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경영학)

우리나라 조선업은 자동차산업과 함께 고용효과가 크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산업으로 국가·기업·노동자 모두에게 중요하다. 다만 우리나라 조선업은 강점과 단점과 모두 가지고 있다. 강점이 기술력이라면 단점은 다단계 하도급에 의존한 생산구조다. 이 때문에 조선업은 호황 때마다 인력수급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지난 2022년 파업을 통해 조선업 구조개선을 요구했고, 어느 때보다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모처럼 조선업의 수주가 늘어나 국가 및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 국민의 입장에서는 숙련된 하청노동자의 월급이 정규직 생산직의 50~60%에 불과한 최저임금 수준이며, 불황 때마다 반복되는 고용불안으로 조선업에 일할 사람이 없다는 하청지회의 주장에 충격을 받았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하청지회의 절규는 짧지만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강렬하게 전달했다.

하청지회의 파업을 계기로 정부는 그해 10월19일 조선업 격차해소 및 구조개선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11월9일 조선업 원‧하청 상생협의체를 발족했다. 상생협의체에는 원청인 조선 5사, 각 조선소 협력사 대표, 정부 및 전문가가 참여했다. 필자도 전문가로 참여해 지난해 2월17일 원‧하청 상생협약을 도출했다. 조선업 내 최초의 원‧하청 협약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협약은 27개로 방대하지만 주된 내용은 숙련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처우개선 등 다양한 노력을 하되, 특히 기성금을 높이고 재하도급을 줄여 조선업 원‧하청 이중구조를 개선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평가해 보면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성과부터 살펴보면 수주 증가 등 경영 개선 등에 힘입어 기성금을 인상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 인상(2023년 조선 5사 하청업체 평균 7.51%)과 복리후생을 확대(공동근로복지기금 및 재직자희망공제)했다. 그 결과 생산인력 1만4천812명을 추가로 확보(직영 1천208명 포함)해 수주한 물량을 작업할 수 있는 생산의 안정화를 이뤘다. 두 번째 성과는 한화오션만 시행 중이었던 노무비 직접지급 제도를 나머지 조선 4사로 확대한 것이다. 노무비 직접 지급은 장기적으로 임금체불을 막고 하청회사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식으로 2024년 상반기 중 전체 조선소가 도입하기로 했다. 세 번째는 절차적 성과로 상생협의체가 일회성 협약을 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1년 동안 협약 이행을 점검해 원청과 정부가 협약 내용을 책임 있게 이행하도록 한 것인데, 이벤트성 협약 체결이 많았던 이전 사례와 비교해 보면 이례적이었다.

한계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조선업의 구조적인 문제였던 다단계 하도급(물량팀)을 최소화하기로 약속했으나 실질적인 성과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처우가 낮은 본공(1차 하청노동자)이 일당이 높은 물량팀으로 이전하는 사례가 늘었다. 둘째, 최근 임금체불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기성금에 대한 원‧하청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으며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상생협의체에 노조가 참여해 함께 논의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초기 논의 과정에서 노조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으나 원‧하청 사용자측은 부담스러워했고 결과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실험이었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다양한 과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기성금 기준이나 물량팀 최소화, 숙련에 대한 보상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구조적인 사안들은 협의체 수준의 논의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임을 확인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조선업 발전을 저해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상생협의체가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가 과도하기도 하다. 지금부터는 상생협의체의 성과와 한계를 디딤돌 삼아 풀지 못한 구조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노사정이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급증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수요 진단, 숙련 향상, 비자 정비 등 정주 여건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하청노동자의 숙련을 반영한 처우개선으로 내국인 숙련노동자를 양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단계 하도급인 물량팀을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선업의 발전, 산업·노동이 함께 균형을 맞춰 나갈 때 가능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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