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들이 철도공사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했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승무원들은 철도유통 직원”이라며 합법적인 도급을 강조하던 철도공사의 논리가 곳곳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KTX 승무원과 연관성을 부인했던 철도공사가 승무원들의 취업 때 면접관으로 나오거나 임금을 지급하고 퇴직급여 충당금까지 쌓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철도공사(당시 철도청)는 KTX 개통 전에 이미 승무원들의 업무 특성 때문에 특실서비스를 제외하면 도급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추진계획을 세운 것으로 밝혀졌다. 몇 달 안돼 전면 외주화로 방향을 바꿨지만 그 뒤에도 애초 지휘체계나 수행업무는 바뀌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의적인 법 위반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열차팀장이 여승무원 업무수행 평가

6일 KTX 승무지부가 확보해 <매일노동뉴스>에 공개한 ‘고속열차승무원 업무자료집’<사진>에 따르면 여승무원은 객실 안내는 물론 승차권 발매, 안전업무를 담당토록 했다. 2005년 업무자료집의 내용은 KTX 열차팀장, 승무지도원, 여승무원이 따로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반드시 따르도록 돼 있다.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승무원의 업무내용과 지휘감독 책임이 자세하게 적시돼 있다. 여승무원은 출발 전 열차팀장과 함께 승무일지를 작성하고 승무신고를 하는데 그 신고 절차는 교육을 받고 이를 확인하는 절차로 보인다. 자료집에는 철도공사 직원인 열차팀장 인솔로 전 승무원이 지도팀장에게 안전, 운전, 여객 등에 관한 교육을 받고 승무일지에 기록해 운용팀장의 서명을 받을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 뒤 승무원은 열차팀장으로부터 업무를 분담 받고 지시사항을 듣도록 돼 있다.

안전에 대한 세부적인 지침도 적시했다. 출발준비를 하면서 무전기와 승강문, 인터폰 기능을 점검하고 화재가 날 때는 ‘열차팀장을 호출해 화재 발생사실을 통보하고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전한 호차로 우선 대피하라’고 돼 있다. 또 귀빈 영접과 일반승객 안내 방법은 물론 승하차 때 행동요령도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이런 행동 규칙은 곧바로 열차팀장의 평가를 받게 된다. 지난해 1월 철도공사가 만든 직제규정에 따르면 열차팀장은 ‘KTX 여승무원 승객서비스 업무 수행확인 및 평가 시행’ 업무를 하도록 돼 있다. 지난 2004년 12월 고속철도사업본부에서 작성한 ‘KTX 여승무원 인센티브 지급 검토(안)’은 승무원들을 우수, 보통, 저조, 미흡 4단계로 나눠 개인별로 인센티브를 차등지급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게다가 철도공사는 KTX 승무원의 임금도 지급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철도공사가 단병호 의원에게 제출한 ‘단가 산출서’에 따르면 수당과 임금, 퇴직금까지 지급했다. 단가산출서에는 휴일수당, 시간외 수당, 교통비, 상여금, 급식비 등 임금의 세부항목을 만들어 단가를 정했다. 또 일급 2만9,390원, 기본급 76만6,000원 등 임금 명세는 물론 퇴직급여 충당금이라는 명목으로 퇴직금도 지급한 것으로 돼 있다. 국민연금 등 4대 보험은 물론 피복비도 지급했다. 이같은 사실은 철도공사가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을 자행했다는 명백한 증거다.


2003년에 이미 불법사실 알아

특히 철도공사(당시 철도청)는 이렇게 KTX 승무원들이 철도공사와 독립돼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KTX 개통 전에 판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일 승무지부가 폭로한 ‘고속철도 운영인력 충원방안’ 내부문서에 이런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

당시 철도청은 고속철도 열차승무사무소의 조직을 구성하면서 승무원은 4인1조로 적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승무구성은 전무와 차장 각 1명과 승무원 2명으로 하되 새마을 수준의 서비스 때는 5명이 필요하다고 적고 있다. 이 문서는 특히 여승무원을 “여객의 문의에 응대하고 특실서비스 등 열차 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한다”고 규정하고 “관리자의 지시·감독에 의해 업무를 수행해서 도급위탁이 곤란하다”고 적고 있다. 다만 “특실서비스 업무를 독립시킬 경우에는 (도급위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초 방침상 열차승무원의 외주예산은 안내원 1명을 전제로 확보했으므로 117명에 대해서만 외주방안을 검토한다”며 “안내원 증원에 의한 추가소요인력 117명은 열차 내 상품판매 사업자에 의한 승객서비스(Passenger Service)와 연계해 별도 추진한다”고 계획을 확정했다.

이는 철도청이 노동부에 ‘매표, 개·집표, 안내업무와 열차승무원 중 안내원’ 업무에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지 질의한 데에 노동부가 “파견대상 업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회신한 것을 참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11월에 시행되기 시작한 이 계획은 몇 달 안 돼 뒤집힌다. 일부 승무원이 아니라 모든 승무원을 외주위탁키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2004년의 ‘여승무원 업무프로세스’나 2005년 ‘업무자료집’에 따르면 여승무원의 업무나 감독체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관리자의 지시·감독에 의해 업무를 수행해 도급이 곤란하다”고 밝힌 철도청의 진단은 맞았지만 승무원의 고용형태는 위법한 형태로 바뀐 셈이다.

이에 대해 철도공사는 “당시 철도청은 2003년 9월에는 특실만을 외주화할 것을 검토하고 이와 관련하여 노동부에 질의서를 보낸 바 있다”며 “노동부가 외주화를 도급으로 추진할 경우 완전도급 형태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해와 철도청은 특실 뿐 아니라 일반실까지 포함하여 완전도급 형태로 외주화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철도공사는 “고속열차 승무원들이 독립적으로 업무수행이 가능하도록 운전관련 안전업무는 경력직인 열차팀장이 담당하고 승객서비스 업무는 외주업체에서 독립적으로 수행하도록 엄격히 구분했다”며 “이 같은 승무원 운용에 대해 2005년 9월 노동부에서 파견법 위반 혐의가 없다는 판정을 내린바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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