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탈탄소 전환을 비롯한 산업 구조조정과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외국투자기업의 ‘먹튀’ 문제가 지금보다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모기업의 사용자책임을 강화하는 등 외국인투자 촉진법(외국인투자법)을 노동친화적인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양대 노총과 국제사무노련 한국협의회(UNI-KLC), 우원식·김주영·신동근·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12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외국인투자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글로벌 하청 다단계 구조 속 사용자 책임 ‘공백’

다국적 기업의 경우 외국인 대표이사가 3년 정도의 임기가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해외로 근무지가 바뀌는 공통점이 있다. 이 기간 온갖 탈법적인 시도들이 이뤄지면서 노사관계가 악화된다. 이때 꼭 등장하는 것이 국내 대형로펌들이다. 17개 다국적 제약사 노동자들이 가입한 민주제약노조(위원장 박기일)의 사례를 보자. 한국먼디파바지부와 쥴릭파마솔루션즈서비스지부의 경우 노조 지부장과 임원들이 비조합원으로부터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로 신고당한 후 회사가 일방적으로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징계하는 ‘신종 수법’으로 논란이 됐다. 박기일 노조 위원장은 “두 곳 다 김앤장이라는 대형로펌을 끼고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을 악용한 노조탄압을 벌였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글로벌 주류업체인 디아지오코리아나 페르노리카코리아도 유사하다. 조니워커·윈저 등을 판매하는 디아지오코리아는 매출 1위인 윈저를 떼어내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조니워커를 포함한 디아지오 글로벌 브랜드는 신설법인을 만들어 사업을 하고 기존 존속법인(윈저글로벌)은 윈저만 판매하는 방식이다.

3년 전인 2019년 페르노리카코리아에서도 ‘임페리얼’ 브랜드만 따로 떼어 매각 후 구조조정을 단행한 사례가 있다. 이 과정에서 노조 조합원 90명을 비롯한 130명의 인력감축이 이뤄졌다. 그 뒤에는 김앤장 등 대형로펌의 맹활약이 있었다.

김민수 디아지오코리아노조 위원장은 “회사의 분할매각을 노조를 와해하려는 시도로 보고 신설법인 노동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소산별노조형태로 조직을 변경했다”며 “그런 노력 끝에 이달 초 고용보장과 단체협약 승계를 회사와 합의해 2월에 시작한 쟁의행위를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강호 페르노리카코리아노조 위원장은 “평균 3년마다 구조조정이 반복되고 있다”며 “직원의 희생과 이윤을 맞바꿔 끊임없이 고정비를 줄이고 노조를 축소하려는 글로벌 기업과 이를 막으려는 노조 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과 노사갈등이 되풀이되는 배경에는 사용자 책임 부재도 있다. 페르노리카코리아의 아시아 본부는 홍콩이고, 글로벌 본사는 프랑스에 있다. 한국 지사는 사실상 글로벌 본사의 지침에 따라 움직이는 하청업체에 불과하고 한국 지사장 역시 대리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노사갈등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자자·자본 권리만 보장하는 ‘더 기울어진 운동장’

외투기업을 규율하는 외국인투자법이 가뜩이나 사용자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기울게 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외투기업의 혜택과 편의를 보장하는 외국인투자법은 투자 철수와 공장폐쇄 또는 매각이 국내자본보다도 손쉽고 경제·사회적 제약이 덜하다. 반면 노동자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적이다. 한국지엠과 쌍용자동차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지엠은 지엠 본사에 1조7천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 매년 1천억원이 넘는 돈이 이자로 나간다. 지엠의 이자율은 기아차(0.19~2%), 현대차(1.49~2.26%)의 두 배가 넘는 5%로 차 장사가 아니라 ‘고리대금 장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종순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조합원은 “지엠과 한국지엠의 관계는 수직적 원하청 관계와 다름없다”며 “글로벌 지엠의 전략에 따라 한국지엠의 생산물량이 줄고 수익구조도 악화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사도 마찬가지다. 일본 덴소자본이 100% 지분을 소유한 한국와이퍼의 2017~2021년 누적 매출원가율은 99.3%에 이른다. 결국 이달 초 덴소코리아 와이퍼사업부는 매각을, 한국와이퍼는 ‘청산’을 선언했다. 최윤미 금속노조 한국와이퍼분회장은 “고용창출을 담보로 각종 혜택을 누린 외투기업들이 일방적으로 대량해고를 예고하고 있다”며 “지난해 덴소를 비롯한 5자가 ‘고용보장 협약’을 체결했는데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은 ‘그래도 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외투기업에게 ‘먹튀와 철수 협박에 국유화로 맞설 수 있다’는 분명한 사례를 보여줘야만 횡포를 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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