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열린 고위당정협의회. <국민의힘>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에 노조 재정 감시도 포함하기로 하면서 노조 자주성을 침해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9일 <매일노동뉴스>가 확인한 결과 정부는 노조의 회계 감사 요건을 엄격히 하는 방향으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바꾸는 것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 재정이 도마에 오른 것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그간 노조활동에 대해 햇빛을 제대로 비춰서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서 비롯됐다. 한 총리는 이날 “노조 재정 운용의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을 정부도 과감성 있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의에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참석했지만 한 총리의 발언이 사전에 노동부와 조율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노사의 불합리한 행위에 대해 노사 책임·자치의 관점에서 제도개선 방안을 강구하라’고 권고한 점을 근거로 노조의 회계감사 요건을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

현행 노조법 25조(회계감사)는 6개월마다 노조의 재원과 용도, 경리 상황 등에 대한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내용과 감사 결과를 조합원에 공개해야 한다. 조합비 등 기타 회계에 관한 사항은 규약에 반드시 포함돼야 된다. 노조 대표자는 회계연도마다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을 공표하고 조합원이 요구하며 열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조법상 노조에 회계감사원을 두도록 했지만 자격 요건이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법적 근거는 부족한 상황이라는 게 노동부의 진단이다. 이에 따라 회계감사원의 자격을 강화하거나 일정 규모 이상 노조는 회계 재정을 공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검토한 것은 아니고 논의해 봐야 하는 단계”라며 “해외사례들을 검토하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받아 제도개선의 적절성 여부를 살펴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사문화되다시피 한 노조법 27조를 정부가 노조 재정 감시 카드로 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7조는 ‘노조는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노조에서 회계 문제로 조합원이 민원을 제기하면 행정관청이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만들어진 조항이다.

조합원이 아닌 정부가 노조 재정을 감시하겠다는 것은 노조의 법적 요건인 주체성과 자주성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다. 노조법은 노조를 ‘근로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단체 또는 연합단체’로 정의한다. 행정관청이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이러한 노조의 법적 요건이 흔들릴 수 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노조를 비롯한 모든 단체에서 회계가 제대로 집행됐는지 감시하는 것은 단체 구성원이지 정부나 국가권력이 아니다”며 “노조는 무엇보다 자주성이 강조되는 단체로 정부가 재정을 들여다볼 법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