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세대 상생형 임금체계’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세대 상생형 임금체계 개편의 핵심은 연공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개편하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체계 개편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임금은 근로조건 가운데서도 가장 첨예한 문제로, 변경하려면 노사 간 합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새 정부의 임금정책은 민간보다는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을 타깃으로 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100명 이상 사업장 55.5% 호봉제
공공기관부터 임금체계 개편 추진될 듯

윤 당선자는 공약자료집에서 ‘연공형 임금체계’를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직무·성과와 동떨어진 연공형 임금체계로 인해 보수의 공정성과 성과·혁신 동기가 저해되고 세대 간, 고용형태 간 임금격차가 벌어진다고 비판한다.

연공급 임금체계의 대표적인 형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사업장의 13.7%가 호봉제를 적용한다. 호봉제 적용 비율이 낮은 이유는 사업장 규모가 작은 중소·영세 사업장의 경우 호봉표를 비롯한 임금체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장 노동자는 대개 최저임금을 받는다.

그래서 호봉제 적용 비율은 사업장 규모가 커질수록, 유노조 사업장일수록 높아진다. 100명 이상 사업장은 55.5%(유노조 64.8%), 300명 이상 이상 사업장은 60.1%(유노조 73.3%), 1천명 이상 사업장은 70.3%(유노조 81.8%)가 호봉제를 운영한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연공서열에 기초한 호봉제를 직무 난이도나 업무수행 능력, 직급 혹은 성과를 기초로 하는 임금체계로 바꾸려는 시도는 늘 있었다. 특히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에서 이런 시도가 두드러졌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을 시행하고, 대졸 초임이 2천만원 이상인 공공기관에 10~30% 초임 삭감을 추진했다. 또 10개 금융공공기관 기존 직원 임금을 5% 삭감했다. 성과연봉제가 들어온 것도 이때다. 2급 이상 간부직을 대상으로 성과급 비중을 20~30%로 설정하고 차등 폭을 2배로 하는 임금체계를 적용했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성과연봉제를 4급 이상 직원까지 확대하고 신규채용자 인건비를 임금피크제 절감 재원으로 충당하도록 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노사 간 대화·협상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였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사용자가 노동자 과반수 동의 없이도 노동자에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하는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만들어 임금체계 개편의 지렛대로 삼았다. 이 때문에 상당수 공공기관에서 노사합의 없이 성과연봉제가 도입됐고, 이에 반발하는 노조의 파업과 소송 등이 이어져 마찰을 빚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취업규칙 변경 지침과 저성과자 일반해고를 허용하는 공정인사지침은 폐기되고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도 없앴다. 그렇다고 임금체계 개편 ‘불씨’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는 직무급제 도입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다만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되, 기관의 특성을 반영하고 자율적인 노사합의에 기초해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면서 가속도를 붙이지 않았다.

‘임금체계 개편 절차 합리화’ 공약에
노동계 “박근혜 정부 전철 따르나”

노동계는 “윤석열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은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인사혁신처는 지난 25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공무원의 연공급 중심 보수체계를 직무와 성과를 반영한 보수체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보고해 공공부문부터 직무성과급제 전환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부문 노동계는 무엇보다 “직무·성과형 임금체계 도입이 가능하도록 절차를 합리화하겠다”는 윤 당선자의 공약을 주목하고 있다. 사업장 내 직무·직군·직급별로 근로자대표가 사용자와 서면합의로 임금체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는 내용이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과반수노조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을 받도록 규정했다. 윤 당선자 공약은 근로조건(임금체계) 차이가 있는 경우 노동자집단을 잘게 쪼개어 동의 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럴 경우 과반수노조라도 임금체계 개편 협상에서 배제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남태섭 공공노련 정책기획실장은 “윤 당선자의 공약은 임금체계 개편을 부문별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만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라며 “취업규칙 변경 절차 완화 지침을 만들어 노조 동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 했던 박근혜 정부를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부 고용복지수석으로 저성과자 해고·취업규칙 변경 완화 내용의 2대 지침을 진두지휘한 김현숙 숭실대 교수(경제학)가 윤 당선자의 정책특보로 귀환한 점이 노동계의 우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다만 박근혜 정부에서 공공부문 노동계의 격한 반발로 부작용이 컸던 만큼, 윤석열 정부에서는 임금체계 개편이 부분적이고 단계적으로 시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 지침을 일방적으로 내리꽂는 방식보다는 법 개정 등 절차를 거칠 가능성이 크다.

김홍영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5일 ‘새 정부 노동정책 방향’을 주제로 열린 노동 3학회 공동정책토론회에서 “연공급을 직무·성과형 임금체계로 바꾸는 것은 현행법상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 등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시스템 관계에서 법적으로 유효해야 가능하다”며 “방식에서 입법적 해결을 선택한 것은 옳다”고 밝혔다. 다만 김 교수는 “입법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효력 관계가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자대표제 민주성 확보가 우선”

‘부분 근로자대표 제도’는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한 차례 논의된 바 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 개정안에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소위에서 과반수노조 형해화 등 여러 우려가 나오면서 자진철회했다. 반면 그동안 부분 근로자대표를 인정하지 않았던 노동부는 대법원 판례(2009두2238) 등을 근거로 지난해 5월27일 행정해석을 변경했다. 근로조건을 일부 직군·직종 노동자만 적용하는 경우 ‘부분 근로자대표’ 선정을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현재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민주적 근로자대표제 확보다.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근로자참여법은 근로자대표 선출 절차나 활동을 보장하는 내용이 없어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경우 사용자가 입맛에 맞는 노동자를 근로자대표로 앉히기 일쑤다. 지난해 12월28일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를 노동자 과반수가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선출하도록 명시한 근로자참여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를 겨우 통과한 상태다.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소위에 상정됐지만 의결되지 못했다. 임금체계 개편뿐만 아니라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비롯한 새 정부의 공약사항 상당수가 근로자대표 서면합의로 가능하다. 국회가 근로자대표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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