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개정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야는 여전히 팽팽한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아니, 여당 내에서조차 이견은 존재한다. 기간연장을 골자로 한 정부안에 대해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정규직 전환 시점인 오는 7월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계산은 복잡해진다. 여야의 비정규직법 셈법과 처리 전망을 살펴봤다.

한나라당, 유예안 굳히기 나서나

당초 의원입법을 추진하던 노동부는 결국 ‘돌고 돌아’ 지난 1일 비정규직 사용기간 4년 연장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직접 제출했다. 시간이 지연되는 상황 속에서 일단 국회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그러나 ‘공’을 넘겨받은 국회의 상황은 간단치 않다. 의원입법이 실패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 여당에서조차 정부안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4월 국회 들어서면서부터 비정규직법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정규직 전환 시점인 7월이 다가오면서 처리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13일 정책의총을 통해 홍준표 원내대표가 ‘유예안’ 굳히기에 나섰다. 이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으나 유예안이 대세였다는 게 공통된 전언이다. 그러나 이날 ‘당론’ 확정은 하지 못했다. 세부적 사항, 즉 유예기간, 업종·규모별 특성 등에서 여전히 문제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결과에 대해 “4년 유예안이 대세였다”고 주장했지만, 안홍준 제5정조위원장은 “업종·숙련도·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태 의원은 “4년 유예는 너무 가혹하다”고 반대하기도 했다. 더구나 4년 유예안에 국민의 60%가 반대하고 있다는 여론조사(진보신당) 결과가 23일 발표되면서 내부여론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민주당, ‘사회적 합의’로 수비

현행 비정규직법을 만들었던 전 집권당인 민주당은 원칙적으로 기간연장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법 개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김상희 민주당 의원이 기간은 현행유지하고 차별시정제도를 강화하는 내용의 보완입법을 내놓은 상황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비정규직법의 복잡한 매듭을 풀 수 있는 고리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은 추경안에 1인당 월 50만원(총 20만명)씩 올 하반기에 6천억원을 반영하자는 요구안을 내놨다. 정부의 사회보험료 감면을 통한 1인당 월 6만5천원(2년간 155만원)의 간접지원으로는 정규직 전환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견은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정부·여당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부대의견으로 채택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공은 여야 지도부로 넘어간 셈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바로 환노위다. 추미애 환노위원장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추 위원장은 4월 상정 가능성을 배제하며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행보는 민주노총과 맞물려 있어 주목된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정부·여당의 4년 연장 또는 유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나온 4년 유예안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6년까지 연장시키겠다는 것으로 비정규직에게 고통만 안겨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연장이든 유예든 반대”

민주노총은 사용기간 폐지와 사용사유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대체입법안을 홍희덕 의원을 통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폐지를 전제로 근로기준법에 사용사유 제한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정책연대 파트너인 한국노총의 행보도 주목된다. 한나라당이 노동계와 협의를 거쳐 당론을 결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양측의 협상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4월 국회 종료 뒤 만나게 될 것”이라며 “유예안을 비롯한 여러 방안이 거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유예안에 반대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21일 환노위와 한나라당에 전달한 의견서에서 “어떠한 형태의 개정안도 처리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비정규직법 개정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더욱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가 당내에선 유예안 굳히기에 나서는 한편 환노위를 ‘불량상임위’라고 지목하며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홍 원내대표는 4월 국회 상정을 집요하게 요구하며 “환노위가 일을 안 한다”고 공세를 폈다. 이에 추미애 환노위원장이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수비에 나선 상황이다. 추 위원장은 홍 원내대표의 ‘불량상임위’ 공격에 대해 “산고 끝에 만든 법인데 상정이 능사는 아니다”며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아직까지 비정규직법의 4월 상정 여부는 알 수 없다. 한나라당이 28일 상임위에서 비정규직법 상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간사는 27일 비정규직법을 포함해 추가상정 법안을 협의한다. 그러나 비정규직법의 4월 상정 가능성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여러 가지 ‘변수’는 존재한다. 우선 4·29 재보선 결과. 만약 민주당의 패배로 귀결될 경우 원내에서 민주당의 위상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규직 전환 지원금도 중요한 변수다. 비록 환노위에서 부대의견으로 채택하는 데 그쳤지만 여야 원내지도부 간 협상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정규직 전환 지원금은 2차 추경 혹은 정부 사회보험료 감면안 논의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6월의 격전’ 예고

또 하나의 변수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최종 입장’이다. 그동안 노사정위 비정규직대책위에서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를 해 왔지만 결국 단일안 합의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노사정위 차관급인 상무위, 장관급인 본위원회에서 최종 결의가 남아 있다.

어수봉 비정규직대책위원장이 4월 13일자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것은 가능하다”라고 말한 것을 의미심장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다음달엔 여야 원내대표 선거도 있다. 여태까지 비정규직법 국면을 진두지휘 했던 홍준표 원내대표 등 원내사령부가 뒤로 물러서고 새로운 사령부가 나서게 된다.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는 4월 국회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불붙기 시작했다. 사실상 4월 국회 상정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치권은 ‘6월의 격전’을 예고하고 있다.


<2009년 4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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