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쿠팡 노사 갈등이 쉬이 사그라들기 어려워 보인다.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본사 농성도 장기화하고 있다.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냉·난방기 설치”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지난 6월23일부터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로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는 쿠팡과 1년여 동안 15차례 교섭했다. 하지만 사측이 노조의 요구안에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교섭이 결렬됐다. 지회는 성실한 교섭과 함께 혹서기 냉방 대책을 요구하며 본사 농성을 시작했다. 쿠팡은 7월 초에 농성장 전기를 끊었고, 같은달 24일에는 용역을 동원해 농성 중인 조합원들을 내쫓았다. 여전히 쿠팡의 답을 기다리는 노동자들은 본사 건물 앞에 새로이 농성장을 세웠다. 민병조(57·사진)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농성이 길어질 우려도 있다”고 전망했다. 왜 노동자들은 긴 싸움을 각오하고 나선 걸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8일 농성 중인 민 지회장을 만났다.

“‘농성장 철거 노사합의했다’ 거짓말한 쿠팡”

- 농성 이후 노사 교섭은.
“쿠팡과 농성 이후 다섯 차례 정도 만났는데 사측 안은 최근에 받은 ‘합의서’ 한 장이 전부였다. (1년간) 교섭을 하면서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문서로 입장을) 준 적이 없었는데 그게 처음이었다. 그 문서도 이게 사측 안인가 싶을 정도로 예의가 없는 내용이었다.

언론에는 (농성장 철거 후) ‘합의를 위반한 민주노총’이라고 기사가 났더라. 황당했다. 합의서면 합의 날짜나 합의자 서명이 있어야 하지 않나.”

쿠팡은 20일 ‘실무협의 합의서’라는 제목의 문서를 노조에 건네고 23일까지 입장을 달라고 통보했다. 24일까지 농성을 해제하는 것을 전제로 “8월4일부터 실무교섭을 재개하고 교섭위원 3명을 공가 처리”한다는 내용이었다. 노조가 요구했던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나 냉·난방기 설치에 대한 입장은 담기지 않았다.

쿠팡은 24일 농성장을 철거한 뒤 “노사가 농성 해제에 합의했으나 노조가 약속을 파기했다”는 입장을 25일 발표했다. 합의서에 근거해 농성장을 철거했다는 해명이다. 지회는 “농성 해제도, 그 어떤 합의도 한 적 없다”는 입장을 내며 맞받았다. <매일노동뉴스>가 확인한 합의서에는 노사 관계자들의 서명이 없었다.

- 대화 재개 가능성은.
“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하면서 노사 마찰이 있었다. 양측 모두 격앙된 상태라 조금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 날씨 때문에 야외 농성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본사 로비에 있을 때는 24시간 감시당했다. 용역들이 바디캠으로 촬영을 하고 우리 사진을 찍어서 휴대전화로 계속 보고를 했다. 우리가 화장실을 가도, 움직여도, 누가 와도 사진을 찍고 보내더라. 인권 침해를 많이 당했다. 마음이 정말 불편했고 농성장 안에서도 예민한 사람들은 잠을 못 잤다.”

“쿠팡, 노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 안 해”

- 농성이 계속되는 이유는.
“사측이 기본적으로 대화할 자세가 돼 있으면 우리도 농성할 필요가 없다. 농성하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나. 사측은 (조직률이) 0.4%라고 이야기하고 우리는 1%라고 이야기하는데, 조합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도 노조는 대표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단체다. 노조를 인정해야 회사도 발전하고 성장하는데 계속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면 우리도 ‘내 회사’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나.

노조는 (교섭하면서) 많이 양보했다. 사측이 노조 안을 받든지, 받기 싫으면 그에 대한 답이라도 내야 하는데 그런 걸 전혀 안 했다. 노조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거다.

교섭하면서 노조할 권리 보장, 타임오프, 교섭 재개 등을 제안했다. 노조는 계속 입장을 내면서 후퇴된 안을 들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사측은 마지막 교섭 자리에서 그 ‘합의서’를 보여준 거다.”

-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 않은 노조간부들이 “표적해고”당했다는 입장인데.
“(전환) 대상자들이 너무나 이례적으로 전환이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일찍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전환 대상자는 현장 관리자가 본사로 목록을 올린다. 현장 관리자들은 노조간부가 누구인지 잘 안다.

사측은 ‘해고된 사람들이 근무평가가 안 좋았다’고 하는데 해고된 사람 중에 노조활동을 하다가 관리자로터 직장내 괴롭힘을 당한 사람도 있다. 또 사측은 교섭하면서 타임오프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쿠팡으로부터 최근 해고된 3명 중 1명은 교섭위원이다.) 회의시간도 보장해주지 않는데 (해고자가) 지각을 했느니, 결석을 했느니 근태를 매겨 재계약을 안 한 건 노조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닌가.”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개방형 물류센터라 냉방기 설치 못한다?
“우체국 물류센터에는 에어컨 있어”

- 쿠팡측은 냉·난방기 설치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에 폭염 때문에 노조가 에어컨을 놔 달라고 투쟁하니 ‘회사가 센터별로 전기공사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이야기가 어디서 흘러나오기는 했다.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사측이 전향적으로 냉·난방기를 설치할 마음이 있다면 (그걸 요구하는) 노조와 상의하면 되지 않나. 그런 계획은 ‘말로만’ 존재한다. 대외적으로 발표할 때를 대비해 구실로 갖고 있는 것 같다. 쿠팡은 대외적으로 ‘얼음물, 아이스크림, 휴게실 에어컨 설치’를 선전하는데 에어컨 설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발표하지 않는다.

한참 홍보했던 안성센터 같은 경우 (에어컨이 설치돼 있어) 가장 선진적인 물류센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선전용인 것 같다. 지금은 AR(반품)부서가 해체되면서 에어컨도 해체됐다. (에어)서큘레이터도 턱없이 부족하고, 선풍기도 작업공간 바깥에 달려 있다. PDA(휴대 정보 단말기)로 노동자 작업을 계속 모니터링하는데 선풍기 바람을 쐬려고 쉴 수도 없다. 휴게시간도 부여해 주지 않으면서 ‘휴게실에 에어컨이 있으니 폭염대책이 됐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센터·근무조별로 근무·휴게시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식사시간 1시간과 휴게시간 5분~10분을 포함해 하루 9시간 근무한다고 한다.

- “개방형 구조인 물류센터 특성상 냉방기 설치가 어렵다”고도 하던데.
“우체국 물류센터도 쿠팡처럼 개방형 공간인데 에어컨이 다 설치돼 있다. 폐쇄형 물류센터가 어디 있겠나. 쿠팡에서 일하다가 잠시 우체국 물류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천국’ 같았다. 쿠팡은 돈이 들어가니까 안 하려고 하는 거다.”

- 노조 조사에 따르면 최근 3명이 물류센터 안에서 쓰러졌다던데.
“날이 더운 것도 문제지만 습도도 높다. 안은 찜통이라서 땀을 엄청 흘린다. 피할 곳도 없이 (내부) 전체가 다 찜통이니 안에서 땀을 흘리면 탈수가 금방 온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온열질환자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은 계속 마실 수 있지만 냉·온수기 관리도 잘 안 돼 집에서 물을 싸 온다. 그 안은 정말 인권의 사각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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