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비스연맹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최로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택배 사회적 대화 성과와 과제 토론회. <정기훈 기자>

지난해 6월 택배노동자 과로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문이 발표된 지 1년이 지났다. 장시간 노동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분류작업을 택배노동자 업무에서 배제하기로 했지만 합의 이후에도 이행 여부를 두고 노사는 극한대립을 이어 왔다. 전국택배노조(위원장 진경호)는 CJ대한통운이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말 파업에 돌입했고, 본사 점거농성과 위원장 단식농성을 했다. 60여일 파업 끝에 지난 3월 대리점연합과 공동합의문을 도출했고 최근 핵심 쟁점이었던 표준계약서 부속합의서 협상을 타결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올해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분류작업 배제’는 구인난, 시설 미비 등을 이유로 온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CJ대한통운에서 올해에만 2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 추정으로 숨졌고, 롯데택배 노동자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파업 참여로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일부 조합원들도 여전히 현장에 복귀하지 못한 상태다. 과로방지를 위한 합의 이행점검과 노동조건 개선, 건강한 노사관계를 위해 남은 과제들은 무엇이 있을까.

“CJ대한통운 택배비 인상분 70% 가져가, 합의 위반”
민주당 “택배기사 수입보전, 합의기구 역할 아냐”

2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3간담회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한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는 합의 이행 과정에 대한 평가를 공유했다. 우정사업본부를 제외한 택배사업자측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정부에서도 국토교통부 관계자만 참여했다.

토론회에서 노조와 민주당 민생연석회의는 파업 장기화의 핵심요인이었던 CJ대한통운 택배비 인상분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상당한 의견 차이를 드러냈다. 진경호 위원장은 “CJ대한통운이 택배요금 인상분 중 분류비용 및 산재·고용보험 지원으로 일부만 지급하고 대부분은 택배사 이윤으로 가져간 것은 명백한 사회적 합의 위반”이라며 “국토부는 ‘택배요금 인상분 사용은 이행점검 대상이 아니다’며 사실상 CJ대한통운에 면죄부를 줬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원정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총괄팀장은 “사회적 대화기구는 택배기사들의 생명·안정·인권을 보호하고 전근대적인 택배상품 거래구조의 공정개혁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 택배기사들의 수입 보전을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한계에 대한 원인 분석도 의견 차이가 존재했다. 진경호 위원장은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에 투입돼 이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돼야 하는데도 일반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국토부는 점검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확인하고도 ‘양호하다’는 결론을 냈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의지 문제를 시간 문제로 치환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원정 팀장은 “사회적 기구라는 틀의 의미보다 민주당에 들어온 노조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이를 위해 정부와 유관단체를 끌어들인 성과물의 의미를 넘어서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존재한다)”며 “민주당만 참여하다 보니 (정권교체로) 집행력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 규범화 필요”

이행 여부를 두고 노사갈등이 지속된 만큼 이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박석운 과로사대책위 상임대표는 “국토부는 25개 택배사업 현장을 임의로 정한 뒤 현장점검을 하고 나서 지속적으로 관리·점검하고 있지 않다”며 “형식적인 점검이 아니라, 신고창구를 개설해 해당 현장에 대한 불시점검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민규 국토부 상황총괄대응과 사무관은 “분류인력 투입과 관련해 매주 현장점검을 하고 있고, 시정조치를 내린 뒤 제대로 이행됐는지도 점검하고 있다”며 “작업시간 관리시스템 구축을 택배 4개사 모두 추진하고 있는데 올해 안에 구축해 현장에 적용해 나갈 계획이다. 자동화설치 구축 지원과 부지확보를 위한 정책적 지원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가 구속력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합의를 규범화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사회적 합의가 하나의 규범으로 뿌리내려야 정권교체나 법 유무와 무관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뜨거운 감자’를 식히려는 수단처럼, 정부 차원에서도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하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문제를 같이 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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