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조로봇에 노동자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 KB오토텍은 이후 위험성평가를 통해 위험지역 안전펜스를 더욱 높였다. <정기훈 기자>

정부는 202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사망사고 만인율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담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처벌과 규제만으로는 더 이상 산업재해를 줄일 수 없다는 평가와 함께 추가적인 산업안전보건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개편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은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중심으로 삼은 위험성평가다. 아주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2013년 도입했으니 이미 10년째 시행 중이다. 그동안 위험성평가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그런데 위험성평가를 중대재해 감축의 핵심 의제로 꺼내든 정부는 노사가 함께 사업장 위험요인을 파악하고 개선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제도가 정착하면 재해감소로 이어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환영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매일노동뉴스>가 현장에서 작동 가능한 위험성평가 제도 개선방안을 살펴봤다. 안전보건공단과 함께하는 ‘중대재해 감축, 노사가 함께’ 캠페인으로 공동기획했다. <편집자>

“과거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위험설비를 정비하고 새 장비를 설치해 보기도 했는데 효과가 크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이 직접 해 보자해서 안전보건지킴이 제도를 도입했고 효과가 좋았습니다. 노동자가 말을 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박종국 KB오토텍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강조한 말이다. 충남 아산에 공장을 둔 KB오토텍은 자동차 에어컨 시스템과 열교환기 등을 만드는 부품사다. 사무직과 생산직 520명 정도 일한다. 제품은 주로 현대차·기아에 납품하고 있다. 무거운 제품을 다루기 때문에 산재와 근골격계 질환이 낯설지 않다. KB오토텍 노사는 2019년 위험성평가를 내실화하면서 산재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KB오토텍의 산업안전보건 체계 핵심은 안전보건지킴이다. KB오토텍은 안전보건 관리자가 약 5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30명은 금속노조 KB오토텍지부가 각 파트별로 1명씩 선임한다. 사용자쪽은 10~20명 내외의 똑같은 안전보건지킴이를 뽑는데, 중간관리자급을 선임한다. 이들은 전임은 아니지만 월 6시간의 활동시간을 보장받는다. 자신이 속한 공정에서 현장을 살펴보고 사진을 찍거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보장된다. 월 6시간 가운데 2시간은 전체회의를 한다.

안전보건지킴이 파트마다 1명

6일 <매일노동뉴스>가 방문한 아산 KB오토텍 공장에서는 축적된 안전보건지킴이 활동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KB오토텍의 전반적인 위험성평가는 금속노조 KB오토텍지부와 사용자쪽이 조율해 한 해 일정을 정한다. 현장조사 기간과 현장개선 기간, 교육·안내 일정을 정한다. 그러면 각 파트에서 활동하는 안전보건지킴이가 현장조사·현장개선과 관련한 부서 일정을 전체 일정 내에서 정한다. 지부 노동안전실은 해당 일정을 조율한 뒤 직접 위험성평가 실시에 참여하기도 한다.

안전보건지킴이가 파트 내에서 정한 일정을 마무리하면 결과 등이 지부로 보고된다. 지부는 해당 내용에 대한 평가를 통해 개선의 우선순위와 일정 등을 다시 정하고, 사용자쪽 안전보건지킴이와 함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사용자가 정한 안전보건지킴이가 대부분 파트의 부서장급이기 때문에 실무처리가 가능하다. 실무처리가 어렵다면 내용에 따라 노사협의를 하기도 하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의 핵심은 노동자의 입을 여는 것이다. 이활기 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안전보건지킴이가 현장 노동자와의 인터뷰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며 “그렇지 않을 때도 노동자가 안전상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점을 안전보건지킴이에게 직접 전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쪽의 안전보건지킴이도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실무수준의 협의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 박종국 KB오토텍 명예산업안전감독관(왼쪽)이 제조설비의 사고위험과 예방장비 설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 박종국 KB오토텍 명예산업안전감독관(왼쪽)이 제조설비의 사고위험과 예방장비 설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위험성평가 뒤에도 노동자 의견 수렴
사용자 ‘일방 개선’은 재검토해 수정하기도

실제 사례가 최근 설치한 차량용 에어컨 관련 설비다. 위험성평가 규정상 신규 설비를 설치하면 수시 위험성평가를 해야 한다. KB오토텍은 이 과정을 통해 끼임사고 예방을 위해 자동화 생산장비에 잠금장치를 설치했는데, 해당 장비를 운용하는 파트 노동자의 제언에 따랐다.

이처럼 KB오토텍 위험성평가의 핵심은 실제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직접 안전보건지킴이가 된다는 점이다. 임기의 정함도 없다. 업무 경험을 계속해서 안전보건 관리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 결과 실제 일하는 노동자의 눈높이에서 안전보건 관리를 강화할 수 있다.

노동자 눈높이에 맞는 안전보건 관리가 중요한 이유도 KB오토텍에서 찾을 수 있다. KB오토텍 버스 에어컨 관련 공정의 작업대 높이가 그 사례다. 이 부장은 “작업대 선반의 높이가 키가 작은 작업자에게 맞지 않아 보조용 발판을 사용자쪽이 설치했는데, 이후 인원배치를 재조정하면서 해당 공정에 키가 큰 노동자가 배치돼 발판이 되레 걸림돌이 됐다”며 “노동자 이야기를 들었다면 발판을 설치할 게 아니라 선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노동자의 관련 지적에 따라 결국 올해 하반기 발판에 대한 재개선이 이뤄질 예정이다.

▲ 제조설비를 개방했을 때 작동을 멈추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활기 금속노조 KB오토텍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의 모습. <정기훈 기자>
▲ 제조설비를 개방했을 때 작동을 멈추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활기 금속노조 KB오토텍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의 모습. <정기훈 기자>

접근 어려운 질병위험 등 한계도
사용자쪽도 “회사 관심 더 커야”

이처럼 일상적인 위험성평가가 수시로 이뤄지면서 KB오토텍은 더 안전한 작업장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있다. 사고성 산재가 아닌 질병 예방에는 취약하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은 KB오토텍에서 27년간 일한 노동자의 루게릭병을 산재로 인정했다. KB오토텍의 과거 공정 중 사용된 화학물질이 루게릭병을 유발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현재 KB오토텍 노사가 하고 있는 위험성평가는 이런 화학물질 같은 질병유발 위험인자에 대한 접근이 어렵고, 전문적인 문제제기도 쉽지 않다. 사업상 또는 보안상의 이유로 자료확보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노동자 참여의 한계도 지적된다. 이활기 부장은 “조사와 보고서 작성 같은 작업들이 원활이 이뤄지지만 결국 개선이 목적인데 한계가 있다”며 “사업주에게 어느 정도의 예산을 편성하도록 하고, 개선하는 의무를 지우고 있진 않기 때문”이고 말했다.

사용자조직의 한계도 뚜렷하다. 현재 KB오토텍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는 대표이사다. 그 아래 별도의 조직이 없고 총무팀으로 안전관리자와 환경관리자를 채용하고 있다. 환경관리자는 공석이라 안전관리자 1명이 두 업무를 겸업하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행정업무에 치여 실제 안전관리업무에 열성을 쏟기는 쉽지 않다. 이곳 안전관리자는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다소 간소화해 사업주가 보다 안전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면서도 “안전관리자로서 보기에는 사용자쪽 중간관리자의 관심이 더 확대돼야 한다”고 에둘러 지적했다.

글=이재 기자 jael@labortoday.co.kr
사진=정기훈 기자 photo@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