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올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았다. 다음달 2일이면 꼭 3천일이다. <매일노동뉴스>는 신문 앞머리에 “세월호 참사 잊지 않겠습니다. 2014년 4월16일부터 0000일째”를 기재해 왔다. 그래서 ‘그’가 더욱 선명히 떠올랐다.

지난 8년, 그 세월을 온전히 피해자와 유가족 곁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지원을 위해 전면에서 함께 싸운 ‘그’가 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 그리고 4·16재단 조직까지. 그 과정에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박래군. 그의 이름은 한국 사회에서 ‘인권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서 시작해 인권운동사랑방·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다산인권재단·인권재단 사람·에바다복지회·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34년간 한 길을 걸어 온 그의 얼굴을 최근 서울에서 보기가 어려워졌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4·16재단에서 박래군(61·사진) 4·16재단 상임이사를 만났다.

‘4·16운동’이란 “새로운 운동 전개한 8년”

- 4·16재단에서는 언제부터 일하고 있나.
“지난해 5월 상임이사에 선임되면서 자리를 옮겼다. 출근은 같은해 7월부터 했다. 1년 됐다. ‘인권재단 사람’은 (비상근) 이사로 남아 일이 있을 때 간다. 이쪽으로 출근하다 보니 모든 게 서울 중심이란 것을 느낀다. 문제다. (하하) 예전에 인천·경기에서 서울로 회의하러 온 활동가들 되게 힘들었겠구나 싶다. 인권·시민단체와 연대하기에 장소적 제약이 있다. 각종 기자회견·토론회·행사 등 서울 일에 결합하는 게 쉽지 않다.”

4·16재단은 유가족들이 출연하고 시민들이 보태 2018년 5월 출범했다. 단원고와 화랑유원지 딱 중간지점에 있다. 화랑유원지에는 4·16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피해지원법) 40조(4·16재단에의 출연 등)에 따라 국고보조와 함께 후원을 받아 사업을 하게 된다.

“다른 데가 아닌 세월호 참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관심과 애정이 있는 곳에서 맡아야 하지 않겠냐고 가족들을 설득해서 어렵게 4·16재단이 출범했습니다. 저는 재단을 만드는 데까지만 역할을 하려고 했죠. 가족들도 처음엔 그러자고 했어요. 하지만 이내 재단을 만들기만 하면 어떻게 하냐, 안착시켜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하하)”

- 세월호 참사로부터 8년, 3천일은 상임이사께 어떤 의미인가.
“과거에는 재난참사가 났다고 해도 인권활동가로서 거리를 두고 대응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인권·시민단체들을 모아 국민대책회의, 4·16연대를 엮고 만들었다. 지난 8년을 돌아보면 하나의 새로운 운동을 만드는 세월이었다.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요구가 앞섰지만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피해자도 계속 움직이면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 온 운동이다. 이전 운동과는 다르다. 이전에는 재난참사 피해자가 잘 모르니까 시민·사회단체에 기대는 게 많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는 초반부터 피해자가 강력한 세력이 됐다. 그렇게 (지난 8년은) 새로운 운동을 만들고 우리가 놓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왜’가 빠진 사참위 조사결과

지난 8년은 말로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박 상임이사는 구속 기소되기도 했고, 피해자와 가족들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의 모욕을 당했다.

“가족들도 저도 힘들었습니다. 마음도 불편하고. 특히 공격을 많이 받고 힘들었죠. 나에 대한 모욕은 그렇다 해도 자식 잃은 유가족에 대한 폄하·조롱·모욕 이런 건…. 보통 사람들이 ‘일베’ 됐다고들 하는데. 이런 식의 혐오가 만연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우리 민낯이 드러난 것을 공동으로 확인했죠. 앞으로 풀어야 할 게 많구나 확인한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잃었던 인간성을 찾아가는 게 아닌가. 저는 4·16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 내용과 정신을 만들고 있다고 말입니다.”

- 지난 10일 임기 종료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사고원인을 분명히 밝혀내지 못했다. 지난 8년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그리고 사참위까지 세 차례의 조사위 활동과 검찰 특별수사단의 재수사, 특검 수사가 이어졌지만 진상규명은 요원하다.
“답답하다. 유가족은 상태가 안 좋다. 기대했는데. 사참위가 악조건 속에서 조사했다. 이전 특조위나 사참위 조사인력 정원이 같다. 그런데 사참위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동시에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조사인력이 절반이 된 거다. 문재인 정부에서 손 놓고 방치했다. 챙겨 달라고 해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사참위 자료 요구에 협조하라고 하고 위원장 불러서 보고받고 점검도 하고 그러면 큰 힘이 되지 않았겠나. 그런데 그걸 안 했다. 사참위 조사를 기다려 보자고, 검찰·특검 수사를 기다려 보자고(만 말했다). 검찰 특별수사단은 처음엔 의욕적으로 했지만 흐지부지됐다. 특검은 모양만 특검이다. 1명만 변호사고 다 검사였다. (그래 놓고) 사람들은 조사를 할 만큼 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참위가 침몰 원인 조사에만 집중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것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진전된 것이 있다고 박 상임이사는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어떤 체계로 세월호 참사에 대응했는지 새로 밝혀졌습니다. 매주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세월호 참사 차관회의를 했고, 한때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매일 경찰이 두 번씩 보고했더군요. 여러 가지가 있었음에도 사참위는 오로지 침몰 원인에만 매달렸어요. 왜 (승객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왜 진상규명을 방해했는지, 왜 가만있으라고 했는지, 왜 선장과 선원만 구했는지, (사참위 조사에서는) ‘왜’가 빠졌습니다.”

- 진상규명을 위한 다음 단계는 무엇이라고 보나.

“지금까지 특조위·선체조사위·사참위의 성과는 성과대로 정리하고 과제는 과제대로 남기고, 이후 밝힐 건 밝혀야 할 것이다. 언젠가 다시 진상규명을 해야 할 때가 온다. 이를 위해서 지금까지 성과와 부족한 점을 갈무리해서 이후 과제를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한동훈도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뭘 했나”

- 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에서 진상규명 등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 같지만 결국은 이루지 못했다.
“촛불정부라면서 촛불정신을 받아서 뭘 했나. 한 게 없다. 적폐청산도 그렇다. 셀프 개혁기구 방식으로 했다. 각 정부부처와 기관들이 자체 개혁위원회 만들어서 조사하고 보고서 내고 그걸로 끝났다. 조사보고서가 잘 나왔더라도 이행하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은 뭘 했나. 말로만 적폐청산하고 성과는 없었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진상규명? 뭘 챙겼나.”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피해자가 국가에 갚아야 하는 과다배상금 지연이자 납부를 최근 법무부가 면제하기로 결정한 것과 비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피해자를 ‘빚고문’에서 풀어줬습니다. 이렇게 쉽게. 박근혜 정부에서 팩스 한 장으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습니다. 절차가 문제였던 만큼 문재인 정부 들어 회복시켜 줄 수 있었지만 왜 못하고 대법원까지 가냐는 말입니다. 쌍용차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 소송도 철회할 수 있는데 경찰이 반발한다고 (못했습니다). 대통령 권한으로 ‘내가 책임질게’ 하고 철회하면 되잖습니까. 그런데 한동훈 장관이 해결사처럼 등장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세월호 참사도 말로만 하겠다 (하고),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았죠. 하지만 대통령 되기 전에 적극적으로 챙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촛불로 정권을 잡고도 개혁동력을 상실했죠. 이게 실망과 분노로 바뀐 겁니다. 진보진영이 개혁하자는 걸 안 먹히게 상황을 만들었어요. 열 받죠.”

국가가 피해자 사찰과 모욕 “사과해야”

- 윤석열 정부에서는 생명·안전 관련 공약이나 국정과제가 보이지 않는다. 진상규명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 생명·안전 관련 공약이나 국정과제가 미미하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시장과 기업 중심으로 경제기조를 가져가겠다고 한다. 규제완화도 그렇다. 생명·안전 관련 규제까지 건드리려고 해서 걱정이다.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에 따라 사참위 종합보고서가 나오면 국회와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돼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진상규명까지 가면 좋겠지만, 거기까지 못 가더라도 사참위 권고안은 진지하게 검토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면 좋겠다.”

사참위는 임기 종료 하루 전인 이달 9일 양 참사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20개의 주요 권고안을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공식사과와 후속조치 △피해자 사찰·조사방해 추가조사 △재난피해자 인권침해·혐오 표현 확산 방지와 개선 등 8건, 가습기 살균제 참사 관련 △공식사과와 포괄적 피해 배·보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공소시효 연장 △피해 입증책임 기업으로 전환 등 8건, 양 참사 공통으로 △양 참사 희생자 추모사업 △(가칭)중대재난조사위 설립 등 4건을 권고했다.

- 사참위 권고 중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참위 조사 결과 정부기구를 동원해서 피해자를 사찰하고 모욕을 조장하고, 그런 보수단체를 지원한 것은 분명히 드러났다. 이에 대해 정부가 적극 나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앞으로 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를 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것만이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문 전 대통령이 여러 번 (언급)하지 않았냐고 하는데, 유가족을 초청해 위로하고 매년 참사 주기에 메시지로 애도한 것이다. 기존 피해자 가족을 모욕한 것은 잘못이라고 인식하고 (혐오와 모욕을 막기 위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혐오가 너무 만연해 있다. 경종을 울려야 한다. 이런 건 돈 안 든다. 국가 추모사업도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챙겨 주는 게 중요하다. 지자체가 어려운 걸 지원해 주고. 그렇게 하면 윤석열 정부 공으로 돌아갈 것이다.”

세월호의 교훈 ‘가만있으면 죽는다’
“중대재해처벌법 되돌리면 저항 직면할 것”

- 상임이사께선 지난해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아 매일노동뉴스에 보낸 기고글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진 점은 안전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이라며 “노동자들만의 문제로 인식되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에서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령 개정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우려가 많다. 4·16연대 안전사회위원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을 함께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확인한 것은 가만있으면 죽는다는 것,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구의역 김군 참사 전 두 번이나 비슷한 참사가 있었지만 묻혔다. 김군 사건에서는 시민들 반응이 달랐다. (그런 반응은) 세월호 참사로 확인됐다고 본다. 유가족과 소수가 아무리 말해도 사회적 분위기가 받쳐 주지 않으면 어렵다.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를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제정됐다.”

하지만 그는 “속이 터진다”고 했다.

“국회가 진짜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기업 로비가 엄청 들어가 휘청거렸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내용도 구멍이 숭숭 났지만 그래도 가진 의미가 컸어요. 기업주가 도망 못 가게 막고 (중대재해는) 범죄라고 확인한 겁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5개월이 되도록 아무도 구속되지 않았어요. (노동자가 3명 사망한) 삼표산업마저. 수사기관과 법원이 법 취지대로 하면 좋은데. 거기다가 전경련·경총 요구를 받아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령으로 무력화한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해 어렵게 진전시킨 것을 되돌리려고 한다? 아니지 않나요?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언제까지 노동자 목숨으로 유지되는 경제시스템을 계속 가져갈 겁니까. 혹시라도 지금까지 우리가 같이 노력해서 만들어 온 민주적 성취를 과거로 되돌리려고 한다면 저항을 받을 수 있어요. 중대재해처벌법도 되돌리려고 하는 등 이런 게 쌓이면 된통 크게 당합니다.”

재난·산재참사에서 피해자 권리가 없다

- 4·16재단 상임이사 임기 동안 구상하는 일은.
“제 임기가 3년이다. 앞으로 남은 2년 사이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있다. 그에 맞춰서 진행해야 할 것이 많다. 안산에는 생명안전공원과 트라우마센터를 만들고, 목포에서는 세월호 선체를 보존해서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가칭)을 만드는 과정이 있다. 그런 공간만 세워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운영하고 사람들이 찾아오게 할 거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게 하고 우리 사회 생명·안전 가치를 확산하는 거점을 만들 것인가 고민이다.”

- 더 확장된 사업을 준비하는 것이 있나.
“안전사회운동을 어떻게 개척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재난참사나 산재참사나 피해자 권리가 없다. 마치 피해자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심지어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처럼 인식한다. 피해자가 진실과 정보를 알 권리와 정의를 요구할 권리, 보호받을 권리 등이 우리 법체계에 없다. 이런 피해자 권리부터 확보하는 운동도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는 진상규명이 됐든 안 됐든 지난 8년간 진상규명을 한다고 기구도 만들고 트라우마센터도 만든다고 하고 부족하지만 나름 지원책도 있다. 4·16재단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만 아니라 다른 참사 피해자와 네트워크를 만들고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또 피해자 권익옹호센터를 만들려고 한다. 재난참사 피해자가 스스로 역량을 갖추고 스스로 재난참사에 대응하는 활동가로 움직이게 하려고 한다. 현재 준비하고 있다.”

박 상임이사는 대학생 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했다가 동생 박래전의 죽음이 계기가 돼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이던 박래전은 1988년 6월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 있다! 군부파쇼 타도하자”고 외친 뒤 분신했다. 유가족이 된 박래군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권유로 유가협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현재 노조파괴 일환인 손배·가압류에 맞서 노동·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손잡고’ 상임대표를 맡으며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은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주고 있다.

“586세력·대기업노조 연대투쟁 역사 잊어”

-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은 함께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6월 항쟁을 이야기할 때 더불어민주당에 가 있는 586세력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말하지 않는다. 헌법도 6월 항쟁만 반영한다. 노동자 대투쟁이나 사회적·경제적 민주화가 반영이 안 돼 문제라고 한다. 586세력도 학교 다닐 때는 민중해방, 노동해방을 말하고 다녔다. 노동자 대투쟁 할 때도, 그 이후 울산에서 대규모 싸움이 일어났을 때도 헌신적으로 연대투쟁하던 사람들이 국회에 가 있는데, 다 잊어 먹었다. 민주노총 대규모 사업장 노조들도 자기들 역사를 잊었다. 노조로 안정적 지위를 만들 때까지 수많은 세력이 연대해서 만들었다. 이제는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이기적이 됐다. 진짜 답답하다. 노조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떨어졌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자기들 문제가 생겨 파업한다고 하면 지지받지 못한다.”

박 상임이사는 노동운동과 인권운동 모두에 ‘연대성 회복’을 강조했다.

“연대를 회복해야 하는 게 중요해요. 인권운동과 노동운동 모두. 인권운동도 열심히는 하지만 소수자들이 굉장히 고립된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힘듭니다. 인권운동은 먼저 대중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해요. 서양에서 개발된 개념, 학자나 연구자들 언어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대중이 생활에서 익숙한 표현으로 하면 시민들이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손잡고 활동 역시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의 연대다.
“노동운동은 연대성을 회복해야 한다. ‘손잡고’ 활동을 하다가도 (노조보다 더) 취약한 시민단체가 근근이 유지하며 함께해야 하나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쌍용차·유성기업 등 손배·가압류 문제를 겪는 대부분 사업장이 금속노조 사업장이다.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우리가 끌어안고 법 개정부터 손배·가압류 문제를 풀겠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안 한다. 금속노조 안에서도 연대를 못하고 사회적 약자와도 연대를 못한다. 그럴수록 노조가 고립되는 게 아닌가. 노조가 발언력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사회적 약자와 연대해야 한다.”

“차별 절반은 고용서 발생, 차별금지법 시급”

- 한국은 10대 경제대국에 공식 선진국이 됐다. 우리 사회 인권상황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불평등과 양극화, 혐오와 차별은 더욱 심화한 것 같다.
“인권침해 영역이 달라진 것이다. ‘인권’ 하면 시민·정치적 영역과 경제·사회·문화적 영역이 있다. 반군사독재 민주화 싸움은 시민·정치적 권리 확보를 위한 싸움이었다. 이 부분은 상당히 왔다. 누가 물어보더라. 독재정권 때와 지금 뭐가 달라졌나. 대통령 욕해도 잡혀가지 않는다. 70~80년대 어떻게 대통령 욕을 하나. 남산에 끌려갔지. 그런 공포가 사라졌다. 물론 공권력에 의한 국가폭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 없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주목할 점은 시민·정치적 권리가 아니라 경제·사회적 권리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하면서 양극화가 점점 벌어졌다. 경제·사회적 권리 확보를 위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

혐오·차별은 항상 약자를 겨냥하고 희생양 삼는다. 예전에는 여성·장애인·이주노동자였고, 요새는 성소수자다. 약자들을 대상으로 혐오를 조장한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도 약자일 수밖에 없다. 불평등 문제를 사회운동 세력이 적극 나서서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차별에 대응하는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게 차별금지법 운동이다.”

박 상임이사는 차별금지법은 노동과 가장 밀접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에게도 말한 적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가장 필요한 쪽은 노동입니다. 지금도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진정의 절반 이상이 고용과 관련된 것이에요. 차별금지법에서 차별 영역 첫 번째가 고용 영역입니다. 채용·승진·임금 등 여기서 차별이 엄청 많아요. 차별금지법이 마치 동성애 합법화라는 주장에 노동자들이 현혹되지 말고 좋은 일자리, 좋은 노동을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 차별금지법 제정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넘어가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차별이다, 이것은 해서는 안 된다, 이런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차별당하는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진다. 근거가 있어야 이야기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을 보면 이것이 차별이다, 이것이 잘못됐다고 한다, 이렇게 차별시정 근거를 준다. 약자에게 힘을 주고 목소리 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법이다. 그래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쪽에서 차별을 더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바꿀 수 있는 게 있지 않겠나. 동일노동 동일임금도 상상해 볼 수 있다. 하나의 영역이 만들어지면 이것이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너무 좋지 않나.”

노동전문성 쌓아 온 <매일노동뉴스> “소중한 매체”

- 정치인들의 ‘혐오 정치’를 두고 “혐오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혐오 표현을 막으려면 차별금지법 같은 것으로 막을 수도 있지만 자칫 표현의 자유라는 본질적 권리를 침해할 위험성도 높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게 사회·문화적 인식이다. 혐오 표현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인들에 동조해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 좋아’ 이게 아니라 ‘저건 아니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언론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이 그대로 쓰고, 유튜브나 이런 쪽에서도 그렇게 한다. (혐오 표현을 하는) 사람들을 고립시킬 정도의 성숙한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예전 독일에서는 나치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하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몇 배 더 많이 몰려나와 (나치 시위대를) 에워싸 안 보이게 막는다. 이 정도 성숙한 문화가 형성되면 될 텐데. 우리 사회가 여성 혐오나 장애인 폄하를 못하는 분위기로 많이 가다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같은 사람이 트럼프 식을 (혐오 정치를) 가져와서 이렇게 해도 되는 것처럼 됐다. 이런 게 혐오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거다. 이런 것을 비판하고 이렇게 표현할 수 없도록 제지하는 사회적 힘이 필요하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 <매일노동뉴스>가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매일노동뉴스는 되게 신기하다. 저런 매체가 살아남다니. 과거 비슷한 매체들이 있었는데 다 사라졌다. 그 당시 (제가 있던) 인권운동사랑방은 팩스 소식지를 만들었지만 없어졌다. 매일노동뉴스가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의미다. 언론들이 노동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좋겠다. 경제지가 알아서 써 주니까. 노동쪽은 너무 드물다. 없다고 할 정도로. 매일노동뉴스는 귀한 존재다. 노동자 관점에서 축적된 전문성을 갖고 노동현안과 정책대안을 내놓는 매체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그만큼 소중하다. 매일노동뉴스가 앞으로도 자기 역할을 해 주면 좋겠다. 노동자도 자기 공장과 회사를 나가면 시민이다. 노동자의 시민성, 시민의식을 촉진하는 역할도 해 줬으면 한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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