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동차 시장에서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며 미국사업장에서 희망퇴직을 시행한 글로벌 지엠(GM)이 한국사업장에서도 곧 별도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12일 업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지엠은 지난 10일 “회사가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로 전환하기 위해 GM의 한국사업장도 별도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할 것”이라는 취지의 공지를 사내게시판에 게시했다. 지난 1월31일 지출 삭감과 생산방식 개선을 통해 향후 2년에 걸쳐 비용 20억달러를 삭감하겠다고 밝힌 지 한 달여 만이다.

“심화하는 전기차 경쟁, 비용 절감해 투자 여력 확보”

지엠이 공지한 글에는 “GM의 한국사업장도 별도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할 것이고 보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주에 공지될 것”이라며 “구조적 비용 절감을 통해 우리는 차량의 수익성을 증대시키고 점차 강화되는 경쟁적 시장에서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희망퇴직 대상은 지엠 한국사업장 사무직이다. 영업·서비스·마케팅 업무를 하는 한국지엠 사무직은 팀장 이상, 임원급이 대상이다. 한국지엠 사무직은 1천명이 넘는다. 미국 본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연구개발법인(R&D)인 GMTCK쪽도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희망퇴직 대상자와 인원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생산직은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창원공장에서 지난달 신형 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차량(CUV) 모델인 트랙스 크로스오버 양산을 시작해 인력이 모자란 상황이다.

한국지엠이 사무직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것은 2019년 6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회사는 2018년 5월 군산공장 폐쇄 뒤 한국사업장 영업·서비스·마케팅 부문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지엠은 해당 공지에서 구조적 비용 절감 수단을 네 가지로 제시했다. 미국과 한국 직원 퇴직 프로그램을 통한 인원 감소를 포함해 전 사업장에 걸친 비용 절감 노력, 내연기관차와 미래 전기차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 사용 확대, 단기적 효과가 있는 성장 이니셔티브 투자가 그것이다.

미국 내 희망퇴직 조건은 지난 9일(현지시간) 이미 공개됐다. 이튿날 미국 CNN과 CNBC 보도에 따르면 희망퇴직 대상자는 올해 6월30일 기준으로 미국사업장 내 5년 이상 일한 사무직 노동자 5만8천명이다. 자발적 퇴직 프로그램(Voluntary Separation Program)에 지원한 노동자에게는 근속연수에 따라 최대 12개월치 임금을 지급한다. 캐나다·멕시코·유럽·중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경기침체·고금리에 선제적 구조조정”

GM 스스로 밝히고 있듯 이번 희망퇴직 결정은 적자로 인한 것이 아닌 미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지엠의 매출액은 1천567억달러, 조정영업이익(EBIT)은 145억달러로 2021년 대비 각각 23.4%, 1.3% 올랐다.

노동자 구조조정으로 자동차 시장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전기차 시장 경쟁은 심화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테슬라는 지난 1월 전기차 가격을 최대 20%까지 인하했고,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은 축소되거나 중단되는 상황이다. 지엠의 목표는 2025년까지 전기차 10종을 출시해 테슬라를 앞질러 세계 전기차 시장 1위가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같은 재난에 차량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문제, 고금리·경기침체, 보호무역주의 회귀 등 시장은 불안정한 요소투성이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거의 모든 지표가 경기침체·둔화를 가리키고 있는 조건에서 글로벌 업체들이 선제적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며 “전기차 투자여력 확보나 비용절감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테슬라는 경기침체에 대비해 직원 10%를 감원했는데, 올해 상반기 추가 정리해고를 단행할 계획이다. 미국 완성차사 포드도 전기차 투자비용 확보를 위해 지난해 두 차례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지난 2년 동안은 공급자 시장으로 자동차 가격이 많이 올랐고 부르는 게 값이라 영업이익이 굉장히 높았다”며 “올해 공급망이 일부 정상화돼 경쟁은 심화되고 (자동차 업체) 수익률은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조, 구조조정 막고 정책 제시하는 역할 해야”

오민규 연구실장은 “당장 적자가 나서가 아니라 ‘선제적 구조조정’이기 때문에 노조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해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위원은 “현재 수출 주도형 경제는 나중에 조건이 달라지더라도 되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 성격을 갖고 있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경제와 산업구조를 바꾸는 거시적인 전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항구 원장은 “산업 차원에서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가 국내에서 전기차를 생산하자고 제안하는 식의 정책활동을 해야 한다”며 “(국내에서 생산할) 미래차를 확보하지 못하면 지엠이 한국 사업을 계속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산업 차원에서 미래차 인력 확보를 강조했다. 이 원장은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면 제일 중요한 것은 인력”이라며 “미국 완성차사의 경우 몇 년 전부터 미래차 시장에 대비해 인력구조의 재조정을 하고 있다. (직원들을) 내보내면서 재교육 훈련을 시행하거나 신규직원을 다시 뽑아 인력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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