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ㄱ씨가 대치동 선경아파트에 내건 현수막. 경비용역업체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ㄱ씨는 다른 동으로 인사조치 당했다. <민주일반노조>
▲ ㄱ씨가 대치동 선경아파트에 내건 현수막. 경비용역업체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ㄱ씨는 다른 동으로 인사조치 당했다. <민주일반노조>

대치 선경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사망한 지 넉 달이 다 돼 가는 가운데 용역회사가 재계약을 미끼로 경비원 근로계약서에 갑질 조항을 추가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 아파트 경비용역 회사인 상우시스템과 3개월 계약이 만료된 경비원들 간 근로계약이 최근 갱신됐다. 일부는 지난달 29일, 일부는 같은달 30일에 근로계약서에 서명했다. 계약서에는 새로운 조항이 추가됐다. “관리주체 및 대표회의의 정당한 사유 있는 순환배치 요구가 있을시 이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다.

5년 동안 해당 아파트에서 근무한 ㄱ씨는 휴게시간에 이길재 경비대장의 복직을 요구하고 상우시스템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걸었다가 열악한 근무지로 인사 조치됐다. 이 과정에서 관리소장과 입주자대표회의의 요구가 있었다. 이번에 계약서에 추가된 내용 대로라면 ㄱ씨와 같은 인사 조치가 반복할 수 있다. 김미영 민주일반노조 법규국장은 “실질적인 사용자는 상우시스템인데,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소장에 사용자의 권한을 줘서 부당한 업무지시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업무지시를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파견법 위반 소지가 폭넓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상우시스템 쪽에 해당 조항을 넣은 이유를 물었지만 답변은 일관되지 않았다. 수차례 “환기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누군가는 계속 편한 곳에서 일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 곳에서 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입주민 민원이나 근태 문제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동안 (해당 조항이) 없었다고 넣지 말라는 법은 없다”면서 “순환배치는 불이익 조치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문제 조항은 더 있다. 퇴직금을 최대 2개월 이내에 지급해도 법적으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퇴직금은 퇴직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해야 한다. 상우시스템측은 “관리사무소에서 (퇴직금에 쓸 관리비를) 늦게 줄 가능성도 있고, 근로기준법상 당사자와 지급 기간을 합의할 수 있으며, 나중에 노동자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니 해당 조항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법규국장 “근로기준법을 무시하고 사용자의 편의대로 2개월로 잡아 놓은 것”이라며 “사용자인 상우시스템이 먼저 법 대로 14일 이내로 지급해야 하고 아파트측으로부터 관리비를 받는 건 추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치 선경아파트의 이런 근로계약은 근로계약을 3개월 단위로 쪼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 아파트의 경비용역업체는 지난 1월1일 현대관리시스템에서 ㈜상우시스템으로 변경됐다. 경비인력이 그대로 승계됐는데도, 1년 단위에서 3개월 단위 근로계약으로 변경됐다.

고용불안을 우려한 경비노동자들이 불합리하거나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근로계약서에 서명한다는 얘기다.

노조는 “경비원들은 특정 내용의 작성을 요구할 경우 고용불안 등의 이유로 거부하지 못한다”며 “아파트에서 가장 약자의 위치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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