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지난 5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111차 총회에서 한국 노동계와 정부가 치열한 ‘노조탄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양대 노총은 국제노동기구(ILO) 111차 총회를 찾아 윤석열 정부의 노동탄압에 대해 ILO의 역할을 요청했다. 질베르 웅보(Gilbert F. Houngbo) ILO 사무총장은 양대 노총과의 면담에서 “양대 노총 대표가 전한 이야기로도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파악했다”며 “현재 해당 내용이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에 진정돼 절차가 진행 중이니 결과가 나오는 대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다. 정부가 지난해 한국에서 발효한 ILO 기본협약 87·98호를 위반했다는 판단이 서면 ILO는 경고 등 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ILO 사무총장 “화물연대 파업 듣고 놀라, 예의주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지난 11일 오전 11시(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질베르 웅보 사무총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양 위원장은 “정부가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 탄압을 시작으로 최근 건설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펼치며 노사관계를 30년 전 독재정권 수준으로 악화하고 있다”며 “현재 정부는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류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는 파업 중 대체근로 허용, 과로를 조장하는 연장근로 집중사용 등 사용자의 오랜 숙원을 노동정책에 반영하려 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노동조합에만 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웅보 사무총장은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ILO 아태총회 민주노총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을 만났다”며 “화물연대 파업 탄압 상황을 듣고 놀랐고 그 뒤 한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웅보 사무총장과 함께 배석한 마리아 엘레나 노동자활동지원국 (ACTRAV) 국장은 “ILO 협약 87호·98호 이행에 대한 정기 감시·감독 절차가 올해 개시된다”며 “(해당 사건이) 이미 제소가 이뤄져 검토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감시·감독 절차를 통해 ILO의 경고 메시지가 잘 전달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노동계의 ILO 제소는 지난해부터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9월 건설노조는 노조의 단체협약 체결 요구에 강요죄와 공갈죄를 적용하는 정부와 수사당국 조치가 ILO 협약을 위반했다고 보고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에 제소했다. 그해 12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화물노동자 파업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정부를 제소했다.

양경수 위원장 “87·98호 협약 위반”
“한국 정부 감시·감독해야” 요청

12일(현지시각) 열린 ILO총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를 향한 노동계 비판은 이어졌다.

한국 노동자 대표로 기조연설에 나선 양경수 위원장은 “노동조합의 활동과 법은 과거와 동일한데 정부가 바뀌고, 적용이 달라지니 모든 것이 불법이 돼 버린다”며 “왜곡된 노사법치는 거꾸로 노동기본권을 파괴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불안정한 고용,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려 사용자에 교섭을 요구하는 건설노조의 단체교섭 행위를 공갈·협박으로 간주해 강도 높은 수사에 나서고, 법적 근거 부족 논란이 있는 노조 회계장부 제출 요구 등을 지적한 것이다.

양 위원장은 사용자 범위와 쟁의행위 대상을 넓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에 고용노동부가 공식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여당·대통령이 법안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는 상황도 언급했다. 그는 “(노조법 개정안은) 지난 수십 년 동안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와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반복적으로 내린 권고의 지극히 일부만을 반영한 법”이라며 “(정부가) ILO 협약을 거부하는 것이다. 철저한 감시·감독이 시급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경사노위 전면 불참에도
“노사 대화 위해 노력” 노동부 자화자찬

본회의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한 권기섭 노동부 차관은 “한국 정부는 노사법치의 기반하에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며 “노사법치를 확립하고 반칙과 특권을 배제해 노동시장 내의 공정성을 회복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조 회계장부 제출 요구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의 민주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사회적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조회계의 투명한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대 주 69시간 장시간 노동 논란을 일으킨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은 “근로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노총이 지난 7일 경사노위 전면 불참을 결정하면서 노·사·정 대화는커녕 노·정 대화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권 차관은 “한국 정부는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 실현을 위해 노동시장에서의 법치주의 확립과 함께 노사가 협력과 대화를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질베르 웅보 사무총장이 제출한 ‘사회정의 증진(Advancing social justice)’를 놓고 각국 노·사·정이 토론을 진행했다. 보고서는 사회증진의 핵심요소로 △보편적 인권과 역량 △기회에 대한 공평한 접근 △공정한 분배 △공정한 전환 등을 꼽았다.

웅보 총장은 보고서에서 “정부와 사용자 및 근로자 단체는 정책에 대한 사회적 대화 과정에서 공동 솔루션을 형성하고 신뢰를 구축한다”며 “효과적인 사회적 대화는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 공정한 전환 등 미래 과제를 해결해 나갈 제도적 역량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111차 ILO 총회는 이달 16일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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