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지난 13일부터 대구시의 대형마트는 기존의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에 문을 닫는다. 지난주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청주시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상반기 중에 평일로 변경하겠다고 나섰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영업을 야간시간대인 자정부터 10시까지 제한함과 동시에 매달 두 차례 반드시 쉬도록 ‘의무휴업일’을 지정하고 있다. 의무휴업일은 원칙적으로 공휴일 중에서 지정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이해당사자와의 합의를 거치면 공휴일이 아닌 날도 의무휴업일로 정할 수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에 의무휴업제가 도입된 2012년 이후로 많은 지자체에서 원칙대로 공휴일을 의무휴업일로 정하고 있다.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와 함께 마트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의미를 갖는 제도다.

이전부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정해 놓은 지자체도 있으나 ‘이해당사자와의 합의’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기존의 일요일 휴업을 평일로 전환한 대구시 사례는 상당히 우려스럽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들이밀고 있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문제는 갑자기 등장했다. 정부는 그 출처가 아주 의심스러운 ‘국민제안’에 접수된 민원이라며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국무조정실이 주관하는 ‘규제심판회의’ 안건에 올렸다. 그러면서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졸속으로 추진되던 이 시도는 규제심판 1차 회의 개최 후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중단됐다. 하지만 결국 정부는 몇몇 소상인 단체를 모아 '대·중소유통 상생협의회'를 만들고 지난 연말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고 의무휴업일의 평일 전환에 협력한다는 ‘상생 협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일요일에 쉬든, 평일에 쉬든 하루 쉬면 됐지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생각할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쉬는가, 얼마나 많이 쉬는가뿐만 아니라 언제 쉬는가는 중요하다. 사회가 움직이는 일반적인 사이클과 다르게 개인의 스케줄이 구성되면 가족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삶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족과 친구 등 자신을 둘러싼 가까운 관계들로부터 소외되고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여가활동 기회를 박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해 사회적 삶이 황폐해질 수 있다. 이렇듯 가장 표준적인 평일 낮시간대 대략 8시간의 노동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대에 일하는 것을 학계에서는 비표준노동시간(non-standard working hour) 또는 비사회적 노동시간(non-social working hour)으로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마트노동자들은 한 달에 단 두 번 있는 일요일 휴업일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게 해 준 작지만 너무나 귀중한 숨구멍이라고 이야기한다. 더욱이 마트노동자들은 대부분 주말에 고객이 많아 더 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휴식시간 또한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높은 노동강도는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일요일, 또는 주말에 일하는 것과 건강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도 여러 나라에서 수행됐다. 필자도 우리나라 노동자의 대표적인 표본조사인 ‘근로환경 실태조사’ 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했다.(Lee et al. Weekend work and depressive symptoms among Korean employees. Chronobiol Int. 2015;32(2):262-9)

분석결과 주말노동을 하지 않는 노동자에 비해 주말노동을 하는 경우 소득이나 전체 노동시간 등 다른 요인을 통제한 후에도 우울증상의 위험이 대략 30~40% 증가했다. 우울증상 위험은 주말노동 횟수가 증가할수록 더 높아지는 경향도 보였다. 즉, 전체 노동시간이 같다면 주말에 쉬는 노동자보다 평일에 쉬는 노동자의 우울증상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여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서비스연맹과 함께 수행한 ‘유통물류서비스업 야간노동 실태와 노동자 건강영향 연구’에서도 서울·경기지역 마트노동자 300여명에 대해 설문조사를 해 일요일 휴무에 대해 분석했다. 조사 당시 일요일 근무를 월 2회 넘게 하는 경우 (의무휴업일이 평일인 경우) 일요일 근무 2회 이하인 노동자에 비해 노동강도가 높았고 일·가정 균형에 저해가 됐다. 우울증상 및 미충족 의료(병원에 가야 하는데 가지 못했던 경험) 또한 높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이렇듯 일요일 휴무는 노동자에게 중요하다. 그런데도 소위 ‘이해당사자와의 협의’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사실 뻔히 짐작되기도 한다. 온라인의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난 유통산업 변화 속에서 대형마트 자본은 줄어들고 있는 시장 점유율을 되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야간배송·새벽배송을 포함한 온라인 유통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방편으로 여겨졌을 테고, 이를 위해서는 발목을 잡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상 영업시간 규제를 어떻게든 무력화시켜서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이 가능해지는 것을 꿈꾸지 않았을까. 지자체별로 알아서 하라는 의무휴업일의 평일 전환은 결국 의무휴업일 폐지, 영업시간 규제 폐지로 가려는 시도인가 하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꾸 ‘상생’해야 한다고 하는데 노동자의 ‘삶’은 고려 대상이 아닌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1999년 “좋은 노동(Decent work)” 이라는 개념을 발표한 데 이어 2004년 “좋은 노동시간(Decent working time)”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노동시간의 배치는 1) 건강해야 하고, 2) 가족 친화적이어야 하며, 3) 성별평등을 증진시켜야 하고, 4)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5) 노동자가 스스로의 노동시간에 대해 선택하고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좋은 노동시간’은 우리 현실에서 참 멀어 보인다. 그렇지만 이렇게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희생시키면서 야금야금 들여오는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과 같은 시도들을 막아 냄으로써 한 발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마트산업노조가 신청한 대구시의 의무휴업일 변경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에 대해 올바른 판결이 내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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