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20여년간 한국지엠 자동차판매 대리점을 운영해 온 이현수(58·가명)씨는 내년 초 한국지엠에 사업권을 반납해야 한다. 대리점 영업사원(카매니저)이 ‘온라인 판매’를 한 것이 적발돼 계약해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억울했다. 영업사원이 아닌 제3자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OOO 매니저는 싸게 해 주더라”고 쓴 게시글을 본 고객이 카매니저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계약이 성사된 건이었다. 영업사원은 온라인을 경유해 계약이 체결됐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계약해지 쉽게 바꾸자 대리점 ‘우수수’

한국지엠이 최근 판매대리점을 상대로 사실상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이씨처럼 무리한 계약해지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같은 사유로 이씨를 포함해 내년 초 3개 대리점이 문을 닫는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계약사항 위반시 계약해지를 이전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내용을 바꿨다. 대리점주들은 2017년 지엠 철수설이 불거진 후로 가뜩이나 고객 발길이 끊어진 마당에 지엠이 대리점 지원금을 줄이거나 계약해지를 들먹이는 등 갑질이 심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에서는 한국지엠이 국내에서 철수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대리점 규모도 축소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지엠 자동차판매대리점은 2016년 330개에서 올해 207개로 4년 새 123개가 줄어들었다. 철수설이 나오기 시작한 2017년부터 감소세에 접어들어 지난해에만 59개가 사라졌다. 대리점수가 줄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로 자동차를 판매하는 카매니저 숫자도 줄었다. 이들은 2016년 3천500명에서 올해 1천700명으로 무려 1천800명이 감소했다.

대리점수가 줄어드는 가장 큰 원인은 수익감소 때문이다. 한국지엠의 연간 내수판매가 2016년 18만대에서 올해 8만대 수준으로 반토막 나며 흑자를 유지하는 대리점 비중도 2016년 39%에서 올해 4%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한국 내수시장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2016년과 동일하게 연 180만대 규모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의 내수시장 점유율이 같은 기간 10%에서 4.3%로 떨어진 탓이 크다.

대리점 수수료율·지원금 삭감하는 한국지엠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지엠이 대리점 지원금 규모를 줄이는 등 사실상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기아자동차와 달리 한국지엠 대리점은 본사에서 관리하는 직영 없이 전국 대리점 모두 위탁판매 2년 단위 계약을 맺고 운영된다. 한국지엠 대리점은 판매수수료와 지원금을 한국지엠에서 받아 운영하는데, 수수료율을 낮추고 지원금도 지속적으로 줄여 왔다는 게 대리점주들의 설명이다. 평균 수수료율은 2016년 7.16%에서 올해 6.62%로 낮아졌다. 지원금이 줄어들며 수수료와 지원금 비중은 7 대 3에서 8 대 2 수준이 됐다.

자진폐업을 유도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수도권에서 대리점을 운영하는 강지원(가명)씨는 “SUV 동일 차종에 대한 수수료를 낮추고 경영효율화를 이유로 지원금을 깎는 것은 결국 자진폐업을 유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안정적인 판매네트워크를 유지하려면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불합리한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리점주와 한국지엠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정책협의 자리에서 판매급감과 수수료 삭감으로 적자가 누적된 상황을 토로하자 한국지엠쪽은 “대리점 사무직 직원 월급을 깎으면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지엠이 대리점 규모를 줄이려는 배경에는 결국 한국시장 철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는 “판매대리점 숫자가 줄어들면 시장 영향력과 판매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R&D사업 분리와 수입자동차협회 가입 등과 마찬가지로 대리점 규모 축소 또한 철수 수순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대리점주들이 모인 한국지엠전국대리점발전협의회(회장 윤영린)는 한국지엠이 대리점 구조조정이 아니라 내수판매 확충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영린 회장은 “내수판매가 활성화돼야 대리점도 살고, 공장도 살고, 한국지엠도 사는 길”이라며 “한국지엠이 대리점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도록 2대 주주인 산업은행도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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