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회사의 자동차 생산대수 증가 방침에 반대해 노동자가 생산라인을 중단한 행위로 징계해고한 것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생산라인 중지 이후 추가 노동을 통해 손실이 회복돼 실제 막대한 손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취지다.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의 성격은 다르지만, 매출감소에 따른 손해를 엄격히 입증하라는 취지의 올해 6월 ‘현대자동차 손해배상 소송’ 대법원 판결과 맥락이 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생산대수 증가에 반발 ‘생산라인 정지’

1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송각엽 부장판사)는 한국지엠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등 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지난 7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사건 발단은 한국지엠이 ‘시간당 차량생산대수(JPH) 증산’을 강행하면서 시작됐다. 컨베이어벨트 공정 속도는 JPH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JPH 상향은 곧 노동강도로 이어진다. 회사는 2020년 초 JPH 수치를 24대에서 26대로 점차 높이다가 그해 8월26일 30대로 높이겠다고 통보했다. 그러자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대의원과 집행부 간부 33명은 그날 오전 증산을 저지하기 위해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작업중지’도 이어졌다. 노동자들은 문제가 발생해 도움을 요청할 때 예외적으로 공정을 중단시킬 수 있는 장치인 ‘안돈줄’을 당겼다. 안돈줄을 당기면 공정이 중단된다. 사측은 안돈줄이 끊기는 등 작업이 중지되고 작업자들이 항의 표시로 조퇴해 생산라인이 가동되지 못했다며 임시 휴업조치를 했다.

사측은 즉각 징계 절차에 돌입했다. 대의원과 간부 5명이 안돈줄을 당기거나 절단해 생산라인이 중단되고 사무실과 부사장 집무실에 들어와 문을 발로 차고 책상 등 집기를 파손했다는 이유였다. 특히 지부 대의원인 안아무개씨의 경우 안돈줄을 절단해 85분간 라인이 중단됐다는 이유로 2021년 4월 징계해고했다. 나머지 노동자 4명은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사측 “보복성 범법행위” 1명 해고·4명 정직

안씨 등은 부당해고와 부당징계라며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인천지노위는 “해고는 정당하나 정직은 양정이 과도하다”며 안씨의 구제신청은 기각하고 나머지의 징계는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중노위는 초심을 뒤집고 부당해고도 인정했다. 임원실 기물 파손·폭행을 제외한 징계사유는 정당하다고 보면서도 양정이 과다하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사측은 지난해 2월 소송을 냈다. 이와 별개로 회사는 작업중지를 주도했던 9명을 형사 고소했다. 이들은 업무방해·재물손괴 등 혐의로 기소돼 2021년 12월 벌금 100만~400만원의 약식명령이 확정됐다.

사측은 “공동 불법행위”를 강조했다. 안씨 등의 생산라인 정지행위는 단체협약에서 정한 징계사유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회사에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을 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재물손괴 행위도 단협상 징계사유인 사내 폭행으로 규율을 문란케 했을 경우라고 했다. 사측은 “안씨 등은 회사가 생산대수를 상향한 데 대한 보복으로 손해를 가할 목적에서 범법행위를 저질렀다”며 “안씨의 안돈줄 절단으로 자동차 약 40대분의 생산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징계사유’는 인정 “필수 공정 중단, 손실 발생”

법원은 회사 청구를 기각했다. 노동자들이 집무실을 점거해 공동으로 재물손괴·폭언·협박을 했다는 사유는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안돈줄을 이용한 생산중단’ 행위는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안씨가 안돈줄을 절단해 회사 업무 중 필수적인 자동차 생산공정을 중단시켜 약 40대분의 생산손실이 발생했다”며 “350여명의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지 못했으므로 회사에 막대한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손해 발생’ 부분에서 올해 6월 ‘현대자동차 손해배상 소송’ 대법원 판결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노동자측은 회사가 “막대한 손해 발생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쟁의행위로 인한 부족 생산량이 만회됐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정비용 상당 손해의 발생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은) 손해 산정에 관해 판시한 것”이라며 “징계처분은 손해 전보와는 달리 기업 공동 질서를 위반한 행위를 제재함으로써 기업질서 확립·유지를 도모하는 것이므로 위 법리가 징계처분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회사가 주장한 ‘막대한 손해’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간부들의 재물손괴로 인한 600만원 피해는 인정했지만, 이는 안씨 등이 아닌 간부들의 행위로 인한 피해가 포함된 액수에다가 회사 규모에 비춰 막대한 손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징계양정은 과도, 추가 생산으로 만회”

그런데 ‘징계양정’ 판단에선 방향이 바뀌었다. ‘안돈줄 절단’으로 인한 손해가 추가 생산으로 회복됐을 것이라며 양정이 과도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지부는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JPH 30대 시행을 합의해 생산차질은 근로 밀도 강화를 통한 추가 생산으로 만회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생산량 회복은 근로자들의 협력과 노동이 더해짐으로써 달성되는 것이므로 이를 오로지 회사 노력으로 손해가 회복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손해 ‘발생’의 징계사유는 인정하면서도 ‘책임’의 여지는 적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힌다.

회사는 안씨가 10년 전인 2011년 3월 안돈줄을 당겨 생산라인을 정지시켜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작업자 우측 검지가 기계에 협착되는 안전사고가 발생했는데 관리자가 기계 이상 여부만 확인한 후 공장을 재가동시키자 안전조치 시행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에서 생산라인을 정지시킨 것”이라며 “동기에 참작할 사정이 있고 9년 전에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대의원 A씨가 안돈줄을 당긴 행위도 서브 공정으로 생산라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아 생산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올해 6월 대법원의 손해배상 책임제한 법리를 어느 정도 적용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법조계는 평가한다. 대법원은 ‘공동불법행위’를 한 조합원들의 책임 비율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안씨 등을 대리한 서범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복수 노동자들의 항의성 행위가 있었을 때도 명확한 근거 없이 이를 공모나 계획으로 보고 모든 노동자에게 객관적 근거나 행위 특정 없이 행위의 책임을 징계사유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본 판결”이라며 “징계양정에서 대법원 판결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판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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