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27일 시행된 지 2년을 맞았다.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낸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신체 보호를 목적으로 정해진 법률이 법원에선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매일노동뉴스>는 5차례에 걸쳐 검찰 기소와 법원 판결을 분석해 법 적용의 한계와 개선점을 모색한다. <편집자>

①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솜방망이 처벌’ 답습
② ‘후진국형 재해’ 대부분, 법원은 ‘피해자 과실’
③ 법원도 입법취지 주목, ‘적당주의’ 안 통했다
④ ‘고의성’ 짙은 검찰, 구형량 낮고 회장님 불기소
⑤ 기업은 ‘바지사장’ 로펌은 ‘경영책임자 방어’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선고된 사건 대부분은 ‘후진국형 재해’인 것으로 나타났다. 원청업체의 사고는 산재사고 3대 유형인 추락·끼임·부딪힘에 해당하는데도 법원은 ‘피해자 과실’을 이유로 형량을 대폭 감경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정한 의무를 중복해서 위반한 사업장들은 기본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50명 미만 사업장(건설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으로 적용이 넓어지면 ‘재래식 사고’에 대한 검찰 기소 건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선고 13개 업체 중 11곳이 ‘위험성평가’ 미흡

3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까지 선고된 13건 중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상 의무 중 가장 많이 위반한 사항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과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이었다. 13개 업체 중 11곳(84.6%)이 ‘위험성평가’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영책임자에게 부여된 안전보건 확보의무 중 핵심적인 사항이 이행되지 않아 원청 대표 등 사업주가 재판에 넘겨진 셈이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업무수행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경영책임자도 11명이나 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4조에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조치’ 의무를 정하고 있다. 9개로 나눠 △안전보건 목표와 경영방침 마련(4조1호) △안전보건 업무 전담조직 마련(4조2호)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절차 마련(4조3호) △재해예방 예산편성 및 집행(4조4호)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4조5호)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자 및 산업보건의 배치(4조6호) △안전보건 관련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4조7호) △중대재해 발생시 작업중지 등 매뉴얼 마련(4조8호) △하도급업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 능력 평가기준 마련(4조9호) 등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검찰은 위험성평가를 미실시한 경영책임자에게는 예외 없이 시행령을 적용했고, 법원에서 모두 유죄로 판단됐다. ‘1호 선고’인 온유파트너스 사건도 원청 대표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작업을 하지 않아 작업계획서가 마련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하청노동자가 약 94킬로그램의 고정앵글을 운반하다가 추락해 숨졌다. ‘1호 기소’로 노동자들이 집단 급성간염을 일으킨 두성산업의 대표도 사업장의 특성을 고려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만들지 않아 보건관리자가 세척제에 유해물질이 포함된 사실을 직원들에게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대재해 발생시 작업중지 등 매뉴얼 마련(4조8호)’과 ‘안전보건 관련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4조7호)’도 문제가 된 사업장이 많았다. 현장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현장 작업자를 통해 사고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지 않은 사업주만 4~5명에 달했다.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규정한 시행령 5조1항을 위반한 사업장도 한 곳(정안철강)이 있었다. 모든 사업장은 시행령상 의무를 2~6건 중복해 어겼다. 특히 중국 국적의 하청노동자가 동바리(가설지지대)에 맞아 숨진 ‘건륭건설’ 대표는 6개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파악됐다.

제조·건설업에서 ‘추락·부딪힘·끼임’ 대부분

전형적인 사고 다발 업종의 경영책임자가 재판에 넘겨진 부분도 주목할 지점이다. 중대재해 선고 중 가장 많이 차지한 업종은 ‘건설업(8건)’이다. 제조업이 4건으로 뒤를 이었고, 공동주택 관리업체도 1건이 선고됐다. 유형별로 봐도 추락·부딪힘·끼임(각 3건), 깔림(2건), 베임·집단 독성간염(각 1건) 등으로 재래식 사고가 차지했다. 안전대나 방호장치 없이 작업하다가 노동자가 숨졌다면 모조리 기소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처벌 형량은 법정형 하한선에 근접했다. 13건 중 1건(한국제강 대표 징역 1년 확정)을 제외하면 징역형의 집행유예에 그쳤다.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실무에서는 ‘무용지물’에 가까웠던 셈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또는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된 하청업체 대표나 현장소장보다 형량이 다소 높았지만, 징역 6개월~1년6개월에 집행유예 2~3년에 머물렀다. 벌금형도 벌금 50억원 이하로 정한 법 조항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다만 원청 법인에 부과된 벌금이 하청보다 많게는 10배 가까이 높다는 점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나타난 변화로 풀이된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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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선고형의 배경에는 법원이 ‘피해자 과실’을 양형에 반영한 탓으로 분석된다. 원청 대표에게 유일하게 선고했던 ‘한국제강 사건’의 경우에도 재판부는 “피해자에도 사고 발생 또는 피해 확대에 어느 정도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과거 세 차례나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데도 피해자 과실을 유리한 양형사유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하청노동자는 2022년 3월 중량물 취급에 관한 작업계획서가 없이 무게 1.2톤의 방열판을 보수하던 중 크레인에서 떨어진 방열판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1호 선고’ 온유파트너스측도 지난해 2월 열린 첫 재판에서 “피해자가 사전에 작업하는지 몰랐다”고 주장했고, ‘5호 선고’ 건륭건설 대표도 선고 직후 “왜 점심시간에 작업해서 사고가 났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법원은 업체 대표들의 주장을 정상참작 사유로 적극 인정했다.

반복 사고에도 집유 일색 “유예 주장은 엄살”

피해자의 건강 상태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한 사건도 있었다. 전국 여섯 번째 선고이자 공동주택 관리업체 첫 기소인 ‘국제경보산업 사건’에서 재판부는 “피해자의 좋지 못한 건강상태도 중한 결과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당시 아파트 설비과장은 아파트 현관에서 사다리를 타고 천장 보수작업을 하다가 약 1.1미터에서 추락해 변을 당했다.

전문가들은 반복되고 중첩된 유형의 사고가 대다수를 차지하는데도 사법부 태도가 매우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재계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유예해 달라고 계속 주장하는데, 집행유예에 그치는 작금의 상황을 볼 때 지나친 엄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선고된 사건을 보면 50명 이상 사업장 대표들의 ‘안일한’ 인식이 공통적으로 보인다”며 “작업중지 매뉴얼이나 안전보건 관리책임자들에 대한 업무수행 평가기준 마련 등의 의무사항은 간단한 서류만 구비해도 충분하다.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환춘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 같은 의무는 경영책임자에게 직접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것인데, 모두 유죄로 판단돼 형식적 절차 마련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점이 명백해졌다”며 “앞으로 위험성평가를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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