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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프리랜서 기획·편집자로 일한 A씨는 25년 전과 비슷한 교정·교열 작업단가를 받으며 일한다. 당시 장당 500원을 받았다면 지금도 500~600원을 받는다. 3교를 기준으로 했을 때 1천400~1천500원 정도를 받는 식이다. A씨는 계약 전 가장 먼저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일인지, 한 번만 하고 끝나는 일인지’ 출판사에 물어 본다. A씨는 “프리랜서의 가장 큰 고충은 ‘내일도 일이 들어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라며 “한 번에 끝나는 일이라고 하면 정당한 가격을 달라고 얘기하는데 (계속 할 수 있다고) 보장만 되면 (동료와 비교했을 때 한 작업당) 10만~20만원 싸더라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편집·디자인·집필 등을 하는 출판업계 외주노동자들이 불안정한 일감과 턱없이 낮은 단가로 저임금·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식적으로는 프리랜서 계약을 맺지만 실질적으로 종속된 채 일하는 외주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소한의 보호장치 마련을 위한 표준계약서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년 평균 보수 1천835만원
응답자 66.4% 생계유지 부족

4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 외주노동자 근로환경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외주노동자 대부분 계약을 할 때 출판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기관 ㈜케이스탯컨설팅은 지난해 9월26일~11월6일 편집자부터 그림작가까지 출판 외주노동자 45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통해 처우와 복지 실태 전반을 조사했다. 응답자 56%는 “협의를 하지만 출판사 의사가 계약에 많이 반영된다”고 답했고, 17%만 “출판사와 본인이 비교적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한다”고 답했다.

계약과 관련해 자주 경험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단가 제시’(3.22점, 5점 만점), ‘예상보다 높은 난이도의 작업 요구’(3.21점), ‘저작권 양도 계약’(3.19점), ‘과도한 추가 작업 요구’(3.12점) 순으로 나타났다.

출판 외주노동자들은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낮은 보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1년간 출판 외주 작업 보수는 평균 1천835만원이었는데 상위 소득자와 하위 소득자 간 격차가 심했다. ‘1천만~3천만원’이라는 응답이 36.9%로 가장 많았고, ‘200만원 미만’인 경우도 15.5%나 됐다. 외주 작업 수입의 생계유지 적절성에 대해서는 응답자 66.4%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는 단가 자체가 낮은 데다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되는 것과 무관치 않다. 단가와 관련해 응답자 10명 중 6명(57.5%)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적절하다’고 답한 경우는 14%에 불과했다. 또한 응답자 대다수는 작업단가 책정이 ‘기존 작업 경력’(3.76점, 5점 만점)이나 ‘기존 작업 평가’(3.74)보다 ‘업계 관행’(4점) 혹은 ‘출판사 자체 기준’(4.01점)에 따라 결정된다고 인식했다.

대필작가 B씨는 “1년에 2~3권 정도 대필작업을 하면 연 소득이 2천500만원 선이거나 못 미칠 때가 많다”며 “병원 외에 별도의 개인적 지출은 아예 하지 않게 된다”고 밝혔다.

낮은 단가 때문에 여러 작업을 동시에 맡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몸이 아픈데도 일한 경험에 대해 응답자 절반 이상인 53.6%가 “있다”고 답했다. 치료 부담은 개인에게 전가됐다. 질환·사고에 대한 처리 비용은 59.1%가 “개인이 부담했다”고 답했고, 26.6%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언론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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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근로계약서
공연·방송·영화는 있는데, 출판만 없어

출판 외주노동자에 대한 표준계약서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공연·방송·영화 등 분야와 달리 출판 분야에는 표준근로계약서가 없다. 문체부가 2021년 2월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를 마련했지만 저작권이나 유통·제작과 관련한 내용만 포함돼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진은 출판 외주노동자 표준근로계약서 마련시 △여성이 집중된 업계인 점을 감안해 모성보호·재생산 내용을 포함할 것 △직종별 표준임금과 표준작업시간을 설계할 것 등을 강조하며 초안을 제시했다.

외주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해 기구나 협의체 등을 통해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과 정책 참여 경로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명희 언론노조 출판노조협의회 의장은 “출판노조협의회는 문체부에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계속 요구해 왔지만 정부는 노사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고서가 나온 만큼 문체부에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요구할 근거가 생긴 것”이라며 “외주노동자 표준근로계약서 제정을 위해 조만간 문체부에 노사정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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