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는 이유다. 그런데 '공공성'을 이유로 공공행정, 교육서비스, 국방 업무를 맡는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를 적용받지 못한다. 그 누구도 안전할 권리에서 배제해서는 안 된다. 공공운수노조가 6월 말 개정을 앞둔 고용노동부 고시 '공공행정 등에서 현업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준'을 바꿔야 하는 이유를 네 차례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 손재선 공공운수노조 자치단체공무직본부 사무처장
▲ 손재선 공공운수노조 자치단체공무직본부 사무처장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법적용에 여러 예외 대상이 있다. 그중 하나가 ‘공공행정’이다. 법은 ‘현업 업무 노동자 이외에 공공행정 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안전교육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고용노동부는 시행령에 근거해 공공행정 등에서 현업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준을 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도로, 건설, 산림, 청사 관리, 조리, 청소, 폐기물 수집·운반 등 현장 업무만 하지 않는다. 공공행정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수도 검침원, 농기계 임대 및 수리, 체육시설 보수, 도서관 사서, 보건소·가정방문, 민원 콜센터를 포함한 민원 상담, 감염병 현장 대응, CCTV 관제 등 수많은 직종의 노동자들이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민간 영역에서 산업안전보건위 대상으로 당연적용되는 직종의 노동자들이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해 행정기관에서는 제외된다는 것이다.

도농복합신도시 수도 검침노동자들은 검침을 위해 평균 1천700~2천200전의 수도함을 여닫는 노동을 반복한다. 특히 농촌은 뱀이나 각종 반려동물에 물리는 일도 다반사다. 농기계 임대 및 수리, 체육시설 보수노동자들은 무거운 수리 장비·도구 사용으로 손끼임 사고, 발등 찍힘 등 안전사고에 늘 노출된다. 하루 종일 전화 상담하는 민원 콜센터 노동자들은 두통과 이명, 어지러움, 청력 저하, 만성피로 같은 다양한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CCTV 관제센터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를 보기에 낮에 눈이 시려 밖에 나가기 힘들어한다. 겨울에도 선글라스를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은 시력 저하, 안구 건조증 같은 만성질환에 시달린다. 심지어 이들은 365일 24시간 가동하는 업무특성상 야간 근무를 교대로 해 특수건강검진 대상자에 해당된다. 그러나 공공행정으로 분류돼 산업안전보건위·안전보건교육 의무 대상에서 제외된다. 컴퓨터만 여러 대 있는 좁은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 일하는 CCTV 주‧정차 단속노동자들은 기계 소음과 미세 분진으로 고통받는다. 기계 열이 오르면 안 되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에어컨을 가동하는 작업 환경으로 감기를 달고 일한다.

보건소 노동자들 역시 공공행정으로 묶여 있다. 간호사들은 코로나19 선별 검사로 방호복을 착용하고 겨울에는 추위와, 그 외 계절엔 더위로 고생하며 일한다. 간호사뿐만 아니라 보건소에서 일하는 물리치료사·방사선사·임상병리사 등 노동자들은 병원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전자파나 결핵·에이즈 등 감염에 노출된다.

또 보건소에서 가정방문을 하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노동자들은 가정에 방문할 때마다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일부 노동자들은 업무 중 트라우마로 안정제를 먹고 가정에 방문한다. 민원인의 신체 노출, 성적 추행, 폭언 등으로 고통받는다. 애완동물 때문에 민원인과 다툼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애완동물에 물려 다치기도 한다. 방문서비스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긴장이 풀려 자동차를 운전하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보건소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을 달리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노무를 제공하는 노동자는 누구든 예외 없이 산업재해에 노출돼 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직 노동자들 역시 일하다 다치고 아프다. 노동자들의 노동 형태와 환경·방식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공공행정이란 이유로 사용자에게 산업안전과 보건 조치 의무를 제외시켜 주는 것, 즉 행정기관 노동자들의 업무를 위험도가 낮은 업무로 분류해 실제 위험하더라도 무시해도 되는 업무로 둔갑시키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법을 차별 적용해선 안 된다. 어디서,어떤 일을 하든 법은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어떤 사업장은 적용되고, 어떤 사업장은 예외를 두는 규정은 엄연한 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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