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강예슬 기자

한국지엠 말리부 생산 중단이 10월 말에서 9월 말로 앞당겨질 것이란 얘기가 돌면서 부품사 ㈜에스에이치씨피(SH-CP) 노동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SH-CP는 말리부 콕핏을 조립해 한국지엠 부평2공장에 납품한다. SH-CP 노사는 2018년 1월 폐업 등 인적 구조조정시 동광그룹 계열사 등이 조합원의 고용을 승계하기로 합의했지만, 합의 불이행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노숙농성을 비롯한 노조의 투쟁으로 어렵사리 회사와 고용보장 합의서를 체결했지만 합의가 파기되는 일이 반복되면서다. 합의 불이행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리해고 후 고용보장 합의,
4년 만에 또 정리해고 우려”

2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말리부 생산이 9월 말 중단되면 공장 가동 중단이 불가피한데도 SH-CP는 고용승계에 관한 협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 SH-CP지회(지회장 오제원)는 2017년 정리해고 사태를 겪은 뒤 1년여간 농성 끝에 사측과 노동자 43명 복직·고용보장을 담은 합의서에 서명했다. 2018년 2월1일부터 SH-CP 2공장으로 고용승계하고, 앞으로 노조 동의 없이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합의서에 담겼다. “부득이하게 회사의 폐업 등 인적 구조조정이 필요한 경우 동광그룹 관계사 등 조합원 고용, 노동조건, 노동조합, 단체협약 및 각 노사합의 등을 승계”하기로 했다.

하지만 노조는 합의가 이행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말리부 생산 중단 시점이 다가오면서 사측에 고용승계 관련 계획 및 특별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당사의 폐업 등은 2022년 10월 한국지엠 부평2공장 단종 및 폐쇄 이후 시기로, 노사합의 이행시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며 시간을 끌었다. 최근에는 “조합에서 지정한 2개 관계사 중 1개 관계사로 조합원을 고용승계한다”면서도 전제조건으로 고용승계로 예상되는 경영악화에 따른 조합의 협력안(임금·상여금 20% 반납)을 요구했다. 지회쪽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임금 25%를 반납하고 전체 임금을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지금도 계속 휴업 중인데 계속 노동자에게만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39명의 직원은 돌아가며 한 달에 한 주씩 일하는 상황이다.

지회의 지속된 요구에 이달 26일 노사는 고용승계 관련 논의를 위해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지회는 회사가 일감도 없는 상태에서 폐업을 미루며 고용승계도 차일피일 미룰까 봐 우려하고 있다.

“합의 불이행 막을 장치 필요”

부품사 디지에프오토모티브도 비슷한 상황이다. 디지에프오토모티브는 트랙스의 부품 콕핏 모듈을 조립하는데, 트랙스의 생산 종료는 11월 말로 예상된다. 노조 부평공단지회(지회장 이재영)의 요구로 노사는 지난해 노동조합 동의 없이 구조조정하지 않고, (트랙스) 단종 확정일 60일 이전까지 고용보장 방안을 노조와 합의하기로 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이재영 지회장은 “딱히 이렇다 할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며 “노조가 요청한 것은 신규사업을 가지고 오라는 것인데, 회사는 ‘새로운 생산물량을 구하려 하고 있지만 노조가 있어서 좀 꺼려진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노사는 고용안정위원회를 꾸려 논의하고 있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다.

SH-CP와 디지에프오토모티브의 고용보장 합의가 아직 파기된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우려를 기우로 치부하긴 어렵다. 한국산연이나 자일대우버스, 한국와이퍼블레이드(한국와이퍼) 사례에서 드러나듯 노사가 어렵사리 체결한 고용보장 합의를 무시하고 회사가 일방 폐업을 통보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와이퍼는 노조 한국와이퍼분회와 총고용 보장 합의를 한 지 9개월 만인 지난달 노동자에게 폐업을 통보했다. 모회사 덴소와이퍼시스템과 계열회사 덴소코리아가 협약 이행에 연대책임을 지고, 합의 불이행시 조합원 1명당 1억원의 금액을 노동조합에 배상한다는 내용이 담겼음에도 벌어진 일이다.

분회는 지난 16일 한국와이퍼와 덴소코리아를 상대로 합의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고 수원지법 안산지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또 한국와이퍼가 단체협약상 절차에 따른 채권자 합의 없이 회사를 청산하는 것을 막아 달라며 단체협약위반금지 가처분 신청을 이날 제기했다.

오기형 노조 조사통계부장은 “회사가 폐업하면 법인격이 소멸돼 이전 법인격이 했던 합의 책임을 추궁하기 어려운 법제도를 (회사들이) 활용하고 있다”며 “청산하기 전 인수자를 찾는 의무를 부여하거나 지역사회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 인센티브를 준다거나 합의 불이행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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