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정부와 제너럴 모터스(GM)의 합의를 두고 "기업회생 효과는 없고 기업 운영자금을 혈세로 부담하는 퍼주기 협상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 합의로 한국시장 철수를 준비하는 지엠 속내가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지엠횡포저지·노동자살리기 범국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지엠이 합의한 경영회생방안이 시행되더라도 한국지엠이 경영정상화를 달성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운영자금 투입하면 한국지엠 살아날까

산업은행과 지엠이 맺은 경영정상화 방안은 투입 자금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지엠은 한국지엠에 빌려준 기존 대출금 28억달러를 출자전환하고 향후 10년간 신규로 36억달러를 대출해 준다. 산업은행은 7억5천만달러를 올해 현금으로 지급한다.

정부는 '한국지엠 관련 협상 결과 및 부품업체·지역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한국지엠 잔류가 최소 10년은 보장됐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지엠이 36억달러를 대출하기로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지엠 경영을 정상화하는 방안으로 크게 두 가지 합의를 내세웠다. 우선 지엠은 2021년부터 한국지엠 부평공장에 차세대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배정한다. 2022년부터 창원공장에서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를 생산할 계획이다. 폐쇄했던 지엠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를 한국에 설치하는 방안도 있다. 이 같은 계획으로 한국지엠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전망은 밝지 않다.

내수·수출 전망 어두운데 관련 대책 안 보여

한국지엠은 지난해 내수(13만2천대)와 수출(39만2천대)을 합쳐 52만4천대를 판매했다. 앞으로도 50만대 생산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수출주력은 부평공장에서 생산하는 트랙스와 창원공장에서 만드는 스파크다. 수출물량 중 13만~16만대는 푸조시트로엥그룹(PSA)의 오펠을 통해 유럽시장에 풀린다. 그런데 PSA는 한국지엠에서 수입하던 물량 전체를 2020년부터 유럽공장에서 생산한다고 선언한 상태다. 한국지엠 생산물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노동계는 2~3년이 지나면 유럽시장에 보낼 물량이 없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내수시장 상황도 좋지 않다. 철수 논란으로 브랜드 신뢰가 저하한 탓에 올해 판매 전망은 10만대를 밑돈다. 수출·내수에서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2021년부터 부평공장에서 생산하겠다는 소형 SUV는 트랙스 후속모델이다. 창원공장에 배정할 CUV는 실체가 없다. 생산하더라도 스파크 단종 후 대체차량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둘 모두 유럽시장이 막히면 현재보다 생산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차종이다.

지엠 아태본부에서 얻게 되는 효과도 크지 않다. 아태본부는 중국을 제외한 지역을 대상으로 지엠 전략을 수립하는 사무소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지엠이 태국·베트남 등 아태 9개국에서 판매한 차량은 4만5천여대 수준이다. 해당 지역에 한국지엠이 만든 차량을 보낸다고 해도 판매량 증가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한국지엠 경영위기를 부른 원인을 진단하겠다며 실사를 하고도 면죄부를 부여한 점도 논란이다. 2016년 기준 한국지엠 매출원가율은 93.1%다. 국내 다른 완성차는 80%대 초반이다. 매출액 대비 원가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인 매출원가액은 매출액이 낮거나(차를 싸게 팔거나) 원가가 높으면(원재료비·인건비·연구개발비 등) 수치가 높아진다.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한 실사 결과를 공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엠과 한국지엠 간 이전가격 문제에 대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전기차 생산 없어 "지엠 철수 전략 그대로"

정부가 판단하는 한국지엠 경영위기 원인은 결국 노동자였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지엠 부실 원인을 묻는 질문에 "고정비 성격 인건비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고정비를 줄이려는 노력이 지속되면 2020년에는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협상에 나섰던 지엠의 속내는 무엇일까. 노동계는 지엠이 한국지엠에 전기차 등 미래차 생산을 맡기지 않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지엠은 2023년까지 최소 20종의 순수 전기차를 출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범국민대책위 관계자는 "지엠이 한국지엠을 장기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면 전기차 생산을 맡겨야 하는데 끝내 약속하지 않았다"며 "판매가 크게 기대되지 않는 신차 2종과 일자리 문제를 각각 미끼와 협박용 카드로 내세워 한국지엠 운영비를 정부에서 뽑아 갔다"고 비판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정부가 지엠과의 협상에서 대단히 많은 것을 얻은 것처럼 홍보하지만 현실은 한국지엠의 철수 전략 10년 연장에 불과하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속히 마무리하겠다는 정부의 무능 때문에 제대로 된 실사도 하지 못한 채 퍼주기 협상을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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