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공공운수노조

윤석열 정부의 일자리 공약은 규제를 과감히 풀어 민간에 맡기는 것으로 집약된다. 공약집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규제개혁 전담기구를 통한 규제혁신으로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업규제를 완화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은 곧 노동시장 유연화를 의미한다.

민간 주도 경제, 노동시장 유연화

윤석열 당선자의 외부 공식 행보는 경제 6단체장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21일 경제 6단체장을 만난 자리에서 윤 당선자는 “우리나라가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경제가 탈바꿈해야 한다”며 “기업이 앞장서서 일자리를 만들며 투자하는 것이 나라가 커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극화 심화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고착화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국가의 역동적 혁신성장을 통한 경제 재도약”이라고 밝혔다.

공약집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위한 방안은 특별히 제시된 바 없다. 다만 ‘취약계층 노동권 보호’라는 제목 아래 플랫폼 종사자 등 노무제공자의 권리보장 법제화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개정을 통한 임시직 청년 권리구제를 제시했다.

윤 당선자의 노무제공자 권리보장 법제화 공약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플랫폼 종사자나 1인 자영업자 등을 포괄하는 기본법이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사각지대를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와 기존 노동관계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의 노동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가 공존한다.

특히 우려하는 쪽에서는 임이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가 발의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의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처럼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를 노동관계법 밖으로 밀어내는 작용을 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다양한 고용형태를 포괄한 노동자를 노동법 적용배제 대상으로 공식화하고 이들을 노동법이 아닌 제3의 법 영역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은 “법률 제정 방식이라면 선거 중에 다른 당에서도 나왔던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기본법’과 비슷한 맥락”이라며 “핵심은 권리 보장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체교섭권 등 노동법적 쟁점을 해결하지 못하면 사회적 합의에도 CJ대한통운 택배 파업사태가 되풀이되는 것처럼 당면한 플랫폼·특수고용 문제들을 하나도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기간제법 개정 공약
사용기간 제한마저 흔들리나

기간제법 개정 공약은 ‘임시직 청년 권리구제’ 외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그런데 윤 당선자의 그간 발언을 비춰 보면 사용기간 제한 완화 같은 규제완화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

지난해 9월 윤 당선자는 안동대 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청년일자리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기존 노동시장을 조금 물렁물렁하게 유연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일자리가 큰 차이가 없도록 해야 한다”며 “사실 임금에 큰 차이가 없으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큰 의미가 있겠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특히 한 직장에 평생근무할 생각이 없지 않냐”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기간제법 개정 공약을 2년 이상 기간제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사용기간 제한 빗장마저 열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실제로 윤석열 당선자의 측근들이 활약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 노동부는 ‘비정규직 100만 해고설’을 내세워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을 4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무리한 정부정책 배경에는 비정규직 해고의 원인이 사용기간 제한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공약에는 임금체불 등 청년 노동권 침해시 신고접수만으로 신속한 무료 법률서비스 제공 같은 권리구제 절차를 대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확대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미 지방자치단체에서 노동법률 상담서비스를 통해 상당 부분 제공되는 것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기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전환 대응해 직업훈련·고용서비스 고도화
산업전환 정책에서 노동배제 ‘위험’

윤 당선자 공약집에서 두르러지는 대목은 직업훈련과 고용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디지털·저탄소 경제 전환에 대응해 고용영향 사전평가를 실시하고 기업과 노동자, 지역이 연계해 노동전환 종합지원계획을 수립하는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차세대 디지털 고용서비스 플랫폼 구축이나 고용서비스 전문성 강화를 위한 여건 조성, 자영업자와 플랫폼 노동자 직업능력개발 기회 확대 등도 포함됐다.

문제는 민간주도형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업 성장을 기본값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제대로 된 일자리는 기업만 만들 수 있다는 전제하에 규제완화와 기업 지원으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게 기본 설정”이라며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의 참여나 공동결정 같은 지배구조 문제나 노동시간단축과 이에 연계된 소득보전 문제 같은 노동계 요구에는 입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윤석열 정부에서 산업전환이 일방적으로 기업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노동을 배제하면서 추진될 위험이 크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공정채용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면서 단체협약 조항 무효화도 포함시킨 점이다. 윤 당선자의 공약은 “절차적 공정성만 규정한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을 공정채용 내용까지 포괄하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정년퇴직자,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 등 단협상 불공정채용 관련 조항을 무효화하는 것도 해당된다. 하지만 산재 유가족 우선채용 단협의 경우 2020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합법성을 인정받아 고용세습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바 있다.

윤석열 정부의 고용세습 단협 무효화 공약은 2016년 박근혜 정부의 단협 시정명령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노동부는 기업 단협을 점검한 뒤 ‘조합원 자녀 우선채용 조항’ 시정명령을 내려 ‘노조탄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산업정책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 노동정책도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 정책은 오히려 퇴보하는 양상”이라며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 정책을 입안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과거 10년 전 설계한 방식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어 당분간 노동시장 제도 지체와 퇴보가 지속될까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