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조파업으로 회사에 끼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물을 땐 불법행위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에 노동계와 재계는 엇갈린 입장을 내놨다. 노동계는 쟁의행위에 따른 손배 책임을 엄격히 제한했다며 환영했고, 재계는 산업계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에 대한 정당성을 법원이 확인해 준 셈이어서 이번 판결로 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노동계 “손배청구 제한될 것”
재계 “사용자가 피해 떠안을 것”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제한 정도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이날 대법원은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가 금속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손배청구 소송도 배상금 산정을 다시 하라는 취지로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양대 노총은 환영 입장을 냈다. 민주노총은 “향후 대법원이 헌법상 노동 3권 보장 취지를 충분히 살려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기조를 명확히 한 것으로 대법원 판결에 따라 향후 쟁의행위시 개별 조합원에 대한 손배 청구나 고정비용 손배 청구가 일정하게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쟁의행위에 대한 사측의 묻지마식 손해배상 청구에 경종을 울리는 중요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경총을 비롯한 재계는 산업계 미칠 파장을 우려하며 유감을 표했다. 경총은 “불법파업에 가담한 조합원별 책임 범위 입증이 힘들어 파업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사용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사용자의 유일한 대응 수단인 손배 청구가 제한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속노조는 유감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대법원이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 손배 사건’에서 노동자 투쟁을 정당방위라고 인정했는데도 이날 대법원에서 배상금액을 감액하긴 했지만 여전히 불법이라고 판단한 데 아쉬움을 표한 것이다. 노조는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쌍용차지부는 KG모빌리티측에 “대승적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대표이사 면담을 요구할 계획이다. 김득중 지부장은 <매일노동뉴스>에 “사회적 갈등비용을 추가로 양산할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돌입한 만큼 원만한 노사관계를 기반으로 미래기업으로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당 “입법부 기능까지 자처해”
야당 “노란봉투법 통과에 협조해야”

시민단체 ‘손잡고’도 이날 논평을 내고 “손배소가 손해를 배상하려는 목적이 아닌 저항하는 노동자에게 괘씸죄를 묻는 도구로 남용되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다”며 “노란봉투법의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재확인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노란봉투법’ 개정이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에 대해 간호법과 양곡관리법처럼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주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정부와 여당이 노란봉투법을 반대할 명분은 사실상 사라졌다”며 “이제라도 해당 법에 대한 부당한 비방을 중단하고 법안 통과에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은 법원 판결에 반발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김명수 대법원이 법을 해석·적용하는 사법부 본연의 기능을 망각하고 법을 창설하는 입법부 기능까지 자처하고 나섰다”며 “노란봉투법에 담고자 하는 내용을 법원이 먼저 나서 인정한 셈인데 삼권분립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국민의힘은 정치적 편향성을 운운하고 인신공격에 나섰다”며 “공당으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강 대변인은 “더 이상의 억지 주장과 궤변을 멈추고 ‘합법 노조활동 보장법’ 개정에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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