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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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상생협약이 체결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원·하청 이중구조 개선에 근본 처방으로 꼽히는 적정 기성금 지급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고용노동부와 조선업 상생협의체는 하청노동자의 임금 인상과 복지제도 확대를 상생협약의 성과로 치켜세웠지만, 현장에서는 물량팀이 늘면서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심해지고 임금체불이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청노동자 임금 인상됐지만
상생협약 영향인지 불분명

고용노동부(장관 이정식)는 2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삼성중공업 알앤디(R&D)센터에서 ‘조선업 상생협약의 중간점검 및 향후 과제 모색을 위한 1주년 보고회’를 열었다. 조선업 상생협약은 지난해 2월 체결됐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가 조선업 불황기 삭감된 임금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파업했고, 그해 11월 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원·하청사가 조선업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원청이 적정기성금을 지급하고, 하청은 임금인상률을 높여 원·하청 간 보상 수준 격차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중간점검 결과는 실망스럽다. 하청노동자 처우가 일부 개선됐지만 기성금 인상의 경우 상생협약 체결의 영향인지 불분명한데다가, 복지 역시 ‘찔끔’ 개선에 그쳤다.

상생협의체에 따르면 하청노동자의 임금은 2023년 7.51% 인상됐다. 이 밖에 조선 5사 하청노동자 4만여명에 760억원의 성과금이 지급됐다. 1명당 190만원 상당의 성과금을 받은 셈이다.

다만 이런 결과가 상생협약 성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조선업 실적이 개선되면서 인력난에 허덕이던 원청이 종전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해결책을 썼기 때문이다. 상생협약이 없어도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임금인상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료비나 학자금 지원 등 복지제도가 종전보다 개선된 것은 사실이나 종전에 원청노동자에게 제공하던 독감접종비 지원, 혹서기·방한용품과 같은 물품구입 지원처럼 애초 개선했어야 하는 것들이다. 하청노동자 복지 증진을 위해 원청에서 출연한 공동근로복지기금이 기존 1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늘어난 정도다.

상생협약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하청업체의 임금체불 예방을 위한 ‘에스크로 결제 시스템’은 한화오션 외에는 도입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노동계 “물량팀은 되레 늘어 임금체불 여전”

조선업 상생협약이 무색하게 현장에서 임금체불, 하청업체 폐업은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한화오션 탑재공정 하청업체 다수에서 임금체불이 발생했고, 이달 알려진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 임금체불 규모는 40억원 수준이다. 업계는 누적된 임금체불이 70억원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노동부 통영지청은 관련한 실태를 파악 중이다.

낮은 기성금으로 적자가 누적돼 폐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긴 지 1~2년이 지난 신규업체 폐업도 발생하고 있다. 원청과 도급계약을 체결한 하청업체는 약속된 기한에 업무를 완수해야 하는데, 숙련인력이 부족해 원청의 기성금보다도 높은 임금을 주고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노동계는 보고 있다. 결국 다단계 하청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윤용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전 사무장은 “임금체불 대부분이 물량팀”이라며 “(노임) 단가가 올라가는데 기성금이 오르지 않다 보니 체불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단계 구조를 단순화시켜 본공 위주로 개선하지 않으면 정책의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장은 물량팀 숫자가 본공(하청업체 정규직) 숫자를 뛰어넘는다고 본다.

이병락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은 “에스크로 제도를 활용해 임금체불이 없게끔 한다고 했지만, 임금체불은 여전하고 지난달에도 문 닫는 하청업체가 나왔다”며 “(자녀)학자금을 50%만 주던 것을 100%로 확대했지만 근속연수가 5년 이상이 돼야 지급받는데, 그 정도 근속연수를 가진 하청노동자가 없어 돈이 남아도는 상황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노조법 2·3조 개정해야”

노동계는 이날 비판 성명을 잇따라 냈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 파업을 주도했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1년 전 조선업 상생협약은 물량팀을 이름만 바꾼 ‘프로젝트 협력사’로 전환해 재하도급을 최소화하겠다는 황당한 내용을 담았다”며 “결국 1년 동안 물량팀, 아웃소싱, 사외업체 등 다단계 하도급 고용은 더욱 확대됐고 임금체불 고통 또한 물량팀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로젝트 협력사는 2020년 현대중공업이 도입한 제도다. 정식 사내협력사는 현대중공업 동반성장실과 계약하지만, 건조·도장 등은 인력이 필요한 부서가 1년 미만으로 프로젝트 협력사와 계약을 체결해 일을 맡긴다. ‘원청-하청-물량팀’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가 일부 완화되지만 이런 방식으로 구조개선이 이뤄진 경우는 드물다는 지적이다.

금속노조는 “윤석열은 하청 노동조건 개선의 출발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을 거부했다”며 “정부가 노조는 패싱하고, 원·하청 사용자와 전문가를 동원해 ‘상생’을 떠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상생협의체는 조선업 이중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근본 해법인 △재하도급(물량팀) 최소화 △적정 기성금 지급과 관련한 해법은 이날 내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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