데 (대리운전업계에서는) 운행중지에 대한 책임을 기사들에게 묻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사업주가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 41조는 2018년 10월부터 시행됐지만 특수고용직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전속성 요건을 충족한 특수고용직만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672조 5항에 따라 사업주가 “고객의 폭언 등에 대한 대처방법 등이 포함된 대응지침 제공” 규정만 있을 뿐이다.

대리운전 노동자의 ‘심야이동권 개선’은 야간노동자 건강 차원에서도 꼭 필요하지만 해결이 요원한 상황이다. 이창배 국장은 “첫차가 새벽 4시에 있으면 다행이지만 6시에 있는 경우도 있다”며 “그럼 여관에 가서 자기도 그렇고, 추운 겨울날 덜덜 떨거나, 편의점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며 “어떤 기사들은 겨울날 (고객 데려다 준 뒤) 걸어나오다 동사할 것 같아 112를 부른 적도 있다고 한다”고 부연했다.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종속성이 굉장히 높은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배달노동자들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고작해야 교육받을 권리 정도만 보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이사장은 “특수고용직 업종도 100여개가 넘지만 정부가 인정하는 업종은 14개뿐”이라며 “일하는 사람들의 실직적인 안전과 보건을 걱정한다면 산업안전보건법 적용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특수고용직의 전속성 요건을 폐지하는 것과 함께 업종 확대가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고 “사전예방에 초점을 맞춰 기업 스스로 위험요인을 발굴·개선하는 위험성평가를 중심으로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을 지원”을 강조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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