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24일 아이슬란드 수도에 10만여명이 모여 여성파업을 벌였다. <공공노동자연맹(BSRB)> 
▲ 지난해 10월24일 아이슬란드 수도에 10만여명이 모여 여성파업을 벌였다. <공공노동자연맹(BSRB)>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생 해법으로 ‘가정 중시’ ‘휴머니즘’을 제시했다. 지난 7일 KBS 특별대담에서 나온 발언이다. 윤 대통령은 저출생 정책의 차별성을 묻자 “우리 사회가 과도한, 불필요한 경쟁에 휘말려있는 게 아니냐”며 “가정을 중시하고 휴머니즘에 입각한 가치를 가지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 소멸’을 우려하는 시국에 대통령이 일과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한 대통령답다는 평가다. 여성노동자의 경력단절은 성별 임금격차의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31.1%다. 남성이 100만원 벌 때 여성은 68만9천원을 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1.9%로, 한국은 1996년 OECD 가입 이래로 부동의 1위다.

올해 3·8 여성의날에 맞춘 ‘여성파업’이 주목되는 이유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고,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하는 등 구조적 성차별을 지우는 정부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주 최대 69시간제로 대표되는 장시간 노동은 돌봄을 전담하는 여성노동자들을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몬다. 1일 3시간 미만 초단기 노동자들의 실업급여를 대폭 삭감한 탓에 초단기 노동자의 약 70%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고용안전망을 잃었다.

동맹파업 규모 커진다

이번 여성파업은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를 비롯 13개 여성·노동·시민사회단체의 제안으로 조직위원회를 결성해 준비하고 있다. 요구안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 △돌봄 공공성 강화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 △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 및 유산유도제 보장 △최저임금 인상 등 다섯 가지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여성파업 움직임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처음엔 ‘3시 STOP(멈춤)’이란 이름으로, 오후 3시부터 조기 퇴근하는 공동행동을 진행했다. 성별 임금격차를 노동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여성은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한다는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여기에 채용성차별, 직장내 성차별, 페미니즘 사상검증, 돌봄노동 저평가로 의제를 넓히면서 2020년부터 ‘3시 STOP 여성파업’으로 확장했다.

지난해부턴 파업에 나설 수 있는 사업장 조직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3·8 여성파업은 1년 넘게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하며 투쟁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중심이었다. 올해는 금속노조 KEC지회,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대리운전노조 등이 동맹파업에 가세할 준비를 하고 있다.

“완전한 성평등 다다를 때까지”

최근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이 동력을 제공했다. 지난해 10월24일 아이슬란드 수도에 10만여명이 모여 여성파업을 벌였다. 1975년 10월24일 첫 여성파업 이후 50여년 만에 최대 규모다. 아이슬란드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성평등 지수 1위를 14년째 유지하고 있지만 성별 임금격차는 21.6%다.

파업을 조직한 아이슬란드 공공노동자연맹 관계자는 “아이슬란드는 성평등 천국으로 간주된다”며 “우리가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려면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완전한 성평등에 다다를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에 동참한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도 “우린 아직 완전한 성평등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여성파업은 세계적 흐름이다. 2016년 폴란드에선 20만명의 여성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를 점거해 임신중지법 개악안을 철회시켰다. 아르헨티나에선 최초의 대규모 여성파업을 조직해 임신중지 권리를 얻어냈다. 2018년 아일랜드에선 여성파업으로 국민투표를 이끌어내 임신중지 합법화를 이끌어냈다. 스페인에선 여성파업에 530만명이 참여해 임신중지 숙려 제도를 폐지하는 등 성평등 정책이 만들어졌다. 스위스에서도 지난해 6월 여성파업에 30만명이 참여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했다.

“각자의 자리서 여성파업 참여하자”

그에 비하면 한국 여성파업은 출발 단계다. 페미니즘에 대한 거대한 백래시와 남성 중심의 노동운동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2016년부터 거대한 백래시가 시작됐다. 구조적 성차별이 있는지부터 다시 토론해야 하는 수준”이라며 “이 흐름에서 노조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0년 전이었다면 오히려 더 많은 조직에서 결합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운동 내에서도 노동혐오가 있다. 노동자보다 여성으로 인식한다”며 “특히 여성들은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거나 프리랜서·특수고용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 노조로 조직되지 못한 점도 크다”고 짚었다.

정은희 사회주의를향한전진 활동가는 “여성단체는 노동의제에, 노동단체는 여성의제에 관심이 적다”며 “아르헨티나의 경우 여성단체가 주도한 여성살해 반대시위의 연장선으로 여성파업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운동 자체가 쇠퇴한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현실적으로 파업이 어렵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파업에 참여하자고 조직위는 제안한다. 집단 휴가 사용과 같은 준법투쟁, 연차·병가 등을 활용한 개별 참여 방식이 있다. 가사노동을 하는 이들은 여성파업 기념티셔츠나 SNS 업로드 등을 활용할 수 있다. 1991년 스위스 여성들이 가사도구를 창문에 걸어 파업 동참을 알렸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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