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로 인해 취약계층이 소외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담서비스 강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공서비스와 민간지원서비스의 역할분담을 통한 취약계층 보호도 중요하다. 취업지원 등 공공서비스 강화와 더불어 지역노동상담소에 대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양의 한 냉장유통회사에 다니는 서민순(가명·57)씨. 서씨는 지난달 관리자로부터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얘기를 들었다. 서씨는 당뇨로 몇 년째 입원해 있는 남편의 병원비와 늦은 나이에 얻은 아이의 양육비를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상금이라도 받고 싶었다. “한국노총 지역상담소에 가보라”는 지인의 얘기를 들었다. 상담소는 서씨를 대신해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회사로부터 다시 나오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위로금을 받고 끝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변선자(59)씨는 정부기관을 쫓아다니다 뒤늦게 지역노동상담소를 찾은 경우다. 빌딩용역업체에서 근무했던 변씨는 고용지원센터를 찾았다가 허탕을 쳤다. 그는 지난 1월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집 주변에 고용지원센터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복직이 안 되더라도 금전적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센터 상담원은 “해고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노동부 지방노동청으로 가야한다”는 말만 했다. 구제신청기간 마감을 코앞에 둔 시점에 지역노동상담소를 찾았고, 진정을 제출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이들은 그나마 도움을 받아 다행인 경우다. 혼자 동분서주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영어학원 강사로 근무했던 이동진(가명·27)씨는 지난달 10일 학원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지만 도움받을 곳을 찾지 못해 복직과 보상을 포기했다. 복직하는 방법도, 임금을 얼마나 청구해야 하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원장에게 받지 못한 주말강의료를 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이씨는 “뒤늦게 노동청 진정방법과 지역상담소를 소개받았다”며 “홍보가 됐으면 많은 도움이 됐을 텐데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도움 구하는 마지막 보루

“네, 민주노총 경기법률원입니다. 해고통보를 받으셨다고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행정절차를 밟으려면 증거자료를 꼭 챙겨야 합니다.”
지난 22일 찾은 민주노총 경기법률원. 노무사 3명이 상주하고 있지만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쉴 틈이 없다. 고관홍 노무사는 “경제위기 이후 해고상담이 부쩍 늘었다”며 “1인당 20~30분만 상담해도 10명 이상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제위기가 몰아닥친 후 노동·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지역노동상담소에 과부하가 걸렸다. 해고와 임금체불에 대한 상담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세업체노동자들로, 정부기관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구제절차를 몰라 도움을 요청한다. 지역노동상담소가 영세노동자들만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지역 영세노동자들뿐 아니라 지역주민도 많이 찾는다. 노동단체에서 운영하는 노동상담소의 경우 이용비율이 소속 조합원보다 지역주민이 두 배 가량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상담소들은 공적서비스영역으로 분류되는 취업알선을 제외한 임금체불·해고구제 지원부터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관련 심리상담, 간단한 생활지원상담까지 지역노동시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나 조직된 노조들의 교육에 있어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노동단체가 지역조직화 사업의 중심이 되고 있다.

공적인 영역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취업알선상담을 제외한 노동관련 상담을 하는 상담소는 전국적으로 150여개가 넘는다. 한국노총 법률원이 운영하는 지역노동상담소 19곳, 민주노총 지역본부상담소 19곳으로 양 노총이 운영하는 곳은 총 38곳이다. 한국노총은 2007년부터 법률원 차원에서 독립적·체계적으로 지역노동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역본부에서 상담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지난해 2월 처음으로 호죽노동인권센터를 별도로 설립했다. 이 밖에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단체가 운영하는 상담센터가 10여곳이 있고, 100여개 이상 되는 외국인 관련 단체도 노동상담을 하고 있다.

지역노동상담소는 공공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곳과 민간사설상담소의 사각지대를 상당부분 해소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고용지원센터나 지방노동청·대한법률구조공단 등 공적기관이 있지만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사실상 업무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공공서비스 사각지대 해소

고용지원센터의 경우 취업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하기 때문에 당장 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취업업무와 연계한 개별심리상담 업무를 진행하고 있지만 실직자가 대거 늘면서 이마저도 어렵게 돼 버렸다. 대다수 인력이 취업관련 업무에 투입되다 보니 상담업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임금체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지방노동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경제위기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사건을 감당하기도 벅차다. 실제로 임금체불사건만 97년 6만건에서 2007년 25만건으로 늘었고, 경제위기로 인해 지난해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법률소송을 무료로 지원하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경우 지난해 12월 말 현재 임금사건 관련 민원인은 11만4천여명(4만9천여건)에 달했다. 전체 민원인 16만4천여명(9만7천여건)의 70%에 달한다. 2007년에 비해 3천명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해고 구제를 맡고 있는 노동위원회의 심판사건 신청건수도 지난달 현재 4천36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3천769건)보다 증가했다. 차별시정사건까지 담당하고 있어 인력의 여유가 없다. 지역노동상담소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이같은 행정력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이 때문이다. 심재정 한국노총 부천지역상담소장은 “노동자 의식이 높아지고 있고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현재의 행정시스템만으로는 신청사건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노동상담소의 역할을 확대할 경우 신고사건으로 전이되는 비율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관계 사적조정자 역할

한국노총 법률원에 따르면 지난해 소속 지역노동상담소 총 상담건수 3만3천496건 중 상담 과정에서 사건을 해결한 경우는 3만2천352건으로 전체 96.6%에 달한다. 반면 해고구제신청(321건)·체불임금 진정(489건)·산재요양신청(87건)·소송(247건) 등으로 이어진 비중은 3.4%(총 1천144건)에 불과하다. 한국노총 노동상담소가 담당한 사건수만 해도 노동부 전체 신고사건수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2007년의 경우 노동부 신고사건수가 25만여건으로 추정되는데, 한국노총 상담소 상담건수는 3만3천496건으로 13.5% 정도를 차지했다.

민주노총 상담소나 기타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상담건수를 포함할 경우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집단적 노사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노총 상담소의 집단적 노사관계 상담건수는 5천740건으로 전체 상담수 대비 17.1%를 차지했다. 노조설립부터 노조운영, 단체교섭·협약, 쟁의조정까지 사적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률적 차원을 넘어 노동자의 특수한 상황까지 고려해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도 공적인 서비스에 비해 지역상담소만의 장점으로 꼽힌다.

특성별 상담이 가능하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여성단체의 경우 성희롱 등 여성관련 문제부터 여성인력개발이나 돌봄 서비스와 같은 문제에 대해 전문성을 갖고 있다. 외국인노동단체도 각 나라의 문화적 특징을 반영한 상담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력이나 재정 부족으로 제 역할을 다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부분 상담소가 구성원들의 희생이 아니면 운영 자체가 어려울 지경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해도 인건비 일부와 운영비 정도에 그친다. 지역노동상담소의 전문성 강화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공인노무사 등 법률전문가들이 상담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아직 대다수 상담소에서 상담원들의 노하우나 경력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공공·민간서비스 강화 중요

경제위기로 인해 취약계층이 소외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담서비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선 공공서비스의 인력확충 등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공공서비스와 민간지원서비스의 역할분담을 통해 서비스 영역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포괄해야 한다. 정숙희 한국노동연구원 고성과작업혁신센터 지역상담팀장은 “지역노동상담소는 정부나 노동계가 끌어안을 수 없는 지역사업이나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공공서비스와 관계된 정부 사업을 지역접근성이 높은 지역상담소와 함께 수행하면서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현경 기자 joeun@
정영현 기자 andiba@


<2009년 4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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