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이용해 사내대출 축소하도록 개입한 것은 단체교섭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노동계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에 반하는 판결이라며 비판했다.

7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1부(재판장 강동혁)는 지난달 21일 한국노총 공공부문노조협의회(공공노련·공공연맹·금융노조)가 기재부를 상대로 낸 경영평가편람 수정처분 취소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내렸다. 기재부의 경영평가편람 수정처분이 행정처분에 해당하지 않아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취지다.

쟁점은 경영평가의 구속력
법원 “구속력 있지만 단체교섭권 침해는 아냐”

기재부는 2021년 7월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을 개정해 공공기관 사내대출과 지원범위를 축소했다. 이후 경영평가 기준에 ‘사내대출 등 기관별 복리후생 제도 개선 및 과도한 복리후생 항목 존재 여부’를 추가하도록 2021년도 경영평가편람을 수정했다.

쟁점은 기재부 경영평가의 구속력이었다. 한공노협은 기재부가 경영평가를 통해 지침을 강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사내대출을 규정한 단체협약을 변경하도록 해 단체교섭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반면 기재부는 공공기관 관리·감독을 위한 사무처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기재부 경영평가의 구속력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평가기준을 정한 경영평가편람은 사실상 공공기관의 운영 및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구속력을 갖고 있다”며 “경영실적평가 결과가 저조한 공공기관에 대해 예산 인사상 불이익, 임직원에 대한 성과급 미지급 및 감액 등이 발생할 여지는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개별 교섭에 따른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공기관은 혁신지침 개정 취지를 받아들여 사내대출 제도를 변경할지에 관해 자율권을 가지고 있다”며 “추후 소속 근로자단체와 협의해 혜택의 유지 여부를 결정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을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근로자단체의 동의가 필요하므로, 단체교섭권을 침해하거나 단체협약의 내용을 즉시 변경시키는 효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기재부의 수정처분에 대해 “공공기관의 경영효율화를 위해 일반적 기준을 제시해 그 준수를 권고하는 비권력적 사실행위”라며 행정처분이 아닌 행정지도라고 판단했다.

ILO 기본협약 언급도 안 한 법원

현실을 간과했다는 현장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민태 주택금융공사노조 위원장은 “기재부 지침이 내려오자마자 사장은 사내대출 금리를 올렸고, 사내근로복지기금 사측 대표들은 대출 실행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영평가는 기관장 임기마저 흔들 만큼 절대적”이라며 “공공기관에 자율성이 있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ILO 기본협약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 98호는 공공서비스 노동자 역시 단체교섭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정부의 재정적 권력행사를 협약 위반 행위로 보고 있다. 정부가 지난 2021년 4월 비준한 98호 협약은 지난해 발효됨에 따라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한공노협은 성명을 내고 “이미 체결된 단체협약의 효력을 차단하거나 제한하는 형식으로 가해지는 정부의 재정적 권력행사는 국제협약 위반이라는 것이 ILO의 명확한 입장”이라며 “정부 지침과 관행이 국내 발효된 국제법규상 의무에 부합하지 않음에도 형식적 잣대만으로 사건을 각하 처분한 것은 합리적인 판결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규탄했다.

한공노협은 이번 판결에 불복해 지난 2일 항소했다. 이들은 기재부 지침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같은해 8월 한국 정부를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에 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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