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와 회사 안전관리자가 현장 안전점검 하는 모습. <현대중공업>

정부는 202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사망사고 만인율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담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처벌과 규제만으로는 더 이상 산업재해를 줄일 수 없다는 평가와 함께 추가적인 산업안전보건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개편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은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중심으로 삼은 위험성평가다. 아주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2013년 도입했으니 이미 10년째 시행 중이다. 그동안 위험성평가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그런데 위험성평가를 중대재해 감축의 핵심 의제로 꺼내든 정부는 노사가 함께 사업장 위험요인을 파악하고 개선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제도가 정착하면 재해감소로 이어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환영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매일노동뉴스>가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위험성평가 제도 개선방안을 살펴봤다. 안전보건공단과 함께하는 ‘중대재해 감축, 노사가 함께’ 캠페인으로 공동기획했다. <편집자>

“지난 5~6월 즈음 크레인 붐대가 서로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장비를 운영하는 현대중공업모스 계약직과 장비 운영을 관리하는 정규직 간 소통이 잘 안 될뿐더러 움직이는 물체에만 신경쓰느라 주행 중 부딪힐 수 있다는 예측을 못한 거예요. 작업 전 한 대의 크레인 신호수-운전수끼리만 소통할 게 아니라, 모든 크레인 신호수-운전수들 합동으로 당일 공정에 대한 업무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재발방지 대책으로 제시했어요.”

사고 발생 이후 진행된 위험성평가에 참여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대의원 A씨가 전한 사례다. 크레인 충돌은 중대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사고 중 하나여서 작업 전 위험요인을 파악해 그 가능성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 A씨는 “해당 크레인이 겹치는 위험구역을 ‘세이프티존’으로 페인트로 표시했다”며 “물체를 확인하는 신호수뿐만 아니라 전방을 확인하는 신호수를 배치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킬 것을 재차 강조했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은 위험성평가를 철저히 시행하는 모범사업장으로 꼽힌다. 중대재해 다발 사업장이어서 ‘죽음의 공장’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지난해 4월 중대재해 발생 이후 현재까지 1년 넘게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부서별 위험성평가 실행위원회 운영
노조 의견 제시 넘어 세칙 개정에도 참여

2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중공업 노사는 노사 TF를 구성해 ‘작업표준 및 위험성평가 관리 세칙’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위험성평가 방법과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 노사가 함께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개정 논의가 마무리되면 새로운 ‘작업표준 및 위험성평가 괸리 세칙’을 적용해 하반기 위험성평가를 하게 된다.

이는 기존 위험성평가 방식이 중대재해 감소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크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현대중공업은 각 부서별로 위험성평가 실행위원회를 구성해 주요 위험작업에 대한 위험성평가 결과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절차를 거친다. 위원장 1명과, 노사 각각 추천을 통해 실행위원 2명으로 구성된다. 지난해 1월24일 크레인 작업 도중 철판 끼임사고로 1명이 숨진 뒤 열린 노사 임시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노사는 부서별 위험성평가위원회 구성·운영에 합의했다.

노조 참여는 현장과 괴리된 ‘평가를 위한 평가’를 현장에 밀착한 평가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위험성평가 실행위원으로 활동한 B씨는 “5킬로그램 이상부터 중량물로 취급하고, 이때 어떠한 작업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무슨 장비를 이용할 것인지 등 기준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실행위원 C씨는 “현장의 작업과는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없는, 부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활동까지 넓게 포괄하고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한 삭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실질적 변화를 체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창구 현대중공업지부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노동자들이 참여해서 현장 위험이 무엇인지 평가도 해보고 위험요인을 기록하고 다시 한번 상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중대재해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단순히 노조가 의견만 내는 게 아니라 노조가 같이 모니터링을 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개선을 하는, 전체적인 운영을 같이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사는 지난 4월10일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노사 실무부서 간 TF를 구성한 뒤 위험성평가 방법, 기준 등 개선방안을 논의 후 시행한다”고 결정했다. 노사 각각 2명씩 참여하는 TF를 통해 현재까지 세 차례 논의를 진행했지만 이견을 좁히지는 못한 상태다. 실행위원·교육시간 확대 등이 쟁점이 되고 있다.

‘안전 최우선’ 원칙하에 예산 확대·인력 충원

현대중공업은 중대재해 다발 사업장 중 한 곳으로 지목돼 왔다. 현대중공업지부가 1974년 창사 이후 2020년 4월까지 산재사망자 전수조사를 한 결과 466명이 사망했다. 매달 0.85명의 노동자가 숨진 셈이다. 2021년에도 협착·추락 등 사고로 4명이 숨졌고, 지난해 1월과 4월에는 각각 끼임사고와 폭발사고로 한 명씩 숨졌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월 회사 안전정책을 총괄하는 안전기획실과 현장 안전을 담당하는 각 사업부의 안전 조직을 통합해 안전통합경영실을 만들었다. 그해 연말까지 안전관리 인력도 20% 늘리겠다고 밝혔다. 의사결정기구인 안전경영위원회와 안전·생산심의위원회를 신설해 분기마다 회의를 열어 회사 안전경영 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결정했다. 현대중공업 2023년 안전·보건 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안전보건 예산도 2021년 2천368억원, 2022년 2천712억원, 2023년 3천85억원으로 늘어났다. 현대중공업은 재해율을 올해 0.175, 내년 0.159, 2025년 0.145로 낮추는 목표를 설정했다.

현대중공업 위험성평가는 정기·수시·현장 위험성평가로 나뉜다. 반기마다 1회씩 진행하는 ‘정기 위험성평가’와 사고 발생 혹은 비일상작업을 할 때 이뤄지는 ‘수시 위험성평가’ 체제에서 ‘현장 위험성평가’를 추가했다. 현장 위험성평가는 매일 작업시작 전 안전점검회의(TBM·Tool Box Meeting)을 거쳐 관리감독자·작업자가 위험요인을 인지·공유하는 게 대표적이다. 정기 위험성평가와 사고발생시 수시위험성평가는 빈도·강도를 추정하는 정량적 평가를 시행하고, 비일상작업에 대한 수시 위험성평가와 현장 위험성평가는 정성적 평가로 진행한다.

현대중공업은 원청과 협력사가 동일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매년 상·하반기 정기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도록 하고, 하청에서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여부를 원청이 확인해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위험성뿐만 아니라 협력사의 전반적 안전보건 시스템 및 현장 안전관리 역량 강화를 위해 최대 2명까지 협력사 안전관리자를 선임하고 있으며, 관련 비용을 원청에서 지원하고 있다.

▲ 작업 시작 전 안전관리자 및 직원들이 함께 안전구호를 외치는 모습. <현대중공업>
▲ 작업 시작 전 안전관리자 및 직원들이 함께 안전구호를 외치는 모습. <현대중공업>

“하청 노조 참여도 보장해야”

노조 참여를 적극 보장하고 있지만 ‘노조’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빠져 있다. 지부가 집계한 2010~2022년 중대재해 자료를 보면 사고성 재해와 과로사 추정으로 숨진 노동자 60명 중 44명이 하청노동자고, 16명이 정규직 노동자다. 12년간 현대중공업에서 산재사고로 숨진 노동자 73.3%는 하청노동자라는 의미다.

하청노동자 목소리를 반영할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동석 사내하청지회장은 “2021년부터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여를 요구해 왔고 지부 임단협 요구안에도 포함했지만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용진 지회 사무장은 “업체별로 진행하는 위험성평가에 노동자대표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관리직이 많다”고 전했다.

실행위원을 늘리고 교육시간을 제대로 보장돼야 한다는 것도 현장의 공통된 지적이다. A씨는 “실행위원 본인이 해 온 작업과는 전혀 다른 공정에서 발생할 위험요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데 부서별로 실행위원을 1명씩 두는 것은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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