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9일 쿠팡물류센터 인천4센터 인도인접장에서 쿠팡물류센터지회가 진행한 선전전. 쿠팡풀필먼트는 이를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교섭 중단을 통보했다. <쿠팡물류센터지회>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지난 4월 1년여간 진행한 쿠팡 본사 앞 천막농성을 해제했지만 노사관계 경색 국면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다 해고된 노조간부들은 부당해고를 주장하고 쿠팡은 노조활동을 하는 간부들을 영업방해로 경찰에 신고해 왔다. 지난해 쿠팡은 창사 12년 만에 국내 기업 중 임직원수 3위를 기록했지만, 노조에 대한 쿠팡 사측의 인식은 “무노조 경영”을 외쳤던 삼성그룹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노조 선전활동에는 ‘불법행위’ 딱지
현장방문한 노조간부는 ‘업무방해’ 신고

7일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에 따르면 쿠팡은 △수년째 지지부진한 단체교섭 △계약만료에 따른 노조간부 근로계약해지 △노조활동에 대한 형사적 대응 같은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쿠팡물류센터지회는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천막농성을 지난달 11일 정리했다. 쿠팡의 자회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쿠팡풀필먼트)와 교섭재개를 앞둔 상황에서 현장 활동과 교섭에 집중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지난달 20일 예정돼 있던 단체교섭을 당일에 취소 통보했다. 하루 전인 4월19일 지회가 연장근로에 항의하는 피케팅과 선전전을 했다는 이유였다. 쿠팡풀필먼트는 노조의 선전활동이 “불법행위”라며 “노조간부가 인도인접장을 무단으로 침범해 노사 간 신뢰관계가 훼손하고 있다”며 교섭 연기를 통보했다.

일상적인 노조활동에 대한 쿠팡 사측의 제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2월에는 쿠팡풀필먼트가 지회 간부를 인천서부경찰서에 업무방해·공동주거침입·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등으로 신고하기도 했다.

당시 최효 지회 인천분회장을 포함한 지회 간부들은 인천1센터 폐지를 통보한 쿠팡이 노동자들에게 전환배치를 충분히 안내하지 않자 관리자를 방문했다. 사측은 면담을 거부했고 항의방문하는 노조간부들을 신고했다.

최효 분회장은 “쿠팡 사측은 노조가 하는 모든 노조활동을 불법행위로 보고 문제 삼는다”며 “항의방문을 했다는 이유로 신고를 하는 등의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소영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쿠팡은 노조에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반노조적 행위들이 도를 넘고 있다”며 “노조활동에 고소를 남발하고 노조가 요구하는 모든 것에 대해 무시나 해태로 일관하는 낡은 노무전략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쪼개기 계약에 평가 세 번 통과해야 무기계약직
“노조활동 공개 뒤 평가 점수 급격히 하락”

쿠팡에서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지회 간부들은 7명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228명인 지회 규모를 고려하면 적지 않은 규모다. 일자리를 잃은 노조간부는 노조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으로 꼽히는 인천분회(5명)와 부천분회(2명)에 집중됐다. <표 참조>

지회는 “부당해고”를 주장하고 있다.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다툰 지회 간부는 3명인데 이들 모두 노조활동을 공개한 뒤부터 근로계약 갱신에 필요한 평가 점수에서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이다. 쿠팡은 올해 2월까지 근로계약기간을 3개월·9개월·12개월·무기계약직(현재는 수습 3개월 포함한 12개월·12개월·무기계약직)으로 쪼개는 계약 형태를 고수했다. 3개월에서 9개월 단위로 넘어갈 때 계약을 갱신하고, 9개월에서 12개월, 12개월에서 무기계약직으로 갈 때까지 총 3번이나 근로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구조다. 근로계약을 갱신할 때는 모두 정성평가(50점)와 정량평가(50점)를 거쳐 일정한 기준을 넘어야 한다. 무기계약직이 되기까지 3번의 평가를 모두 넘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쿠팡이 평가점수를 노동자들에게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간부들은 모두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다투고 나서야 자신의 평가 점수를 알게 됐다.

김은희 지회 부천분회장과 정성용 지회장(당시 인천분회장)은 무기계약직 갱신 과정에서 탈락한 사례다. 정 지회장의 경우 노조간부를 역임한 뒤 100점 만점 중 42점을 받아 무기계약직 전환 기준인 80점에 미달했다. 노조활동에 따른 조퇴가 잦아 근태와 정성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게 원인이 됐다. 조퇴를 하려면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조퇴가 평가점수에 영향을 끼치는지 몰랐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해고돼서는 안 된다는 게 지회 주장이다.

노조 “깜깜이 평가”에 “표적 해고”

최효 지회 인천분회장(당시 인천부분회장)의 경우 노조활동을 공개한 시점인 9개월에서 12개월로 넘어가는 근로계약갱신에서 탈락했다. 최 분회장의 경우 근태점수가 높지만 평가점수의 절반을 차지하는 정성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최 분회장은 “쿠팡에서 평가점수를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점수는 알 수 없지만 노조활동을 공개하기 전인 3개월에서 9개월로 넘어갈 당시에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9개월에서 12개월로 넘어가기 위한 평가 당시에는) 정성평가지에 ‘개인활동을 했다’고 적혀 있었는데 이는 노조활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실상 노조활동 때문에 해고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회는 쿠팡이 평가 기준과 결과를 노동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관리자나 사측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정성평가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소영 노무사는 “겉으로는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전적으로 사용자 마음대로 해고가 가능한 구조”라며 “정성평가 항목도 책임감·성실성 등 내용이 모호하고 각 항목당 점수부여의 구체적인 이유나 객관적인 근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쿠팡풀필먼트는 평가점수가 어떻게 부여되는지 당사자에게 전혀 공개하지 않고 평가표도 공개하지 않아 문제가 있다. 평가에 대한 이의 신청 절차도 없다”며 “평가의 객관성이나 합리성이 없고 조합원이나 간부를 대상으로 한 표적해고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손쉽게 자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쿠팡측은 이에 대해 “지회는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를 주장했지만 노동위원회에서 지회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고 답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한발짝도 떼지 못한 쿠팡그룹 단체교섭

‘쿠팡그룹’ 중 노조와 단체교섭을 맺은 곳은 한 곳도 없다. 그룹사 노조들은 사실상 쿠팡이 “교섭을 해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교섭에는 나타나 교섭해태를 교묘하게 피해 가지만 노조간부의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 등 가장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합의하지 못해 교섭을 장기화한다는 지적이다.

쿠팡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쿠팡풀필먼트는 쿠팡물류센터지회와 2021년 8월부터 교섭을 시작해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쿠팡의 로켓배송을 담당하는 쿠팡친구(옛 쿠팡맨)들이 가입한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도 쿠팡과 2018년 9월부터 교섭을 진행 중이다. 서비스일반노조와 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쿠팡이츠협의회가 꾸린 공동교섭단도 2021년 9월부터 쿠팡이츠와 교섭하고 있다.

지난달 창립대회를 연 택배노조 쿠팡택배지회는 일부 대리점과 단체교섭을 진행 중이지만 원청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의 교섭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쿠팡이 생활물류업계로 본격 진출하면서 최근 대리점과 업무 위수탁 계약을 맺고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 퀵플렉서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지회 설립을 비롯한 단체교섭 요구 과정에서 CLS는 택배노조 간부의 출입을 가로막는 등 부당노동행위 논란을 일으켰다. 노조활동에 대한 쿠팡의 태도는 그룹사 차원의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원청과의 교섭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최근 쿠팡의 행태를 보면 교섭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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