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 기자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파업한 비정규직에게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현대자동차가 대법원에서 잇따라 패소했다.

대법원 민사 1부(대법관 노태악)는 29일 오전 현대차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지회장 김현제)와 조합원 등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3건을 모두 파기하고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불법파견 해결 요구 비정규직 파업에 천문학적 손배 청구

사건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회는 2010년 현대차의 불법파견이 대법원에서 인정되면서 불법파견 문제 해결 등을 요구했다. 2012년 6월8일부터 임금인상과 불법파견 보충, 근무형태 변경 요구안을 갖고 현대차에 교섭을 요구했다.

현대차는 교섭 당사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다. 그러자 지회는 같은해 8월과 11월, 12월 각각 파업을 했다. 현대차는 파업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5억4천629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급심은 이 가운데 4억4천701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앞선 15일 쌍용자동차와 지회 판결과 유사한 법리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조의 쟁의행위 뒤 휴일·연장근로 등으로 손실이 만회되고, 이에 따른 매출 감소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고정비를 손해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다.

쟁의행위 손배 소송에서 진일보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기호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이날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노조의 쟁의행위 뒤 추가 생산을 통해 생산손실을 만회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여러 사건에서 적용 가능한 판결”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통해 제조업 생산 현장에서 배상 책임을 제한한 것으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단체법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사건에 대등한 개인 간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민법을 적용한 기존 관행도 제한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 변호사는 “대법원은 쟁의행위의 단체법적 성격에 비춰 단체인 노조가 쟁의행위에 따른 책임의 원칙적 귀속주체가 된다고 판시해 노조와 개별 조합원의 손배 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노동 3권을 위축한다며 민법 적용 제한 취지를 명백히 드러냈다”고 말했다.

인지대 마련 못해 상고 포기한 노동자 부지기수

다만 한계도 명확하다. 노조법상 쟁의행위의 범위를 협소하게 해석해 이를 조금만 벗어나도 여전히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구조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노조법 2·3조 개정을 촉구했다.

김현제 지회장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발생한 불법파견이라는 범죄로부터 출발한 손배소가 10년을 넘게 끌었고 이 사이 많은 노동자가 구속되거나 해고됐다”며 “지난달 불법파견에 대한 형사법 재판이 끝났지만 현대차는 고작 벌금 3천만원 부과에 불과하고, 범죄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도 불법파견 해소 등을 요구하며 현대차와 교섭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현대차는 불법파견 범죄 자체를 해결하려는 하청노동자의 정당한 요구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매출 감소가 불확실하다는 상식적 주장마저 배척하고 노동자에게 천문학적 금액을 배상하도록 해 상고를 위한 인지대도 마련하지 못해 소송을 포기한 노동자가 부지기수”라며 “기업과 노동권을 행사한 노동자가 민사소송을 두고 다툰다는 것은 시작부터 공정하지 못한 쩐의 전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나마 비정규직 손배소 사건 10년 간 사법부도 일관되게 교섭을 거부하는 현대차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국회는 조속히 불법파견 같은 문제를 교섭으로 풀 수 있도록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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