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집 원장의 직장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퇴사한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소속 보육교사 백아무개(27)씨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던 모습. <백씨 제공>

서울시 산하 돌봄기관인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대표이사 황정일) 소속 보육교사를 지속해서 괴롭힌 어린이집 원장에게 법원이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송이 시작되자 서사원은 피해자가 원래 불성실했다는 취지로 ‘2차 가해’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

가슴 부위 들춘 원장, 서사원 대표에 ‘상추쌈’ 접대 지시
가해 원장 감봉 그치고, 피해자는 전보

2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서부지법 민사12단독(이관형 판사)은 서사원 전 보육교사 백아무개(27)씨가 어린이집 원장 A씨와 서사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이 판사는 A씨에게 53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서사원에는 37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각각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백씨를 향한 A씨의 괴롭힘은 입사 초기부터 시작됐다. 서울 서대문구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어린이집 원장 A씨는 2020년 9월25일 추석을 맞아 한복을 입은 백씨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하며 가슴 부위를 들어 올렸다.

그해 11월에는 제주도에 여행을 다녀온 사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대화방에 올리지 않고, 동행자를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성문 작성을 강요했다. ‘인격모독’은 이전에도 있었다. 같은해 7월31일께 A씨는 백씨에게 “토를 달지 말아라” “열정이 없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서사원 원장에 대한 ‘접대 강요’도 이어졌다고 한다. A씨는 백씨에게 식사 자리에서 당시 서사원 대표인 B씨에게 상추쌈을 싸서 먹여 드리라고 했다. 백씨는 “민망해서 주저하자 옆에 있던 동료교사가 쌈을 대표 입에 넣어줬다”고 토로했다. A씨는 자신의 앞치마 자수를 뜯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연차 사용 강요 △휴가 사용 간섭 △초과근로수당 미지급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정황이 드러났다. 백씨는 2020년 11월 직장내 괴롭힘으로 A씨를 신고했다. 서사원은 그해 12월 A씨에게 감봉 3개월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서사원은 A씨를 다른 구청이 받아주지 않는다며 계속 근무하도록 한 채 백씨를 2021년 5월 다른 어린이집으로 전보했다.

이 시기 백씨는 A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지만, 2021년 7월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다만 경찰은 직장내 성희롱은 맞다고 인정했다. 백씨는 결국 그해 11월 어린이집에서 퇴사했다. 백씨는 “처음 겪은 일이라 충격받아 발작을 일으킬 정도라 그 상태로 아이들을 보기 힘들었다”고 울먹였다.

법원 대부분 책임 인정 “위자료 소액 그쳐”
가해자 여전히 재직 중

백씨는 지난해 5월 서사원과 A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하지만 ‘2차 가해’는 이어졌다. 황정일 대표는 같은해 11월 서울시의회 감사에서 “상당히 근로자에게 경도된(치우친) 판정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데도 인사위원회에서 감봉 3개월로 최종 결정했다고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재판에서도 서사원측은 “불성실하고 책임감 없는 태도가 있었다” “종종 없는 말을 지어낸다”는 등의 답변으로 백씨를 공격했다.

법원은 지난 9일 A씨와 서사원의 배상 책임을 대부분 인정했다. A씨의 ‘성희롱 발언’과 ‘상추쌈 강요’를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정했다. 제주도 여행에 대한 반성문 제출 강요도 직장내 괴롭힘이라고 명시했다. 앞치마 자수를 뜯어달라는 요구 또한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서사원에도 ‘공공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았다고 보고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공가 처리 거부·초과근로수당 미지급 등 근로기준법 위반 부분은 정신적 손해가 아니라며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토를 달지 말라” “열정이 부족하다” 등 발언도 인격권 침해는 아니라고 봤다. 백씨가 다른 교사와 식사할 때 “그러다 정분 나”라고 표현한 점 역시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백씨 전보조치와 관련해서도 원장 임면권이 자치구에 있어 불가피한 사정이었다고 해석하며 ‘2차 가해’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1년 넘게 끌어온 소송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고통은 치유되지 않았다고 백씨는 하소연한다. 백씨는 업계를 떠났지만, 원장 A씨는 여전히 재직 중이다. 그는 “재판에서 서사원 직원들이 떼로 몰려와 일부러 웃고 시끄럽게 떠들었다”며 “원장이 직원들의 진술서를 다 받았더라. 보육교사로서 인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세상이 바뀌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만 든다”고 했다.

백씨를 대리한 한민옥 변호사(법무법인 논현)는 “동성의 상급자가 형사처벌을 받지 않을 정도의 성희롱을 했을 때도 직장내 괴롭힘이 인정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기관 대표자에게 쌈을 싸 드리라는 지시를 하는 등 사회통념에 반하는 지시 또한 괴롭힘으로 인정된 사례”라고 평가했다. 다만 “정신적 손해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 판례 태도는 아쉽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원장이 교육 중이라 자리를 비워 답변이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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