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사정 협의기구로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정체성이 윤석열 정부 들어 흔들리고 있다. 사회 주체가 모여 대화하는 본연의 기능은 사라지고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 과제를 처리하는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이달부터 자문단·연구회 만들어
파견제도·5명 미만 사업장 근기법 적용방안 논의

고용노동부가 지난 9일 발표한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 따르면 정부와 경사노위는 이달 중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 자문단’과 ‘연구회’를 각각 출범시킬 예정이다. 노동부의 설명을 보면 자문단은 ‘노사관계 제도·관행’ 중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노조 회계 투명성, 노사 현장 불법 근절, 노사 대등성 확보 등이 주요 의제다. 여기에는 쟁의행위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등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쟁점들도 포함돼 있다.

연구회에서 다루겠다는 의제도 만만치 않다. 부문근로자대표 제도와 5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제한적 적용을 논의한다. 노동계와 재계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파견제도도 연구회가 맡는다. 노동부는 “경사노위에 학계·현장 전문가가 참여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를 만들어 파견-도급기준 법제화, 파견대상업무 확대와 함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구현을 위한 차별시정제도 실효성 제고, 파견노동자에 대한 고용안정 및 보상체계 마련 방안도 함께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문단과 연구회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에는 없는 임의기구다. 법에 따르면 최고의결기구인 본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의제별·업종별·특별위원회를 둘 수 있다. 이때 위원 구성은 노사가 추천하는 동수로 구성하는 등 대화의 형평성을 맞추는 데 초점을 둔다.

물론 의제별·업종별 위원회를 운영하기 앞서 의제를 다듬기 위한 자문단이나 연구회를 임의로 둘 수 있다. 문제는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자문단과 연구회 논의는 노사정 대화 시작점이 아니라 아니라 그 자체로 끝난다는 점이다.

“노동개혁 시급해 어쩔 수 없다”는 정부
윤석열 정부 들어 본위원회 한 번 열려
의제별·업종별 위원회 신설 없어 … '대화' 전무

경사노위에서 노사정 대화기구가 아닌 연구회·자문단을 운영하는 이유로 정부는 ‘노동개혁의 시급성’을 이유로 든다. 노동부는 “경사노위 본위원회가 아직 위원 구성 중이고, 한국노총 선거일정 등으로 위원회 구성·논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개혁 과제들을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문단·연구회가 먼저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노사 당사자 역시 언제든지 협의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 임원선거는 이달 17일로 불과 일주일여 남겨 놓은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를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가 지난 5월 취임한 이후 경사노위 본위원회는 지난해 말 서면으로 한 번 개최됐을 뿐이다. 의제별·업종별 대화기구도 문재인 정부에서 만든 공무원노사관계위원회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논의기한을 연장해 운영되고 있을 뿐 새로 설치되지 않았다.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부에서 애초에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려는 의지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한다.

전문가들은 경사노위가 독립성이 훼손되고 사회적 대화 기능이 흔들리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경사노위 1기 상임위원을 지낸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사회적 대화의 장을 열기 위한 사전 준비단계로 연구회를 운영하는 게 일반적인데 지금의 자문단·연구회는 사회적 대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이 운영하겠다는 것”이라며 “경사노위를 정부 정책을 ‘복창’해 주는 기구로 사용하는 것으로 (노동개혁에) 극심한 저항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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