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통령실 차원에서 추진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완화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곳곳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대구시에 이어 청주시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근 법원에서 대구지역 대형마트 의무휴업 평일변경 고시 집행정지신청이 기각된 것을 계기로 각 지자체가 평일 변경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0년간 유지된 일요일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됐다.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영업규제 완화가 추진되면서 애초 취지였던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도 논의에서 소외됐다. 휴일근무가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과 직결된 업무가 아닐 때에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민제안·규제심판회의서 무산되자
지자체 차원에서 추진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논란은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10대 안건에 해당 내용을 포함하면서 본격화했다. 지난해 7월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 결과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안건이 10개 중 1위를 차지했지만, 그 다음날인 8월1일 어뷰징(중복 전송) 문제가 확인돼 대통령실은 투표를 무효 처리했다.

영업제한 규제완화 논의 자체가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국무조정실에서 규제심판회의 안건으로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를 채택하며 논란은 계속됐다. 1차 회의를 연 뒤 온라인 토론을 거쳐 2차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이는 열리지 않았다. 당시 규제정보포털에서 진행된 온라인 토론에서는 ‘규제 폐지 반대’ 의견이 87.5%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대 의견이 무색하게 정부는 지난해 10월 대·중소유통 상생협의회를 출범시킨 뒤 같은해 12월 의무휴업일 지정과 관련해 ‘지자체의 자율성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긴 상생협약을 대형마트·중소유통 업계와 체결했다. 대통령실 차원에서 규제완화를 추진했다가 반대 여론에 부닥쳐 번번이 무산되자 지자체 단위에서 ‘활로’를 찾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자체 평일변경 추진 과정에서도 노동자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대구시는 지난달 특별시·광역시 가운데 최초로 매월 두 번째, 네 번째 월요일로 휴무일을 변경했다. 대구시는 “각 구·군별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를 개최했고, 모든 구·군에서 찬성 의결됐다”고 밝혔지만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에는 노조가 포함돼 있지 않다. 현행법은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에 ‘의무휴업 평일 변경’을 심의하는 기구로서의 역할을 명확히 부여하고 있지도 않다. 충북 청주시도 지난 13일 마트노동자 반대에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지정 변경에 대한 행정예고를 강행했다.

법제처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의결은
이해당사자 합의로 보기 어려워”

노동자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점은 향후 재판에서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유통산업발전법 12조의2에 따르면 공휴일이 아닌 날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때에는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 마트산업노조는 대구지역 5개 구를 상대로 평일변경 고시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고시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가처분신청은 법원이 기각 결정했지만 고시 효력을 정지할 ‘긴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뿐, 절차적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때문에 본안 소송에서 쟁점으로 다퉈질 것으로 보인다.

법제처는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의결을 이해당사자 합의로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2013년 9월17일 경기도 평택시 질의에 대한 의견제시로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의 의결을 유통산업발전법 12조의2 3항 후단에 따른 ‘이해관계자의 합의’로 보는 간주조항을 두는 것은 조례로 상위법령을 해석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것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박현익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는 “유통산업발전법 해당 조항은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를 개정 이유와 의무휴업 관련 조항의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노동자들도 합의의 주체인 이해당사자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합의라고 했을 때는 전원일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해당사자끼리 절차와 규정에 따라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단순 의견 청취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일요일 근무 일·가정 균형 저해
우울증상 경험률 높여

절차적 정당성을 넘어 휴일근무가 실제로 근로자 건강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규제 실효성을 두고 전통시장이나 주변 상권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에 대해서만 갑론을박이 진행돼 왔을 뿐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대한 논의는 주된 쟁점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실시한 ‘대형마트 일요일 의무휴업과 노동자 건강 연구’를 보면 ‘일요일 근무 월 2회 이하’인 경우와 ‘일요일 근무 2회 초과’인 경우를 비교 분석했을 때 일요일 근무 횟수가 많은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노동강도가 높고, 일·가정 균형에 저해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마트산업노조 서울·경기지역 조합원 318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다. 특히 우울증상 항목에서 일요일 근무 2회 초과인 경우 34.8%가 “있다”고 답해, 일요일 근무 2회 이하인 경우(24%)보다 12.8%포인트 높게 조사됐다. 지역이 국한된 데다 표본이 적다는 한계가 있지만 노동조건이 유사한 마트노동자들의 노동 경험을 비교했을 때 일요일 근무 횟수에 따른 차이를 보인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최민 직업환경의학과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은 마트노동자의 노동시간 통제권을 제약하고 주말근무를 늘려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서는 주말근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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