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면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적용받지만 구청 보건소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일부만 적용받는다. 같은 학교에서 일해도 조리사는 안전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특수교육지도사는 그렇지 못하다. 왜 이런 차별이 발생하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가 다음달 1일 ‘공공행정 등에서 현업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준’ 고시 개정에 앞두고 산업안전보건법 일부를 적용제외하는 ‘현업업무 종사자 기준’ 문제를 3회에 걸쳐 살핀다. <편집자>

“(표준)직업분류표도 찾아봤는데 우리 일은 없더라고요. 민간과 달리 농기계를 수리하고 빌려 주고 배달해 주고 하는 일은 우리만 해서 그런가 봐요.”

기자가 “생소한 직업”이라고 하자, 강만규 민주연합노조 홍천지부 부지부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지난 21일 오전 홍천버스터미널에서 만난 강 부지부장은 농기계 임대·수리 업무를 하는 공무직이다. 그는 “좀 덜 바쁠 때 왔다”며 “농번기에는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농가 부채의 가장 큰 원인이 농기계 구매다 보니까 지방자치단체에서 농민 소득에 보탬이 되고자 저렴하게 농기계를 임대해 주는 정책을 펴는 거죠. 이게 아주 현장에서는 호응도가 높은 실질적인 정책이에요.”

강 부지부장의 1톤 트럭이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농업기술센터 내 농기계임대사업소 앞에 멈춰 섰다. 사업소 안에는 ‘반장님’이라 불리는 염아무개씨가 목초절단기 부품인 베어링 수리에 한창이었다.

파종이 끝난 6월 말은 사업소가 한숨 돌리는 비수기다. 장마철인 8월까지는 농번기에 비해 다소 한가로운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긴장을 늦추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다. 9월부터 11월까지인 수확기를 앞두고 콤바인, 콩 탈곡기 같은 농기계를 미리 점검하고 정비해야 한다. 1년에 최대 100여차례 농가에 직접 방문해 방문 수리, 수리 교육을 하는 순회 교육도 앞두고 있다. 분주한 사업소 안에 쇠, 땀 냄새와 엉킨 분진이 가득했다.

▲ 농기계 부품과 본체를 내리거나 선반에 진열하기 위해서는 도르래 장치인 호이스트를 이용한다. 작업자가 호이스트를 이용해 콤바인 부품을 들어올리고 있다. <정소희 기자>
▲ 농기계 부품과 본체를 내리거나 선반에 진열하기 위해서는 도르래 장치인 호이스트를 이용한다. 작업자가 호이스트를 이용해 콤바인 부품을 들어올리고 있다. <정소희 기자>

부서지는 손가락, 쇳가루가 들어간 눈

홍천읍 농기계임대사업소는 홍천에서 규모가 가장 큰 ‘본소’다. 홍천군에는 본소 1곳과 지소 5곳을 포함해 6곳의 농기계임대사업소가 있다. 총 14명의 공무직(기간제 노동자 별도)이 농기계를 임대하고 수리하며 이곳에서 일한다. 6곳을 합해 총 4천970제곱미터에 이르는 사업소에서 관리하는 농기계는 80여종, 1천대다.

이곳의 농기계는 지자체 소유다. 농기계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군민에게 농기계를 임대해 준다. 2021년 기준 농기계 임대 건수는 1만70건이다. 하루 평균 27건이다. 노동자들은 5톤 트럭을 이끌고 농기계를 집집마다 배달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공무직은 1종 보통면허는 기본이고 산업기사·정비기능사·지게차 운전면허 등 다양한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염 반장도 10년 전 이곳에 오기 전까지 30년 가까이 민간 농기계 수리업체에서 일한 베테랑이다.

1천개의 농기계는 다양한 작업을 거쳐 농민에게 전해진다. 사업소 한켠에는 제조업 공장을 방불케하는 정비실이 따로 있다. 절단기인 그라인더, 용접기와 같은 장비부터 산소를 이용하는 산소절단기와 산소통도 놓여 있다. 염 반장은 수년 전 그라인더로 농기계 부품을 자르는 작업을 하다가 쇳가루가 보안경을 비켜 튀는 바람에 눈에 박힌 적이 있다. “안과 가서 만원이면 (쇳가루를)뺀다”며 “별로 다친 일도 아니다”고 웃으며 말할 만큼, 이들에게 크고 작은 부상은 일상적이다.

기간제로 일을 시작해 어느덧 1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한 이승준(40)씨도 5년 전에 장비를 들어올리는 도르래인 호이스트와 기계 사이에 손가락이 끼여 뼈가 으스러졌다. 왼손 중지는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린다. 강만규 부지부장도 수년 전 오른손 중지를 다쳐 아직도 신경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 작업자가 농기계 부품을 수리하기 위해 쇠막대를 용접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 작업자가 농기계 부품을 수리하기 위해 쇠막대를 용접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일은 몰리는데 사람은 부족
2인1조 작업 불가능한 현실

홍천군은 노조 조합원인 강만규 부지부장과 이승준씨의 요구로 올해부터 모든 공무직에게 산업안전보건법 130조가 정한 특수건강진단을 받기로 했다. 10년 차 공무직인 강 부지부장은 자신이 하는 일의 위험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위험하지 않은 일이 없다고 봐야 되죠. 오함마(대형망치)로 부품을 두들기기도 하니까 진동이 손으로 전달되고 그 일을 반복해 하다보면 손목이 시큰해져요. 용접할 때 나오는 가스, 휘발유와 경유 세척제 성분에도 노출돼 있죠.”

현재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상 현업고시 종사자에서 제외돼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들어갈 수 없지만, 들어가게 된다면 제기할 산업·안전 문제는 산적해 있다.

봄과 가을에 기계를 빌려 주고 회수하면 진드기나 쥐가 기계와 함께 딸려와 쯔쯔가무시증이나 전염병을 노동자에게 옮길 수 있다. 녹이 슨 기계를 정비하다 몸이 다치는 경우도 많아 파상풍도 우려된다. 수확철에는 탈곡기나 콤바인을 청소하다 나오는 분진때문에 감기에도 자주 걸린다. 기계를 바닥에 놓고 정비하다 보니 쪼그려 앉아 일해 허리와 무릎이 상하기도 한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대형사고다. 농가에서 트랙터를 가져와 농기계를 결착하다가 발생하는 사고 우려가 현장에서는 높다. 최근에도 트랙터에 굴착기를 부착하다가 임차하러 온 농민과 서로 신호가 맞지 않아 트랙터와 충돌한 지게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사람이 다치지 않았지만 자칫하면 중대재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인력부족 문제도 있다. 본소에는 5톤짜리 트럭 운전을 전문적으로 하는 운전수가 2명 배치돼 있지만 지소에는 운전수가 없다. 이 때문에 공무직이 직접 대형트럭을 운전해 농가로 설비를 배달해야 한다. 익숙한 지형이라 해도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다닐 때는 긴장감이 배로 높아진다. 특히 운전을 마치고 기계를 하차할 때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리프트가 없어 상하차용 사다리로 장비를 오르내릴 때 기계가 전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를 우려해 현장에서는 2인1조 출장을 장려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일이 바쁠 때는 2인1조 원칙이 지켜지기가 어렵다. 운전수를 비롯한 전문인력 추가 채용과 상하차용 전용 기기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승준씨는 “농기계 전문 세차장까지 (임대)사업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더욱 걱정이 된다”며 “인력은 늘 부족한데 저임금이다 보니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고 말했다. 홍천군의 10년 차 농기계 수리·임대 노동자는 각종 수당을 포함해 세전 월 30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 강원도 홍천군 농업기술센터 농기계임대사업소 본소의 모습. 수백킬로그램의 농기계들이 본소 안 선반에 진열돼 있다. <정소희 기자>
▲ 강원도 홍천군 농업기술센터 농기계임대사업소 본소의 모습. 수백킬로그램의 농기계들이 본소 안 선반에 진열돼 있다. <정소희 기자>

“누구도 안전에서 소외되지 않게”

인력부족은 홍천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공운수노조 자치단체공무직본부 장수군지부 소속 태창진(52)씨는 전북 장수군에서 13년간 농기계 수리·임대 공무직으로 일해 왔다. 장수군에는 본소까지 합해 7곳의 농기계임대사업소가 있다. 그중 5곳은 2명만 일한다. 2인1조 출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태씨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2명이 일하는 지소는 격주로 주말 근무도 해서 피로감이 항상 높다”고 말했다. 장수군은 농작업 대행 업무까지 겸하고 있다. 볏짚을 말아 준다든가 옥수수를 파종하고, 모를 이양하고, 벼와 잡곡을 수확하는 일도 한다. 홍천군도 지난해까지 공무직이 맡아 했지만 수요가 많아 일을 감당할 수 없어 올해부터 민간에 위탁을 주기 시작했다.

태씨는 농기계 전문교육 필요성도 느낀다고 강조했다. 농업기술이 전문화할수록 농기계 임대·수리를 맡은 공무직의 업무도 고도화하고 있다. 태씨는 “54종, 1천여대 기계를 다루지만 해당 기계의 위험성과 작동법을 모두 아는 직원은 없다고 봐야 한다”며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에 농기계임대사업소는 436개소, 공무원을 포함해 전담 인력은 총 1천949명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작업에 대한 실태조사나 위험성 조사는 부족하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상 현업고시 직종에 이들을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현정 공공운수노조 자치단체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안전보건교육이 의무화하면 최소한의 교육 수준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며 “노조가 없는 사업장을 포함해 안전에서 소외되지 않는 사람들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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