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신년연설의 요지는 노사 모두의 양보와 결단을 통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고, 일자리를 창출해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사정 또는 사회적 대타협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는 노사가 서로 양보하고 상생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노 대통령 연설을 자세히 뜯어보면 노사가 무엇을 주고받자는 것인지 모호해진다.

우선 비정규직 양산에 대한 노 대통령의 분석과 해법에서부터 풀어보자. 대통령은 비정규직 양산의 이유를 “당장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기업의 욕구와 경영여건이 나빠졌을 때 해고가 어렵다는 불안감 때문”으로 진단했다. 이어 대통령은 “법 제도로 보면 노동유연성이 높은 편이지만, 대기업노조는 단협으로 높은 고용보장을 받고 있다”며 “일단 고용하면 실제로는 해고가 어렵고 이것이 시장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는 현실에 대한 진단이다.

◇ 사회적 대타협 = 그럼 대책으로 들어가 보자. 대통령은 대기업의 높은 고용보호가 문제라며 노조의 ‘양보와 결단’을 요구했다. 대기업의 ‘지나친’ 고용보호가 비정규직 증가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앞 대목에서는 비정규직 증가 원인을 ‘싼 임금’과 ‘쉬운 해고’를 선호하는 기업들의 인식이라고 꼽았으면서, 뒤에 이르러서는 대기업노조가 단협으로 만든 높은 고용보장이라고 덮어씌운 셈이다.

원인이 ‘싼 임금’과 ‘쉬운 해고’를 선호하는 기업의 인식이라면, 대책은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 수준으로 높이고, 해고요건을 오히려 강화해서 비정규직 채용을 선호하는 기업을 정규직 고용으로 전환하게 유도하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대책은 정반대이다. 정규직의 임금을 낮추고, 해고를 쉽게 해서, 기업들이 비정규직보다 정규직 채용을 선호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된다. 그런 그는 경제계에게도 ‘과감한 양보’를 주문했다. 양보의 내용은 ‘정규직 고용’과 ‘교육훈련 강화’라고 밝혔다.

따라서 대통령 연설의 핵심을 장식한 ‘노사간 대타협’의 실체는 이렇게 귀결된다. 대기업 노조는 높은 고용보장을 포기하고, 기업은 ‘비정규직’을 고용하기보다 현재보다 해고가 쉽고 임금이 싼 비정규직과 유사한 ‘정규직’을 고용하는 ‘타협’을 하라는 것이다.

타협은 ‘주고받기’이다. 유럽 등지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노사 대타협’은 노조가 임금을 양보하는 대신 기업은 고용을 보장해주는 내용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노조에게 고용과 임금 모두를 양보하라고 요구하고, 기업은 별로 양보할 것이 없는 안을 제시하면서, 이를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부르는 셈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오는 26일 국무총리실 산하에 일단 저출산·고령화 대책 등을 논의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양극화 해소와 사회적 대타협을 유도하는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를 발족할 계획이다.


◇ 비정규직 관련법 = 노 대통령은 연설에서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좁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며 그 사례로 비정규직법 입법 추진, 임금체불과 불법파견에 대한 근로감독 강화, 특수직 근로종사자 보호대책 등을 나열했다.

2004년 11월 국회에 제출된 이후 1년 넘게 노사간 갈등과 교섭을 거친 비정규직법은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도 또 한차례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여당은 또 특수고용직 관련 법안을 올해 안에 입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는 노사정위 특수고용특위에서 논의를 바탕으로 법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법안은 노동3권을 요구하는 노동계와 입법 반대를 주장하는 경영계의 의견일 팽팽하게 맞서며, 노사관계 로드맵과 함께 상반기 국회를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인다.

◇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유예 = 노 대통령은 연설에서 ‘상생과 협력’을 강조하며, 경영계가 먼저 교섭력이 취약한 노조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에 대한 경영계의 반발을 고려한 주문으로 풀이된다.

정부·여당은 최근 당정협의에서 300인 이하 사업장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2~3년간 유예하는 방향으로 입법하겠다고 밝혔다. 경영계는 이 대목에 반대하고 있다. 전면 금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에 대해 “경제계가 먼저 한발 양보해서 대화의 물꼬를 터줘야 한다”며 “이러한 결단이 노·사·정 대화로, 사회적 대타협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설득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따른 대책과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 직권중재 폐지와 공익사업장 범위 확대 등을 담은 노사관계 로드맵은 오는 2월 입법예고를 거쳐, 4월 국회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 고용서비스·직업능력개발훈련 강화 = 참여정부 국정 최우선 과제가 ‘일자리’ 문제로 잡히면서 인프라 역할을 하는 고용서비스, 직업능력개발훈련 강화사업이 발 빠르게 진행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도 고용지원서비스가 일자리 불안을 해소해가는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앞으로 3년간 6조원을 투입, 튼튼한 ‘고용안정망’을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노동부의 핵심 사업은 두말 할 것 없이 고용 부문이다. 노동부는 지난해 4월 ‘국가고용지원서비스 혁신보고대회’를 시작으로 사회적 ‘그물망’ 역할을 하게 될 고용서비스 강화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고용안정센터 개편, 기능대학과 직업훈련학교 통합, 중앙고용정보원 위상 강화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노동부는 지난해 서울 강남 등 6곳의 고용안정센터를 고용서비스 시범센터로 지정, 6개월 동안 운영했다. 이 시범센터에서는 그동안 인력부족 등으로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던 △취약계층에 대한 개인별 원스톱(one-stop) 취업지원프로그램 △지원훈련과 취업알선 연계 강화 △대학과 연계한 청년층 취업지원 확대 △중소기업 인재확보지원 등이 중점 추진됐다. 노동부는 시범센터 운영을 바탕으로 올해 고용서비스 사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이와 맞물려 고용안정센터에서 일하는 직업상담원들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신분이 전환된다.

또한 현재 9개 고용전산망을 내년부터 모두 통합해 ‘워크넷(work-net)에만 접속하면 직업, 일자리, 훈련, 학과, 고용보험 등 고용정보를 한번에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 역할을 위해 중앙고용정보원을 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분리, 국가고용정보의 허브기관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기능대학과 직업훈련학교 통합 등 직업능력개발 강화 사업도 눈에 띠는 부분이다. 새로운 훈련수요에 맞는 직업능력개발 중추기관으로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해 직업전문학교와 기능대학을 통합하는 등 공공훈련기관 개편했다. 산업인력공단을 인적자원개발(HRD) 선도기관으로 육성, 평생학습과 관련된 인프라 구축 및 기업, 노동자, 훈련기관에 대한 다양한 신규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 고령·여성인력·사회적일자리 확충 = 일자리 문제와 관련, 노동부에서는 고령·여성인력 고용확대와 사회적일자리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노동자 300인이상 사업장이 일정수준의 고령자를 고용하지 않으면 고령자 고용촉진 이행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고령자 고용 확대를 뼈대로 한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상태다. 법으로 일정정도 고령자 고용을 강제하겠다는 의도다.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자 300인이상 사업장 가운데 고령자 기준 고용률(제조업 2%, 운수업·부동산·임대업 6% 등) 미달 사업주가 고령자 고용촉진 이행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한 최소5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기업 소속 노동자에게는 ‘임금피크제 보전수당’을 지급토록 했다.

여성고용 확대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늘린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최근 법 개정으로 3월부터 상시 노동자 500인이상 기업은 남녀노동자 현황을 의무적으로 제출하고 여성노동자 고용비율이 적정 수준에 미달하면 여성고용 목표수립 등을 담은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시행계획을 제출토록 했다.

이와 함께 사회적으로 유용하지만 수익성 때문에 시장에 공급되지 못하는 ‘사회적 일자리’ 제공사업 규모가 올해 대폭 확대된다. 노동부는 사회적 일자리 사업규모를 작년 3,910명에서 올해 6천명으로 두 배 가량으로 늘릴 방침이다. 또한 사회적 일자리 확대와 함께 노동부는 대규모 일자리 창출 모델을 발굴하기 위해 기업연계형 프로젝트, 광역형 사업 지원을 새롭게 실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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