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수집항목: 신체정보(안면 등 생체인식정보 포함), 병력, 산재 이력, 건강진단 결과, 백신 접종내역

◇수집 이용 목적: 사업장 출입 등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 제반규정의 이행

◇보유 기간: 퇴사 후 3년

“위의 민감정보의 수집·이용에 대한 동의를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단, 동의를 거부하는 경우 근로계약 등의 이행과 관련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HD현대중공업이 하청노동자 임금체불 방지를 위해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하면서 안면인식 방식의 출퇴근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명분으로 과도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면 등 생체정보 제공 안 하면“근로계약 이행 불이익” 엄포

2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5일부터 하청노동자 임금 지급 보장을 위해 에스크로 제도를 전면 도입했다. 은행 같은 3자에 하청노동자 임금을 묶어두는 방식으로, 하청업체의 개입을 차단해 임금체불을 방지하는 제도다.

문제는 현대중공업이 하청노동자에게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병력과 산재 이력 같은 민감한 신체정보를 비롯해 HD현대그룹 이해관계자 유무와 복리후생·안전교육 제공일도 확인한다. 이 밖에도 주택담보대출 서류와 주택임대차계약서 같은 재산 내역도 요구했다. 다만 이는 현대중공업의 학자금과 주택 이자 지원금, 숙소 지원금 같은 경영 지원금 지급 관련 업무 활용 목적으로, 미제공시 해당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선택’ 항목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신체정보를 수집하면서 대체제도를 마련하지 않고 근로계약 이행의 불이익을 강조한 것은 노동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법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5년 서울고법은 지문인식 방식의 출퇴근 기록에 응하지 않아 징계를 받은 사건에서 “지문은 개인의 고유성과 동일성을 나타내는 생체정보로 정보의 유출이나 오·남용이 있는 경우 피해를 예방하거나 대처하기 어렵다”며 “지문 정보의 제공 및 출·퇴근시간 기록을 요구하는 것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위험성이 적지 않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유사한 사건들에서 지문등록 외 대체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은 것도 사실상의 지문등록 강요라고 봤다. 박지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동의 거부 권리가 있다고 하나 불이익이 근로계약 체결 불가로 보이기까지 한다”며 “수집 항목과 목적 사이에 상관관계도 보이지 않는 등 불이익이 추상적이고 민감정보 수집 목적이 필수적으로 보이지 않아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동의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안면인식 등 생체정보 활용 출입시스템은 대부분 건설현장과 일부 조선업체에서 도입해 사용 중”이라며 “이를 통해 미인가 인원의 사내 출입을 방지하고 안전사고 예방 및 보안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체불 지목 업체 2곳 중 1곳은 이미 폐업

에스크로 제도로 방지하려는 임금체불은 여전한 상황이다. 이병락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임금체불 업체 한 곳과 이미 체불을 겪고 폐업한 업체 두 곳 체불액만 27억원에 달한다”며 “물량팀 소속으로 노조가 조직돼 있지 않아 정확한 체불 규모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협력사와의 계약은 물량 도급계약으로 상호 합의된 계약에 따라 기성금을 지급하고 있고 공사 완료 시점에 계약한 도급대금이 전액 지급된다”고 말했다. 이미 정해진 기성금을 지급했으므로 하청업체 체불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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