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홍콩특별행정구 정부의 범죄인 송환조례 입법 시도로 촉발된 대중 항쟁이 한창이던 2019년 12월, 몇몇 활동가들과 함께 홍콩직공회연맹(직공맹) 사무실에 방문했었다. 입법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거둔 압도적 승리와 대규모 집회 직후라 아직까지는 두근거리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할 때였다.

낡고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들어간 우리는 곧바로 직공맹 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는데, 당시까지 4년째 20만 조직을 이끌고 있는 응만이(吳敏兒) 위원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때 나는 두 가지 사실에 크게 놀랐는데, 하나는 동아시아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노동자조직의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꽤 젊어서였다. 반면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여성 노총 위원장을 본 적이 없다.

응만이 위원장은 거의 두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홍콩 사회의 자본주의적 모순과 착취, 노동자들의 투쟁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당시 홍콩에는 4개의 노총이 있었는데, 직공맹은 유일하게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사회운동적 노조를 지향하고 있었다. 반환 이후 홍콩의 민주주의나 노동권이 중국 사회변화와 연동돼 있다고 여겨 촉발된 톈안먼사건에 대한 연대 운동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직공맹에는 당시 교육계·방송산업·항공업·공공교통·건설업 등 61개 업종별 노조 약 21만명의 조합원이 가입돼 있었다.

홍콩 항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직공맹의 조합원수는 크게 늘었다. ‘노조 건설 캠페인’의 성과다. 2019년 가을부터 “노조를 조직해 전면 파업하자!(組織工會, 全面罷工)”는 구호 속에서 캠페인이 전개됐다. 그해 11월1일 3개에 불과했던 신규 노조는 한 달 후인 12월1일에는 38개(직공맹까지 총 57개)로 늘었다. 무엇보다 2019년 8월 35만명 규모의 파업을 조직했다는 점은 홍콩 노동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저명한 노동운동가 아우룽위 선생에 따르면, 그것은 “홍콩 역사상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젊은 시절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다가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수십 년 동안 투쟁해온 응만이 위원장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한국 노동운동은 여성노동자들이 주도한 격렬한 투쟁에 의해 부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9년 YH무역 노동자들의 투쟁은 독재에 맞선 노동운동의 포문을 열었고, 1985년 구로동맹파업은 2년 후 노동자대투쟁의 시발점이었다. 최근에도 학교 비정규직, 대학 청소노동자, 고속도로 톨게이트노동자, 마트노동자 등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선두에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한데 우리나라 노동조합엔 왜 이토록 여성노동자 리더가 적을까? 역대 양대 노총에서는 왜 단 한 명의 여성 위원장도 없었던 걸까? 누구도 고의로 이런 일을 벌이거나 의도적으로 여성들을 배제하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어쩌면 그것은 노동운동 리더에 대한 정박된 기준을 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인 관성 때문일 수도 있다.

국제노동분업 체계에서 서비스업에 편중된 여성의 노동은 저렴하고 가치가 낮은 노동으로 치부됐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은 노동분업의 밑단에 위치해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노동운동의 중심에 오게 해야 한다. 대표자 성별은 그 조직이 얼마나 젠더 불평등을 극복했는지 보여주는 유일한 지표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단 한 명의 여성 위원장도 없었다는 사실은 우릴 부끄럽게 한다.

안 그래도 세계 최저의 출생률을 보이는 한국에서 노동체계는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 등은 동남아에서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저렴한 가사도우미를 들여오자고 떠들고 있고, 몇 달 후면 필리핀에서 100명의 노동자들이 입국할 예정이다. 오늘날 논밭에서는 많은 이주 여성노동자가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다. 국제노동분업 체계에서의 극심한 착취가 사다리 가장 아래 위치한 이주 여성노동자에 전가되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자본의 착취 전략에 맞서기 위해 왜 속히 자신의 얼굴을 여성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현실이 말해준다. 이젠 정말 여성 위원장이 나올 때가 됐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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