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4월 군산공장 문제로 국회를 방문한 한국지엠 경영진. 한국정부와 국회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한국지엠이 최근 정부가 지원한 8천100억원을 전부 소진한 뒤 KDB산업은행을 찾아가 추가로 공적자금을 투입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2년 전 철수 카드를 내밀고 정부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던 방식이 그대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9일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4월 말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과 아담 칠린스키 부사장이 산업은행을 방문해 추가 자금지원을 요청했다”는 취지의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 발언이 담긴 녹취를 입수했다. 산업은행 고위 관계자는 5월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지부장 김성갑)를 만나 한국지엠 경영진 면담 사실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엠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며 “지엠이 (먼저) 액션을 취하고 상황이 이렇게 (어렵게) 됐으니까 정부도 참여를 해야 되지 않겠냐고 하면 모르겠지만…”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제공한 자금만 쓰고…

한국지엠은 정부 지원금을 소진한 시점에 산업은행을 찾아가 추가 자금 투입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지엠은 이후 7월 상견례를 시작으로 이어진 2020년 임금·단체교섭 자리에서 지부에 “4월부로 산업은행이 투입한 자금은 모두 집행됐다”고 밝혔다.

8천100억원은 2년 전 한국지엠 정상화를 위해 산업은행이 투입한 자금이다. 정부와 글로벌지엠은 2018년 71억5천만달러(약 7조7천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분율에 따라 글로벌지엠이 64억달러(약 6조9천억원), 산업은행이 7억5천만달러(약 8천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문제는 한국지엠이 28억달러 규모의 회전한도대출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정부 지원금부터 전부 소진했다는 점이다. 4월에 발표된 2019년 한국지엠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회전한도대출금액 28억달러 가운데 실행금액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전한도대출은 정해진 한도 범위 내에서 필요할 때 돈을 꺼내 쓰는 마이너스통장과 비슷한 개념이다.

2018년 당시 글로벌지엠은 64억달러 가운데 28억달러(시설투자용 20억달러·운영자금용 8억달러)를 한국지엠에 회전한도대출로 제공하기로 했다. 글로벌지엠은 나머지 36억달러 가운데 28억달러는 한국지엠에 대한 기존 대출금을 출자전환하는 데에, 8억달러는 희망퇴직금 등 구조조정 비용에 쓰기로 했다. 28억달러는 장부상 차입금을 우선주 자본금으로 전환한 것이어서 실제 투입된 자금은 희망퇴직금에 쓰인 8억달러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대주주로서 책임은 다하지 않고 철수 카드를 들이밀며 정부지원금을 받으려는 수법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2년 전 같은 수법? …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논란

최근 한국지엠이 밝힌 부평1공장 투자계획 보류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노조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정부 지원을 추가로 받아내기 위한 수순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차세대 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차량(CUV) 파생모델에 1억9천만달러나 필요하지 않다”며 “회전한도대출금액은 한 푼도 쓰지 않은 것처럼 결국 (지원을 받아) 정부 돈으로 하겠다는 이야기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국지엠은 부평1공장에 1억9천만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가 최근 지부가 부분파업을 하자 맞불 성격으로 계획 보류 의사를 밝혔다. 1억9천만달러 규모가 산출된 근거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지엠의 전략에 섣부르게 추가 자금지원으로 대응해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는 “일자리를 볼모로 자금지원을 요구하는 관행에 (쉽게) 넘어가선 안 된다”며 “산업은행이 2대주주인 만큼 관리·감독에 철저히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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