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소희 매일노동뉴스 기자

“센터에 온지도 몰랐어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경기 화성시 쿠팡 동탄물류센터를 방문한 날,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는 장관이 왔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노동부에 따르면 이 장관은 “폭염 수준이 가장 강한 오후 2시경 물류센터의 온열질환 예방수칙 이행실태와 근로자들의 건강관리 실태등을 점검”했다. 그런데 정작 수 년 전부터 물류센터 내 냉방장치 설치와 휴게시간 확보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 온 노조는 패싱했다. 이 장관은 동탄물류센터 외에 용인지역의 한 물류센터를 추가로 방문했는데, 그곳에서도 사측이 주선한 관계자 외에 노조와 접촉은 없었다.

노동부의 짧은 보도자료에는 장관의 그날 동선이 담겨 있다. 장관은 사측 관계자와 35분 면담한 뒤 30분 현장을 둘러보고 돌아갔다. 장관의 현장점검이 현장을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면,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간 것이었다면, 회사가 안내한 관계자와 면담하는 것이 아니라 농성 중인 노조에 귀를 기울였어야 하지 않을까.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다녀가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회사가 보여주는 공간이 아닌, 열기가 가득찬 현장 구석구석을 봐야 하지 않았을까.

공교롭게도 장관이 현장점검을 한 그날 저녁 8~9시께 쿠팡 동탄물류센터 A동 3.2층에서는 한 노동자가 쓰러져 구급대가 출동했다. 동탄물류센터는 건물이 푹 꺼져 있고 한 층을 가로로 여러 개 쪼갠 ‘메자닌’ 구조로 공기 순환이 잘 되지 않는다. 더위에 특히 취약한 센터로 알려져 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가 측정한 이곳의 체감온도는 35도에 육박한다. 체감온도 35도는 폭염경보 발령선이자 인체가 항상성을 유지하는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휴게시간 없이 냉수에만 의지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보장될 리 없다. 쿠팡 사측은 쓰러진 노동자에 대해 “수면부족”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실신이 ‘습식사우나’를 방불케하는 쿠팡 물류센터의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은 쉽게 할수있다.

장관이 패싱한 쿠팡물류센터지회는 지난달 26일부터 쿠팡 인천4센터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농성은 노동부의 이번 현장점검 취지와도 부합한다. 폭염이 심각해지자 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 566조에 근거한 노동부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대로 쿠팡에 휴게시간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회는 “쿠팡은 매시간 휴식시간을 주라는 노동부 가이드를 무시하고 하루 1회 정도만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쿠팡이 실내 체감온도를 제대로 측정하지 않은 점도 지적해 왔다. 휴식시간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려고 ‘꼼수 측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탄물류센터는 지난해 쿠팡이 “수천 대의 에어컨과 써큘레이터가 설치돼 있다”며 “민노총이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고 홍보한 곳이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에 따르면 동탄에 주로 설치된 냉방장치는 에어컨이 아닌 선풍기와 강풍기다. 매립형 에어컨은 자동포장을 하는 라인 위에 설치돼 머리만 시원하게 만든다. 물류센터 내부 전체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냉방장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설치하고, 당장 어렵다면 휴게시간이라도 보장하라는 게 노조의 요구다. 이렇듯 쿠팡은 유독 현장 노동자들과 사측의 공식 해명에 차이가 큰 사업장이다. 하지만 보수언론의 기자도 잠입취재를 하다 ‘찜통더위’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노동강도가 높은 곳이 바로 쿠팡이다.

그간 노사 교섭에서 ‘노조할 권리’마저 외면해 온 쿠팡이 노조 얘기에 귀를 기울일 리 없다. 쿠팡은 8월1일 폭염 휴게시간을 요구하며 지회가 파업하자 “파업하겠다고 밝힌 노조원은 3명에 불과하다”며 의도가 뻔한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이정식 장관의 현장점검은 노조를 패싱함으로써 아무 소득 없이 끝났다. 참고로 이 장관은 지난해에도 동탄물류센터를 방문했다. 현장을 점검한 장관의 눈과 귀는 어디로 향한 걸까. 올해도 냉방대책을 촉구하며 농성을 시작한 노조를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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