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KTX 승무지부가 지난 5일 폭로한 ‘고속철도 운영인력 충원방안’(충원방안) 문서는 위법사실을 뻔히 알고 저지른 철도공사뿐만 아니라 노동부에도 화살을 겨누고 있다. 노동부가 철도청의 질의에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도급’ 방식을 제시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은 지난 2003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9월 30일 철도공사는 노동부에 매표와 개·집표, 안내업무, 열차승무원 중 안내원의 업무에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지를 질의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8일 뒤 이들 업무는 파견대상 업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회신했다. “다만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 또는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최장 6월의 기간을 한도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노동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도급에 의한 업무위탁으로 이 업무를 추진할 때”를 대비한 ‘충고’도 덧붙인다. “(위탁업체와 맺는) 계약서가 도급의 내용으로 이뤄져야 할 뿐만 아니라 실제 사업을 수행하는 형태도 실질적인 도급으로 운영돼야 합법적인 도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철도청은 이 충고를 받아 충원방안 문서를 만들어 10월말 당시 정용철 철도청장의 결제를 받아 11월초에 이를 시행한다. 특실승객 서비스가 여객전무나 차장의 업무와 독립적으로 분리해 수행 가능한만큼 이 업무만 외주를 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34명(계획상) 가운데 117명은 특실 서비스를 나머지는 일반실 서비스를 담당케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이듬해 4월 승무원 전부를 외주화하는 것으로 뒤집힌다. 그리고 철도청은 스스로 파견은 불법이라고 분석했던 일반객실 등 안내 업무를 모두 외주위탁한 셈이다.

그렇다면 노동부의 잣대가 변한 것일까. 지난해 9월 노동부는 철도노조가 제기한 불법파견 시정요구에 대해 “한국철도유통은 인사 노무관리와 사업경영상 독립성이 충분해 적법한 도급이라 봄이 타당할 것”이라며 파견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2003년 회신에서 밝힌 합법적인 도급 조건을 만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폭로된 문서에서 철도청은 “고속으로 운행하는 열차에 승무해 여객의 문의에 응대하고, 특실서비스 등 열차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승무원 업무는 관리자의 지시·감독에 의해 업무를 수행해 도급위탁이 곤란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철도청마저 도급위탁이 곤란한 업무라고 분석했는데 노동부는 합법적인 조건을 충족했다고 판정을 내린 셈이다. 철도공사의 부도덕과 노동부의 불성실한 조사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빈말은 아니다.

현재 서울지방노동청은 9월7일에 조사를 완료하고 중순에 불법파견 재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로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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