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파업한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취지의 판결과 관련해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공동불법행위자들 간 ‘공동 배상책임 원칙’은 유지하되 쟁의행위에 참여한 노조 조합원 개인의 ‘책임 비율’만 달라진다는 것이다. 종전에도 책임제한 비율을 다르게 판단한 판결이 있다고 했다.

또 회사가 위법한 쟁의행위에 여전히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므로 손배 청구가 봉쇄되거나 제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도 내놓았다. 정·재계를 중심으로 손해배상청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자 이례적으로 추가 해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동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불법파업 ‘딱지’가 유지된 판결로서 ‘반쪽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책임제한 비율만 개별화, 법원 재량 판단”

대법원은 19일 A4 용지 4쪽 분량의 추가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15일 현대자동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 판결과 관련해 일각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대법원은 먼저 “공동불법행위자들 간 책임제한 비율만을 개별화함으로써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했다”고 설명했다. 부진정연대책임에 대한 기존 법리를 ‘쟁의행위’에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와 조합원 4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판결 취지를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조합원 개인 책임을 50%로 산정해 청구액을 20억원으로 인정한 원심판결이 불합리하다고 판결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인 책임 제한 정도를 따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날 대법원 추가 보도자료도 맥락을 같이 했다. ‘쟁의행위 가담 사실·쟁의행위 위법성·손해’ 입증을 기업이 하는 것은 종전 판례와 동일하고, 다만 법원의 재량에 따라 ‘책임제한 비율’만 달리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이를테면 기존 판결에 따르면 A·B·C가 동일하게 20억원 중 50%인 10억원을 공동으로 배상한 것과 다르게 A(50%)·B(40%)·C(30%) 같이 책임비율을 차등 적용할 수 있다.

“손배 청구 봉쇄, 개인별 입증 주장 잘못”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기업은 여전히 위법한 쟁의행위에 가담한 피고들을 상대로 전체 손해를 입증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므로 입증책임 부분에서 달라지는 점이 없다”며 “다만 기업이 입증한 손해 중 피고들이 개별적으로 부담하는 책임비율이 서로 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쟁의행위 사안을 기존 판례에 추가한 것으로, 판례 변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계에서 우려하는 책임비율 ‘입증’ 부분에 대해서도 “법원이 재량으로 결정하는 것으로서 기업에 입증책임이 있는 사항이 아니다”며 “기업 입증책임은 기존과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전경련은 판결 이후 개인의 책임범위 입증이 힘들다는 취지로 주장한 바 있다. 재계의 주장을 겨냥한 설명으로 읽힌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손해배상청구를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거나 개인별로 손해를 입증해야 하게 됐다는 주장은 판결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부진정연대책임’도 유지, 법조계 “노란봉투법 입법해야”

총 배상액은 같은 만큼 ‘부진정연대책임’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민법 760조는 개별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집단적 불법행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공동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공동불법행위책임에 관한 민법 760조에 어긋난 것이라거나 부진정연대책임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판결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원합의체가 아닌 ‘소부’에서 판결한 배경도 판례 변경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 설명은 재계와 노동계의 각자 해석과도 다르다. 회사의 개별 입증책임을 지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쟁점과 그대로 연결하기는 어렵다. 노조법 개정안 3조2항은 ‘손해에 대해 각 배상 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범위를 정하도록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기에 법조계는 ‘한계’가 있는 판결이라고 지적한다. 서범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불법파업과 부진정연대책임이라는 기존 법리는 그대로 유지하는 판결로, 책임 비율을 제한하더라도 개인 조합원의 책임은 훨씬 크다”며 “부진정연대책임에 따른 채무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조속한 개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판결”이라고 말했다.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는 “책임제한의 개별화보다는 연대책임비율의 개별화가 맞을 것 같다”며 “일정 부분 책임의 경감효과는 있을 것 같지만, 결국 법 개정으로 풀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을 비롯한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15일 오전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 판결 직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을 비롯한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15일 오전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 판결 직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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